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가야할까봐 물도 못 마셔”…방광염 앓는 건설현장 여성노동자들

2022.03.03 15:38 입력 이혜리 기자

2019년 6월18일 건설노조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건설현장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 성폭력 등 실태 고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현장에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을 한 개씩 만들어서 남자들이 자꾸 여자화장실을 사용합니다. 숫자를 늘려주세요.” “원청이든 하청 노동자든, 여자든 남자든 같은 인간입니다. 이런 화장실을 본인들이 쓴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방치하지는 않을 텐데요.”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건설현장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화장실에 대해 묻자 나온 답변들이다. 화장실은 인간으로서 중요하고 건강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남성 직종으로 분류되는 건설업에서 10% 가량 되는 여성 노동자들은 소외당하는 경우가 많다. 건설노조는 3일 여성 조합원 16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응답자 3명 중 1명(30.6%)은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갈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그 이유로는 ‘화장실이 너무 멀거나 인근에 없다’, ‘업무환경 특성상 화장실 가는 것이 매우 번거롭다’는 답변이 주로 나왔다. 일하는 공간에서 화장실까지 걸어가야 하는 시간을 따지면 6~10분이 32.0%(47명), 10분 이상이 6.8%(10명)였다.

화장실 이용에 있어서 가장 불편한 점으로는 ‘더럽다’(36.9%·59명)가 꼽혔다. 이어 ‘화장실 개수가 부족하다’, ‘손 씻을 데가 없다’ 순이었다. 8.1%(13명)는 일하는 현장에 화장실이 아예 없다고 했는데, 이들은 남자 화장실 또는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참는다고 했다.

화장실 이용이 불편해 물을 안 마셔본 응답자는 65.7%(105명)나 됐다. 식사를 조절해 본 경우도 31.3%(50명)였다. 이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응답자 중 34.4%(55명·중복 응답)는 지난 1년간 의사에게 방광염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만성 변비, 질염, 요실금 등도 주요 진단명으로 언급됐다. 한 노동자는 설문조사에서 “현장에는 여성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숨 죽이며 일하고 있다”며 “생리적인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면서 어떤 요구를 더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남성 노동자들이 여자 화장실에 출입하는 것을 막고, 충분한 화장실 개수를 설치해달라는 의견도 있었다. 또 청결한 원청 직원들의 화장실과 더러운 하청 노동자들의 화장실이 분리돼있는 게 부당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은 사업주가 건설현장으로부터 300m 이내에 화장실을 설치하고 화장실 관리자를 지정해 관리하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일하는 때에는 남녀를 구분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고 규정한다.

건설노조는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에 건설사들의 모임인 대한건설협회에 대한 진정을 제기했다.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원청 건설사의 부실한 관리감독으로 인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며 “화장실은 노동자들의 인권과 건강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만큼 건설사가 여성 화장실을 제대로 설치하고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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