코로나19로 드러난 노동의 그림자

(중)울리지 않는 ‘콜’ 기다리다 새벽 맞는 대리기사들 “암울하다”

2020.04.21 06:00

4대 보험 안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한숨

<b>대리운전 기사 안전·생계 대책 요구</b> 지난 16일 새벽 민주노총 대리운전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서울지하철 신논현역 인근에서 정부의 대리노동자에 대한 안전과 생계 책임을 요구하는 거리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대리운전 기사 안전·생계 대책 요구 지난 16일 새벽 민주노총 대리운전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서울지하철 신논현역 인근에서 정부의 대리노동자에 대한 안전과 생계 책임을 요구하는 거리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던 김수민씨(38·가명·경기 광주시)는 5년 전 대리운전 기사로 ‘투잡’을 뛰기 시작했다.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4~5시까지 밤잠을 자지 않고 월 300만~350만원을 벌면 돈을 금방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한달에 나흘 이상을 쉬어본 적이 없다. 조그만 식당을 차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지난 16일 광주시에서 만난 그는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식대도, 상여금도 없는 일자리니까 지금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미래에 대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거리 두기로 회식 줄면서
업소 콜 90% 줄었는데
수수료·관리비 꼬박 떼여
플랫폼 사용료 월 3만원
두 곳에 내는 것도 버거워

코로나19 사태는 깜깜한 절벽과도 같다. 수입이 30%로 줄었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의 회식이 없어지자 콜도 사라졌다. 업소에서 전화를 통해 연결되는 ‘업소 콜’은 90%가 줄었다. 식당 등 업소들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경쟁은 심해졌고 2만5000원짜리 콜은 1만8000원으로 가격이 내려갔다. 한 건이라도 놓칠까봐 콜 받는 프로그램을 켜놓고 화장실 갈 때를 빼고 휴대폰만 들여다보느라 눈과 손목이 아프다. 얼마 전 일요일에는 7만원을 겨우 번 뒤 오후에는 화물을 옮기는 ‘탁송’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그러나 2만원짜리 일감에 수수료·보험료 7000원을 떼가는 것을 보고 다른 ‘투잡’을 고민 중이다. 그는 “주차나 식당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대출은 생각도 못한다. 신용등급이 6등급으로 낮아서다. 정부가 발표한 ‘지역고용대응 특별지원’ 제도를 신청하려고 알아봤지만 결국 신청하지 않았다. 김씨는 “코로나19로 빠진 매출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3개월 동안 줄어든 수입을 따지고 차등해서 주는 등 신청만 복잡하더라”며 “낮에 서류 제출하러 가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낮밤이 바뀐 삶을 사는 대리기사들은 보건용 마스크를 사러 약국에 가기도 쉽지 않다. 그는 정부가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는 대리기사들에게 마스크라도 지원해줄 수 없는 거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사다주신 마스크를 열흘씩 썼어요. 그런데 오히려 손님들은 술에 취해서인지 열에 아홉이 마스크를 안 써요.”

대리기사 플랫폼인 로지소프트, 카카오에 내는 수수료도 만만찮다. 로지소프트는 콜마다 수수료로 20%를 가져가고 보험료, 관리비까지 요구한다. 김씨는 “콜을 받으려면 회사 보험을 가입해야 하고 관리비도 콜 명목으로 받아가는 건데 뭘 관리해준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휴대폰에 설치하는 프로그램 사용료도 매달 두 업체에 3만원씩 내야 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수입이 급감했어도 이들 플랫폼에 내는 수수료는 그대로다. 그는 “어려워지면 수수료를 좀 낮춰줄 수 있을 텐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대리기사들은 어디 이야기할 데가 없다”고 말했다.

차등지원하는 정부지원금
절차 복잡해 아예 포기
신용 낮아 대출 꿈도 못 꿔
알바 구하기도 쉽지 않아
보험 깨고 카드 쓰며 버텨

김씨는 이날 인터뷰하러 나오기 전 보장성보험을 해약했다고 말했다. 큰맘 먹고 가입한 보험이지만 보험료를 언제 다시 낼 수 있을지 몰라서다. 그는 “곧 마흔인데 미래를 준비하는 게 아득하다”고 말했다. 며칠 전에는 술 취한 손님이 욕을 해서 치안센터까지 가게 됐다. 운행도 하지 않았는데 수수료 6000원이 빠져서 회사에 얘기했지만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날은 3시간을 버리고 수입도 날렸다. 자정이 넘어 치안센터에서 나왔는데 정말 ‘세상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런 상황이 5개월 정도 더 가면 일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수지타산도 안 맞고 몸은 고생하는데 퇴직금도 없지 않냐”고 했다.

지난 16일 전국대리운전노조는 서울 신논현역 1번 출구 앞에서 정부와 대리기사 업체에 코로나19 관련 안전 및 생계 대책을 요구하는 선전전을 했다.

박구용 전국대리노조 부위원장은 “4대 보험 안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선착순으로 지원금을 준다고 하는데 파이 자체를 늘리지 않으면 의미 없다”며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은 실업수당이 나오지만 대리기사들은 카드대출을 쓰면서 버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시국회 열어 ‘한국형 실업부조’ 법안 살리고 정부는 지원 대상 특고노동자 직접 발굴해야”

‘실업급여 사각’ 대책 절실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무급휴직 노동자와 특수형태고용(특고)노동자, 프리랜서 등에 대한 소득 지원을 이르면 22일 발표한다. 일시적 소득 지원이 될 것인지, 실업급여 사각지대의 전면 개편이 될 것인지가 관건이다.

특고노동자와 프리랜서는 기존 고용안전망 제도의 ‘약한 고리’이자 실업지표의 ‘그림자’였다. 2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1376만명으로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달 전체 취업자(2661만명)의 약 51% 수준이다. 자영업자를 포함해 일하는 사람 49%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다. 특고노동자 중에서도 가사도우미나 대리기사 등 플랫폼노동자는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일거리 여부에 따라 매일 ‘실직’과 ‘구직’을 반복하던 상황에서 ‘거리 두기’로 일거리가 사라지자 ‘실직’이 끝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피해가 확산되자 지난 1일부터 특고노동자 등에게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월 50만원씩 2개월 동안 지급하고 있다. 고용보험 가입자격과 실업급여 수급여건 등이 법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고용보험을 우회해 사실상의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임시방편이었다.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는 이 지원대상을 넓히고 금액을 상향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지원책으로 기능하려면 정부가 신청절차를 간소화하고 적극적으로 대상자를 찾아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특고노동자를 제대로 지원하려면 사업주가 신청하도록 해야 하고, 국세청과 건강보험공단 등이 협력해 소득을 파악하고 정부가 적극 대상자를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이번 일시적 지원을 통해 파악한 소득자료를 향후 정책설계에 활용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번 기회에 고용보험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가 임시회기를 열어 ‘한국형 실업부조’를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는 중위 소득 50% 이하 구직자 중 최근 2년 동안 취업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월 50만원씩 6개월간 지급하는 것이다. 노동부에 관련 예산 2771억원이 배정돼 있으나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자영업자나 특고노동자를 위한 실업급여로 기능할 수 있지만, 20대 국회가 이달 말 종료되면 법안이 자동 폐기된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지금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통해 마련한 전달경로를 적극 활용하고, 불완전 설계됐던 제도를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더 키워 완성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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