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편견·무지가 두렵지, 후회한 적 없다”

2006.12.31 16:33

부부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노모(84)를 모시고 산다. 사제가 되고 싶었던 한 사람은 수도원에서 정신장애인들을 만난 뒤 마음을 바꾸고 간호사가 됐다. 대학에서 간호학을, 대학원에서 정신간호학을 공부한 그는 병원을 그만두고 지난해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쉼터를 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유기농 식품 배달 일을 하며 가계 수입을 책임지고 있다. 그 역시 틈나는 대로 쉼터에 들러 일을 거든다. 주말이면 “TV나 보며 쉬자” “바깥 바람 좀 쐬자”며 다투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큰 싸움은 없다. 무엇보다 그들은 결혼을 후회한 적이 없다.

[세상밖 꿈꾸는 사람들] 동성애자-“편견·무지가 두렵지, 후회한 적 없다”

동성커플 김동규씨(가명·44)와 이진강씨(가명·40). 그들은 2000년 결혼해 부부로 살고 있다.

지금은 다른 동성애자들의 부러움을 받을 정도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그들 자신들도 결혼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데이트할 때 팔짱 한번 끼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사이. 축복은커녕 손가락질 받을 게 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0대 때 이미 성정체성을 깨닫고 혼자 살 마음을 먹었지만, 두 사람은 남들 이목 때문에 평생의 반려자를 놓칠 수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외아들인 김씨의 집에 누를 끼칠 수 없다고 망설이던 이씨도 “당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자”는 말로 프러포즈를 대신했다. 결혼식은 김씨의 집에서 가족들의 사진을 붙여놓고 다섯명의 친구들 앞에서 올렸다. 정장을 입고 맞절을 하고, 결혼서약서를 쓴 뒤 서로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가족들에게는 1년여가 지난 뒤 알렸다. 아들이 그저 친한 친구를 데려와 살겠거니 생각했던 김씨의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했다. 배울 만큼 배운 아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를 좋아한다니. 아들이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다녀오더니 이상한 외국물이 들었다며 가슴을 치던 어머니도 결국 며느리라고 해야할지 사위라고 해야할지 모를 또 한명의 자식을 품었다. 용돈을 모아 이씨의 내복이며 양복 등을 사주기도 하는 어머니는 “이제 외로워말고 둘이 의지하며 살라”고 한다. 이씨는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해 직접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종종 들러 음식도 해주고 말동무도 되어주는 아들과 아들의 친구에게 아버지는 얼마전 당신의 이름을 새긴 석돈짜리 금반지 한쌍을 보내왔다.

‘남자끼리 산다’는 수군거림이나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것보다 이들을 더 괴롭히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과 무지다. 김씨는 “동성애바나 사우나, 애널섹스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성적으로 변태일 것이라는 편견이 아직도 많죠. 그런데 이성애자들은 어떤가요. 유리방에 불법 마사지 사우나, 원조교제 등등 이성애자들의 성생활이 더 변태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어떤 한쪽의 성적 취향만을 고집하는 건 이성애우월주의예요”라고 말했다. 동성애를 에이즈의 주범,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보는 시선도 지적했다. ‘한국남성의 동성애 성정체성 발달과정과 정신건강 문제’라는 석사논문을 쓰기도 한 김씨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몰아가는 시선 때문에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청소년들은 극단적인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도 막힌 부분이 많다. 김씨가 급성 장염으로 쓰러져 이씨가 한밤중에 김씨를 안고 병원으로 갔지만 ‘법적 보호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김씨는 다음날 누나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입원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김씨가 법적 배우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의 연금이 김씨에게 가지 못하는 것을 알고 이씨는 지역연금 가입도 거부하고 있다. 김씨는 “마음의 문제를 국가나 사회가 나서 규제하고 간섭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간호사 출신 경력에 조부모까지 있는 환경이지만 이들은 입양문제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했다. “학교에 가면 왜 아빠만 둘이냐고 물을 테고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도 상대 집안으로부터 아빠들 때문에 거절당할 수도 있겠죠. 아이가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요. 사회·문화적으로 분위기가 충분히 성숙되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아요.”

보통의 부부보다 더 부모 공경에 신경쓰고 빠듯한 살림살이에 대출까지 해서 정신장애인들을 돌보고, 민주노동당의 당원으로 인권운동, 지역사회운동까지 펼치고 있는 이들 부부는 깊고 높은 파도의 한가운데에서도 그들만의 사는 법을 찾아가고 있다. “동성애자는 사회적으로 한번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아요.”

〈글 장은교·사진 박재찬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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