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들겨 맞는 로봇 개를 따라 개가 운다···이동우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

2023.03.28 11:13 입력 2023.03.28 19:55 수정

이동우는 동물도감에서 밀렵과 고의 방화로 숲을 위태롭게 오가는 동물을 들여다본다. 이 시인에게 동물도감은 파괴와 훼손에 시달리는 생태계를 깨닫고 성찰하는 창이다. “불은 데려갈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삼켰다/ 남은 책장 사이사이 다친 동물들을/ 밀렵꾼이 닥치는 대로 잡아 빼냈다”(시 ‘동물도감’ 중). “그을린 표지”에서 “황폐해진 속지”로 들어가 한 쪽씩 넘기며 동물들의 안전과 위태함을 아울러 살핀다. “황급히 책날개를 돌아선 아기 원숭이 한마리가 용케/ 제 페이지를 찾아 깊숙이 몸을 숨겼다”.

개발을 위해 일부러 지른 불이 잦아들어도 동물들은 위태위태하다. “잿더미 숲을 통째로 머리에 인 생명들이 페이지 너머로/ 서로의 생사를 묻는 밤/ 중장비 소리가 커졌다/ 동물들이 하늘에 내걸렸다”.

2015년 전태일문학상 수상자인 이동우는 첫 시집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창비)에서 인간과 동물, 자연의 고통을 예민하게 파고들어간다. 타자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다.

이동우 시인. 창비 제공

이동우 시인. 창비 제공

제1부 ‘당신의 안부를 물었다’는 기후와 동물, 육식에 관해 다룬다. 첫 시 ‘꿰맨 자국’의 배경은 개발로 훼손된 갯벌이다. “덤프트럭이 인근 산들을 가시철조망 안으로 들이부었다/ 갯메꽃밭에 설치된 경고판/ 녹물이 샌다, 누구의 꿈인지 모를 꿈속으로”(‘꿰맨 자국’ 중).

기후위기나 동물위기 원인 중 하나는 인간 식탐이다. 이동우는 양떼구름을 보며 “양을 양고기라 부르며/ 뼈에서 그림자까지 발라내는 입들”(‘양떼구름 도축하기’ 중)을 떠올린다. 도축당한 먹잇감을 누가 기릴까. “쌓여가는 불판”을 바라보며 “풍장의 절차”를 생각한다.

“배달의 민족”이 도착할 때 상기하는 것도 말 그대로 생살을 찢어내는 고통과 과정이다. “염지된 닭은 날지 못한다 절인 밤을/ 씹고 우쩍우쩍 씹히고/ (중략) 좁은 철창에서 한달 남짓 산 어린 닭들, 토막 나고 튀겨져서 종이 상자에 차곡차곡 담긴다”(‘치킨은 철새다’ 중).

연중무휴 레스토랑은 “테이블마다 넘치는 미소엔/ 송곳니가 감춰져” 있는 곳이다. “비명을 씹는 우아한 몸짓들/ 요리사들이 종일 뛰어다니지만/ 세상의 허기는 여전해”(‘식탐에 관한 몇가지 소문’ 중).

표제작에 로봇 개가 등장한다. 시인은 로봇 학대와 동물 학대가 연결됨을 이렇게 썼다. “두들겨 맞는 로봇 개/ 감전에서 감정으로 이어지는 손찌검/ 뒤섞이는 쇠와 피의 비린내/ 로봇을 따라 개가 운다”(‘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 중).

제2부 ‘슬픔 없는 나라로’에선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착취와 학살로 나아간다. ‘마지막 자장가’에선 미군의 노근리 학살과 국군의 빈호아 학살을 이으며 이렇게 적었다. “노근리 옹벽에 찍힌 발톱 자국은/ 피란민 가슴속 탄흔/ 목울대 잃은 이들이 울부짖고/ 탄약 섞인 빗물에 눈이 먼 아기,/ 베트남 곳곳에 증오비가 섰다”(시 부분).

시집은 노동과 계급 문제도 다룬다. “노동은 고무보다 질겼다 신발 제조 공정마다/ 스민 땀내, 헛구역질에 끼니를 걸렀다”. 부산 삼화고무 노동자로 부마항쟁에 참여한 추송례의 일기와 관련 기사를 바탕으로 쓴 시 ‘목탄화’ 중 한 구절이다. 항쟁 40여년이 지나도 노동 착취와 소외는 대상과 형태만 바꿔가며 이어진다.

“튀는 불꽃과 고무 타는 냄새/ 정지신호를 부수고 달려야 더 바삭거리지”(‘엑스트라’ 중).

“마감 시간을 알리는 독촉 문자/ 목구멍은 새벽으로 가는 유일한 길/ 빈속을 채운 커피믹스가 신물을 밀어 올린다”(‘로켓 배송’ 중)

“밤샘 촬영 요구에 그저 웃은 건 처세도 체념도 아니었다./ 단지 필름이 돌아야 한다는, 돌아버린 것들의 멀미일 뿐.”(‘저예산 영화’ 중)

“유리 벽 화장실을 걸레질할 때 사람들은/ 여자를 못 본 척했다/ 투명하게 닦으면 닦을수록/ 여자도 투명해져갔다”(‘유리벽’ 중).

제8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자인 김해자가 추천사를 썼다. “여기, 시간과 관계와 감정을 끝없이 소비하며 소진되어가는 존재들에 대해 지긋이 질문하는 시인이 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과연 이렇게라도 살 수 있는지, 울음을 듣는 귀와 통점을 느끼는 발에서 발화된 물음이 있다.”

두들겨 맞는 로봇 개를 따라 개가 운다···이동우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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