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거리 나들이, 곳곳이 문턱

2006.12.31 16:20

지체장애 2급 장애인 박길연씨(43)는 15년 동안 집에서만 살았다. 결혼 후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는 중증장애인이 됐다. 몸이 아파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던 박씨는 지난 4월 세상으로 나왔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인천에 사는 박씨는 지역 복지관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8월부터는 민들레 장애인야간학교를 창립, 중증장애인 11명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고 있다. 새 삶을 찾으리란 박씨의 기대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무너졌다. 서울에서 볼일이라도 볼라치면 가는 데만 7~8시간이 걸렸다. 움직이는 일은 살인적이었다.

[세상밖 꿈꾸는 사람들] 장애인-거리 나들이, 곳곳이 문턱

지난 12월12일, 국회 예결특위에서 장애인 생계비 복지 예산 삭감을 주장했던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을 찾아가 항의하던 날도 그랬다. 이날은 각 장애인 단체가 모두 한나라당사에 모여 박의원에게 항의하는 의견을 전달하기로 했다. 박씨는 민들레 야학에서 알게 된 친구 안명훈씨(28)와 함께 가기로 했다. 안씨는 뇌병변으로 지체장애 1급이다.

박씨는 이날 권리를 찾으러 가는 길에 자신이 처한 현실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오전 7시, 장애인 콜택시에 전화를 했다. 콜택시를 타려면 1시간 전에는 전화해야 한다. 1시간을 기다려 8시에 택시를 탔지만 1호선 부평역까지 가는 데는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서울 5호선 발산역까지 가야 한다. 중간에 신길역에서 한번 환승도 해야 한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부평역에서 리프트를 타야 했다. 리프트는 아무리 자주 타도 탈 때마다 두렵다. 혼자서 조작하기는 쉽지 않다. 박씨는 10분간 머뭇대다 결국 ‘호출’ 버튼을 눌러 역무원을 불렀다. 10분 뒤에야 역무원이 나왔다. 그야말로 ‘판때기’에 지나지 않는 리프트 위에 ‘굴러가는’ 전동 휠체어가 올라서야 한다. 발밑으론 계단이 펼쳐져 있다. 누구도 잡아주거나 도와주지 않는다. 내려가는 데만 20여분. 같이 간 안씨도 똑같이 리프트로 내려가야 했다. 둘은 결국 1시간이 걸려 승강장에 도착했다.

9시40분이 돼서야 겨우 서울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 전동차에 올라타는 것도 일이다. 휠체어 앞바퀴가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에 끼인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무사히 올라타나 싶었는데 안씨가 들어서는 중에 문이 닫혔다. 문이 몇 번을 닫혔다 열린다. 당황해서 소리를 치고서야 문이 열렸다.

전철 내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하는 것도 힘겹다. 물밀 듯 밀려 들어오는 사람들은 휠체어가 차지한 큰 공간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휠체어에 부딪히며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20분 만인 10시에 신길역에 도착했지만 이 역에선 리프트를 세번 타야 환승할 수 있다. 부평역에서처럼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다보니 2시간30분이 걸렸다. 결국 발산역에는 오후 1시가 돼서야 도착했다. 당사 근처인 당산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발산에서 내려야 했다. 역에서 당사 앞까지 2시간 동안 휠체어로 이동했다. 1차선 도로는 인도가 좁아 차도로 내려서 이동했다. 인도와 차도 사이엔 하수구 홈이 있어 차도 쪽으로 나와 탈 수밖에 없다. 차들이 휙휙 곁을 지나간다. 겨우겨우 3시에 맞춰 당사 앞에 도착했다.

이날 박계동 의원은 장애인들의 항거에 결국 “장애인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이 있다면 유감”이라며 예산 삭감에 대한 입장 철회가 담긴 공문을 전국장애인차별연대 등 4곳의 장애인단체에 보냈다.

박씨는 박의원의 발언 철회를 확인하고서야 인천으로 돌아왔다. 서울까지 간 성과는 이뤘지만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멀고 길다. ‘아직 싸워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인천 계산역에 도착하니 다음날 새벽 0시30분이 됐다. 콜택시가 끝나 결국 112를 불렀다. 경찰차를 타고 집에 오니 2시가 다 됐다. 무사히 하루를 보낸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장애인들에게 세상으로의 ‘외출’은 여전히 ‘모험’일 뿐이다.

〈이고은·김다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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