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옛날 신문 속으로… ‘강산이 변하고 풍속도 변했다’

2010.09.21 12:29 입력 2010.09.21 13:47 수정
윤민용 기자

 징검다리 연휴가 끼어 어느때보다 여유로운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그러나 민족의 명절, 추석을 맞는 풍경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1960~95년까지 추석 당일과 추석 전날 발행됐던 경향신문을 통해 당시 추석 풍경을 되새겨본다.

1960년대

 1960년 추석은 양력으로 10월 5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명절을 앞두고 가장 북적거리는 곳은 시장이다. 제수음식 준비와 명절빔 준비로 주부들로 시장이 북적이는 가운데 10월 3일자 기사에는 고무신 가게가 성황을 맞았다는 뉴스가 눈에 띈다. 보릿고개를 겪으며 어려웠던 시절, 피를 팔아서라도 추석을 쇠려했던 실업자들의 가슴아픈 이야기도 실렸다. 추석을 하루 앞둔 4일 대구 경북대 부속병원 혈액은행에는 평상시보다 4배 많은 120여명에 달하는 실업자들이 쇄도해 “마치 ‘피’를 파는 시장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는 기사가 추석 당일인 5일 실렸다.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당시 사람들의 열망이 분출됐던 4·19 혁명 당시 스러져간 젊은 청춘의 넋을 위로하는 기사도 실렸다. 4·19 희생자들이 가매장된 서울 신사동(현 은평구) 공동묘지를 찾아 ‘한가윗날 들꽃이 지키는 임자없는 4월의 무덤’이라는 제하의 기사는 그해 봄 스러져간 망자들의 비극적인 인생사를 다뤘다.

추석, 옛날 신문 속으로… ‘강산이 변하고 풍속도 변했다’

 1965년 추석은 양력 9월 10일이었다. 조상의 묘를 찾는 성묘 풍습 역시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당시 서울 외곽에 조성돼 있던 공동묘지를 찾는 성묘객 인파가 20만여명이 달할 정도였다. 이날 기사에 따르면, 평소 광화문에서 망우리까지의 택시 기본요금은 200원도 되지않았지만 이날만큼은 미리 예약을 해야했으며 요금도 1000원 가량을 받았다. 차가 드문 시절이어서 미리 마이크로버스를 예약하고 묘지로 향하기도 했다. 추석 시즌이 영화계의 대박시즌인 것은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추석 당일 오전 9시에 상영하는 ㅍ개봉관 좌석은 2/3가 찼고, 이날 마지막회 상영분도 오전에 미리 다 팔릴 정도로 영화관람은 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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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70년 추석은 9월 15일이었다. 망우리 공동묘지를 찾는 성묘객은 여전해서 10여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려들었고 교통지도를 위해 경찰도 248명이 동원됐다. 성묘객의 편의를 위해 당시 승객 승차가 불허된 삼륜차에 승차를 허용하자, 1인당 50원씩 받고 망우리 공동묘지로 성묘객을 실어나르는 삼륜차들이 짐칸에 승객을 40~50명씩 마구잡이로 태웠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추석, 옛날 신문 속으로… ‘강산이 변하고 풍속도 변했다’

 74년 추석은 9월 30일이었다. 이해 추석에는 안타까운 인명사고가 벌어졌다. 추석을 앞두고 28일 용산역 개찰구를 빠져나온 귀성객 1500여명이 부산행 열차 자리를 먼저 잡으려고 구름다리를 지나 플랫폼으로 들어서다, 군수송대를 통해 열차를 기다리던 군인 500여명과 뒤얽히면서 중간에 있던 승객이 넘어지고 뒤따라오던 승객들이 그 위를 덮치면서 인명사고가 일어난 것. 군인과 대학생, 20대 여성 2명 등 4명이 죽고 38명이 부상당했다. 변을 당한 이들은 여공, 가정부 등으로 서울에서 일하다 고향에 가려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부상보다도 고향집에 들고 가려던 선물꾸러미가 망가진 것을 더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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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80년 추석은 9월 22일이었다. 암울했던 군사독재시절, 이전과 같이 귀성 행렬 기사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대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추석 민심 행보가 사회면 기사로 비중있게 다뤄졌다. 전 전대통령은 일반 서민 가정집과 고속버스터미널, 구로공단에서 근무하는 여공들의 생활관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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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년에는 추석과 아시안 게임이 겹쳤다. 그해 추석은 양력으로 9월 18일이었다. 이전까지 명절 당일만 쉬던 휴일 방침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해부터 추석날과 다음달까지 2일간 쉬기로 하면서 명절 연휴가 본격적으로 실시됐다. 이에 따라 귀성객도 늘어나기 시작해 전국적으로 귀성객이 1천만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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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과 추석연휴기간을 명절 당일과 전날과 다음날까지 총 3일을 쉬기로 결정한 89년 추석부터는 전국의 고속도로를 차량들이 점령하고 곳곳에서 지체와 정체가 반복되는 민족 대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89년 추석은 양력으로 9월 14일이었다. 87년 1천200만명이던 귀성객은, 2000만명으로 늘었다. 80년대 중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마이카시대가 도래하면서 추석 귀성객이 대폭 늘었으며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자가용버스까지 임시영업허가를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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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90년 추석은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큰 날이었다. 전날인 2일에는 한국과 소련이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했으며, 추석 당일인 3일에는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동독과 서독이 공식 통일했다.

 94년은 추석 때면 늘어나는 귀성차량을 줄이고 귀성행렬의 편의를 늘이기 위해 버스전용차선제를 실시한 첫 해다. 이해 추석은 양력으로 9월 20일로 추석 연휴가 주말과 맞닿으면서 연휴가 늘어나자 2800여만명이 추석 귀성에 나섰다. 또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이후, 추석연휴기간이 5일에 이르자 이를 이용해 단기해외여행을 가는 풍속이 이무렵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추석 이틀전인 9월 18일자 신문에 따르면, 9월 17일 하루 동안 약 1만5천여명이 괌, 사이판 등지로 여행을 떠났다.

 95년 추석은 양력으로 9월 8일이었다. 당시 신문업계가 가로쓰기, 컬러지면화를 단행하면서 이무렵부터 추석과 같은 주요한 명절의 스케치 사진이 일반 뉴스를 제치고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게 됐다. 이날 경향신문 1면에는 “밤새가도 좋다, 2800만 대이동”이라는 제목 아래 꼬리에 꼬리를 문 귀성차량이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 사진이 시원하게 실렸다.

추석, 옛날 신문 속으로… ‘강산이 변하고 풍속도 변했다’

 한국 경제가 호황이던 90년대 중반 명절연휴를 반납하고 정상조업하는 기업도 상당수였다. 이날 신문에는 “정상조업, 추석을 잊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반도체 수요를 맞추기 위해 당시 대기업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생산라인을 정상가동했으며, 신문용지 생산을 위해 제지업체들도 정상조업했다는 소식이다.

추석, 옛날 신문 속으로… ‘강산이 변하고 풍속도 변했다’

 또한 한가위 특집지면을 별도로 마련하고 볼만한 영화와 TV프로그램, 관련 생활정보를 담아 총 56개면을 발행했다.

http://khan-history.tistory.com/1

<윤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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