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사람들 희망찾기 ‘특별한 소풍’

2009.07.01 18:08 입력 2009.07.02 01:00 수정

‘나사로의 집’ 상담센터 ‘아름다운 산행’…질병·장애 안고 노숙 전전하던 50여명, 남한산성 함께 걸으며 ‘재활의지’ 다져

지난달 30일 오전 9시. 서울 남대문 쪽방촌에 사는 황모씨(38)는 모처럼 군복 스타일의 7부바지와 진회색 셔츠를 꺼내 입고 멋을 냈다. 4년 만의 외출이었다. 서울역 맞은편 벽산빌딩 앞에 황씨 등 50여명이 모였다. 1997년부터 쪽방촌을 후원해온 ‘나사로의 집’ 남대문지역상담센터가 마련한 주민 소풍을 떠나는 길이었다. 이름하여 ‘삶의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산행’. 이날 행선지는 남한산성이었다.

지난달 30일 남한산성에 소풍나온 서울 남대문 쪽방촌 주민들이 보물찾기를 하고 있다. |나사로의 집 제공

지난달 30일 남한산성에 소풍나온 서울 남대문 쪽방촌 주민들이 보물찾기를 하고 있다. |나사로의 집 제공

황씨는 “4년 전부터 결핵 치료를 받아 몸이 많이 약해져 산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했지만 표정은 들떠 보였다. 그는 “사업 실패 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했지만 결핵 치료비로 돈을 다 날리고 쪽방촌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영등포·용산·남대문 지역의 일명 쪽방촌 사람들은 한 달에 21만~28만원을 주고 6.6㎡(2평) 미만의 좁은 방에서 산다. 질병이나 장애 때문에 일할 능력이 없는 이도 있고, 사업 실패로 노숙생활을 하다 들어온 이도 있다. 이들에게 나들이는 남의 일이었다.

소풍을 준비한 나사로의 집 김흥용 소장(72)은 “10여년 전 쪽방 주민들과 바닷가에 갔는데 바다를 처음 본 주민이 ‘얼마나 비가 많이 왔기에 이렇게 물이 많습니까’라고 말하더라”면서 “오늘도 의미있는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남한산성은 공기부터 달랐다. 쪽방촌 주민들의 표정도 환해졌다. 상담센터 전익형 팀장(36)은 주민들에게 “오늘 같은 날은 담배 피우지 마시고 자연의 공기를 실컷 들이마시라”고 권했다.

주민들은 남한산성 북문과 서문을 거쳐 수어장대로 올랐다. 오순도순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난 뒤 놀이시간을 가졌다. 먼저 추억의 보물찾기. 여기저기서 “아이참” “못 찾겠네”라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어떤 이는 목말을 타고 나뭇가지 사이의 보물 쪽지를 찾아내기도 했다. 한 장밖에 없는 1등 보물은 세제 1봉지. 빨래비누·샴푸·치약 등도 ‘희망상’ ‘아름다운 상’으로 주어졌다. 1등 쪽지를 찾은 윤태욱씨(57)는 “40년 쪽방에 살면서 처음 서울 밖으로 나온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행운까지 떨어졌다”며 기뻐했다.

이어 주민 5명이 서서 몸짓만으로 다음 사람에게 속담을 설명하는 게임이 계속됐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를 애써 설명하는 모습을 지켜 본 한 주민이 “새 흉내만 내면 까마귀인 줄 모르잖아. 까악까악 소리를 내야지”라며 발을 동동 구르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김모씨(54)는 “5살 때 사라호 태풍으로 가족이 모두 흩어진 뒤 막노동을 하며 홀로 살아왔다”며 “오늘 같은 나들이를 꿈이나 꿔봤겠느냐”고 말했다.

남한산성 4㎞를 완주한 황씨는 “삶의 활력을 느꼈다”면서 “있는 힘 다해 재활에 도전할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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