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은 희미, 공방은 실종…한 달 앞두고도 ‘노동 없는 대선’

2022.02.09 20:34 입력 2022.02.10 09:53 수정

노동정책

2022대선청년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달 13일 서울 참여연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심상정 정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얼굴 모양의 탈을 쓴 사람들에게 정책질의서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대선청년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달 13일 서울 참여연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심상정 정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얼굴 모양의 탈을 쓴 사람들에게 정책질의서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대 대통령 선거일을 불과 한 달 남겨 놓고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 노동 공약과 공방은 실종됐다. 19대 대선 때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고 최저임금 1만원,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노동 공약을 앞세운 것과 비교하면 이번 대선은 가히 ‘노동 없는 대선’이다.

반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노동자들 삶은 더 척박해지고, 플랫폼 노동자 등 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넓어져 노동 정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노동계에선 말한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26~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각 캠프에 노동 공약에 관한 질문지를 보냈다. 이·심·안 후보는 답변서를 보내와 그 내용을 분석했다. 윤 후보는 수차례 요청에도 9일 현재까지 답변서를 주지 않았다. 윤 후보는 노동 공약 발표도 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윤 후보 공약은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고, 언론에 보도된 공개 발언과 캠프가 한국노총에 낸 자료 등만 제한적으로 참조했다.

[2022 대선 공약 탐구⑦]공약은 희미, 공방은 실종…한 달 앞두고도 ‘노동 없는 대선’

■‘일하는 모두’의 권리 보호

온라인 플랫폼 중개를 통해 일감과 급여를 받는 플랫폼 노동은 새롭게 등장한 노동 형태다. 택배기사처럼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개인사업자로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도 있다. 문제는 이들이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로 인정되지 못하면서 법적 보호에서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선 후보들은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법을 만들겠다고 했다.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기본법’(이 후보), ‘일하는 모든 사람의 보호를 위한 기본법’(윤 후보), ‘일하는 시민을 위한 기본법’(심 후보)과 같이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존의 노동법 체계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취지는 동일하다.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규정하고, 공정한 계약 원칙 등을 명시하는 내용이다.

기본법 외에 이 후보는 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 및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사용자에게 종속돼 있는 플랫폼 노동자가 개인사업자로 잘못 분류되는 것이라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 근로감독 행정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또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관계법상의 노동자로 추정하고, 이를 부인하려면 기업이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의견 표명에 찬성한다고 했다. 반면 윤 후보는 별도 입법을 통해 노동자성 판단 기준을 완화하거나 입증책임을 전환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심 후보는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 개념을 ‘직업의 종류 또는 계약의 형식이나 명칭에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노무를 제공하거나 제공하려는 사람’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했다. 또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가 실질적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법의 사용자 및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를테면 택배노조의 경우 현재 노조 설립은 했지만 택배사인 CJ대한통운과 교섭하지는 못하고 있다.

안 후보도 기본법 제정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정형화되지 않은 노동 형태가 계속 나타나는 상황에서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로 인정되면 법상 보호를 받고,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으면 법상 보호에서 아예 배제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차원에서다. 다만 안 후보는 “산업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근로자·사용자로 나누는 이분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입법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산재 예방 예산 2조원으로 증액
‘노동안전보건청’ 설립도 추진
‘국민 생명 업무’ 정규직 법제화
공공 비정규직 ‘공정수당’ 지급

윤석열

노사 합의로 노동시간 유연 활용
재택근무 등 시간 선택권 늘려
‘비정규직 고용 총량제’ 언급
구체적 정책 내용은 공개 안 돼

심상정

1호 공약 내세운 ‘주 4일제’ 주목
육아 등 맞춰 노동시간 유연 선택
감정노동 등 직업병 인정 기준 확대
산업현장 ‘위험의 외주화’는 금지

안철수

국가, 산업안전 관리감독 지나쳐
처벌보다 업체 자율적 예방 필요
법정 노동시간 단축은 매우 신중
초과근로는 금전 아닌 시간 보상

■산재 대응 주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와 같은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산업재해 사고 감축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높아지고 있다. 후보들은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없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지만 기업에 재해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로 지울지에 대해선 온도차가 있다.

이 후보는 “중대재해를 방치하거나 책임이 있는 경우 그 이익을 보는 경영주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고 사망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산재 발생 비율이 높은 50인 미만 사업장을 집중 점검하고, 영세사업장에 대한 안전 지원을 위해 산재 예방 예산을 1조원에서 2조원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노동안전보건청 설립도 눈에 띈다. 다만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중대재해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에 대해서는 “법 시행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이 나타나는지를 분석해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유보적이다.

윤 후보는 산재 관련 공약을 발표한 게 없다. 다만 처벌보다는 예방 위주의 정책을 펴야 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기업인 간담회에서 중대재해법에 대해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는 법”이라며 “합리적으로 설계해 기업 하시는 데 걱정이 없도록 하고, 산재 예방에 초점을 맞춰 근로자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심 후보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재보험 청구절차를 개선해 환자가 아니라 의료기관이 직접 산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특수고용 노동자·해외파견 노동자·농민·자영업자 등을 포함하는 전 국민 산재보험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감정노동이나 공황장애, 심야노동 수면장애 등 직업병 인정 기준을 넓히고, 산업 현장에서 ‘위험의 외주화’는 금지한다. 생명·안전 업무는 직접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위험 작업은 2인 1조로 하도록 하는 것이다.

안 후보는 사업장의 자율적 예방에 방점을 찍었다. 현재의 산업안전 보건 체계는 지나치게 국가의 관리감독에 매몰돼 있고 처벌 위주로 흐르고 있는데, 이는 단기·일시적 처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안 후보는 ‘위험을 만드는 주체가 그 위험에 대한 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을 대원칙으로, 현장에서 스스로 산업안전이 작동되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이행을 감시하고 문제점을 보고하는 내·외부 인원(안전 관리자) 배치를 강화하고, 국가의 관리감독은 이 같은 인원을 두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시간 단축

노동 의제가 실종된 이번 대선에서 그나마 주목을 받은 공약은 심 후보가 1호 공약으로 내세운 ‘주 4일제’다. 한국은 연간 노동시간이 2019년 기준 1967시간으로 OECD 국가들 중 두 번째로 긴 장시간 노동국가다. 이 후보도 ‘주 4.5일제’를 공약으로 냈다.

심 후보의 주 4일제 방식은 시간을 줄이거나(주 35~40시간), 시간 단축 없이 업무 조정 또는 점심시간 유급화 등으로 열려 있다. 이 후보는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고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선도적으로 시행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게 하나의 방안이다. 노동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주 52시간을 시행했지만 특별연장근로를 승인하는 등 실제로는 주 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적용 제외와 특례업종 관련 규정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또 연차휴가 일수와 소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했다.

윤 후보는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쉬는 게 좋다” 발언으로 시대착오적 노동관을 가졌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후 노사 합의에 기반해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내왔다. 지난해 12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는 주 52시간을 1~2개월 단위로 평균을 내 유연하게 적용하는 노동조건을 노사가 협의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노총에 낸 자료에서는 전일제-단시간 노동 전환 신청권을 확대하고 재택근무를 활성화하는 등 노동시간에 대한 선택권을 늘리겠다고 했다.

심 후보는 주 4일제 외에 연차휴가를 현행 15일에서 25일로 확대하고, 1년을 근무해야 연차를 사용할 수 있는 현재 기준을 6개월로 줄여 근무기간에 비례해 연차휴가를 즉시 누릴 수 있도록 조정하겠다고 했다. 또 누구든 육아, 돌봄, 학업 등 필요가 생길 때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생애주기별 노동시간 선택제’를 도입한다. 급여 감소 우려와 초단시간 노동자 보호 필요성에 대해서는 최소 노동시간 보장제와 평등수당 제도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했다.

안 후보는 법정 노동시간 단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자리를 만들고 워라밸을 확보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여러 비용 증가로 기업이 신규 채용을 늘리지 않고, 노동자 입장에서도 임금 감소를 감당하게 돼 문제라는 것이다. 안 후보는 “일부 기업에서 임금 감소 없는 주 4일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아주 일부이며 이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며 “유연근로제를 활용한 워라밸을 도모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또 초과근로를 금전 보상이 아니라 시간 보상으로 받는 독일의 ‘근로시간 계좌제’를 통해 초과근로를 줄이겠다고 제시했다.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적용

지난해 10월 정부 공식 통계에서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800만명을 넘는 등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이 후보는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 고용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특히 국민의 생명·안전에 직결된 업무는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법제화하겠다고 했다. 이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와도 연결돼 있다. 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공정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차별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다만 이 후보는 노동계에서 비판하는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도 가능한 방안이라고 봤다. 기존 파견·용역회사보다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 효과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윤 후보는 한국노총에 보낸 자료에서 ‘비정규직 고용 총량제’를 언급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인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해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며 부정적으로 언급한 바는 있다. ‘청년들이 불공정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심 후보는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 고용 원칙이라는 큰 틀에서 이 후보와 같으면서도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 제정 등 입법 과제들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평등수당을 지급하고, 기업이 단기로 노동자를 고용한 뒤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 계약종료 수당을 지급하도록 해 비정규직 고용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주 16시간 이상의 최소 노동시간 보장제를 통해 불안정 노동을 줄이고, 사회보험료를 감면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질소득을 증가시키는 방안도 있다.

안 후보는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비정규직의 사용 사유를 무조건 제한하면 풍선효과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에 따라 사용 사유보다는 사용 유인을 제거해 비정규직 남용을 줄이고 격차 해소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본다. 그 방법으로 생명·안전 업무는 정규직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비정규직 남용은 정규직 과보호에 대한 반대작용으로 발생한 측면이 있다면서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전제로 한 고용유연성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과 관련해선 이 후보와 안 후보는 단계적·점진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심 후보는 전면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갖고 있다. 윤 후보는 이는 부작용이 클 수 있고 논의할 사항이 많기 때문에 집권 후 법 개정 추진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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