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기업에 “종편 투자” 전방위 압력

2009.09.01 18:22 입력 2009.09.02 00:47 수정
강진구·정유미·권기정기자

지방지·대학에까지 수십억~수백억 참여 요구

기업들 난색… 방통위, 종편채널 특혜 가능성

“시베리아 벌판에 서 있는데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나. 첫걸음이라도 뗄 수 있도록 도와줘야지.”

1일 방통통신위원회의 한 간부가 내뱉은 말이다. 종합편성채널 사업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 말이지만 ‘시베리아 벌판’이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대기업과 조선·중앙·동아일보의 방송진출이 여의치 않음을 암시한 것이다.

일러스트 | 김상민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기자

◇ 대기업을 상대로 한 전방위 압력 = 대기업들은 조·중·동의 거센 로비공세에 몸살을 앓고 있다. 각종 연줄과 인맥을 동원한 잇단 방송출자요구 때문에 이들 언론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다. KT와 SKT 등 자금력이 풍부한 통신업체들이 1차 타깃이지만 로비공세는 업종을 불문하고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방송사를 세우는 데 300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며 언론사마다 최소 10%인 300억원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까지 대기업들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모 그룹 임원은 “과거 SBS 출범 때는 방송진출이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었지만 지금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어차피 특정언론사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에서는 경영권도 행사할 수 없고 지상파 3사와 경쟁하려면 최소한 한 해 6000억원씩 5년간은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데 누가 선뜻 나서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아예 약속을 잡아주지 않아서 그런지 요즘 삐딱한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 지방중소기업·지역언론·대학까지 저인망식 공세 = 대기업들이 출자에 몸을 사리자 다급해진 이들 언론사는 지방의 중소기업, 지역언론사, 대학에까지 저인망식으로 파고들며 손길을 뻗치고 있다. 부산지역의 경우 타경쟁사에서 먼저 업체관계자들을 만나고 돌아갔다는 소문이 퍼지자 지난 20일 방송추진업무를 맡은 모 신문사의 간부가 직접 내려와 부산 상공회의소에서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대전지역의 경우 동아일보가 모 기업에 1%(40억원) 정도의 지분참여를 요구하자 조선 측이 ‘더 소액이라도 좋다’며 양측이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향후 사업사 선정과정에서 자신의 컨소시엄을 ‘국민방송’으로 포장하고 공공성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지방의 일간지들과 심지어 대학재단본부까지 찾아가서 출자를 권유하고 있다.

청주지역의 한 언론사 사장은 “조선, 동아 기자로부터 참여의사를 타진하는 전화를 받았다”며 “제안을 받자니 들러리만 설 것 같고 무시하자니 미디어환경에 뒤처질 것 같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우병현 전략마켓팀장은 이에 대해 “아직은 가능성 있는 업체들을 만나 초기단계의 사업설명회를 열고 있는 정도”라며 “사업자선정 기준의 윤곽이 드러나면 좀더 정밀한 사업전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방통위 특혜지원 어디까지 = 동의대 문종대 교수는 “기업들은 사업전망도 밝지 않고 특정언론과의 짝짓기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도 훼손될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방송진출에 당분간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결국 방통위에서 정책실패를 막기 위해 세제지원, 황금채널보장 등 고강도의 특혜를 내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KBS의 수신료를 인상하는 대신 광고료 수입비중을 20%대로 낮추는 공영방송법을 밀어붙이는 것도 KBS2에서 6000억원 정도의 TV광고 물량을 가지고 와 새로운 종편채널에 몰아주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있다.

이미 업계에서는 방통위가 KT, SKT 등 통신회사나 공기업을 상대로 종편진출을 억지로 떼밀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방통위 이태희 대변인은 “정부는 새로운 기간산업이 초기단계에서 잘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것이지 외압이나 특혜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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