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바뀌었지만…성매매女의 삶은 그대로

2013.01.19 13:45 입력 2013.01.19 13:58 수정

여성계에서 성매매 문제를 여성문제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부른다. 사회·경제·문화적 요인이 뒤얽혀 있어 단기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2004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특별법’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매매 특별법) 시행을 전후해 한국의 성산업은 보다 복잡한 형태로 변모했지만, 성매매 여성들이 접하는 근원적인 문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취재를 위해 접촉한 4명의 전·현직 성매매 여성들은 살아온 삶은 각기 달랐지만 성매매로 인한 피해에 노출되는 수법은 유사한 면이 있었다. 이들 중 20대인 2명은 비교적 근래에 생겨난 휴게텔·대딸방 등 ‘변종’ 성매매 업소에 주로 몸담았고, 각각 30대·50대인 2명은 그에 비해 오랜 기간 지속돼온 성매매 집결지나 안마시술소, 방석집 등의 업소에서 주로 일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성매매 집결지에서 성매매 여성들이<br />영업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주장하며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김정근 기자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성매매 집결지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영업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주장하며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김정근 기자

2000년대 초반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변종 성매매 업소에선 대체로 지정된 숙소에서의 강제적 숙식이나 선불금 명목으로 빚을 지는 일 없이 일할 수 있었다. 인터넷 구인 사이트를 통해 직원을 모집하고 당일 손님을 받은 만큼 일당을 지급하는 등의 방식으로 젊은층의 여성들이 보다 손쉽고 부담 없이 성매매 업계에 들어서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경제적 곤란 이용 발목잡는 수법 여전

그러나 업주가 직접 지급하던 선불금 개념만 사라졌을 뿐 경제적인 곤란을 이용해 업계에 묶어두는 수법은 그대로 유지됐다. 업주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적인 책임을 피하기 위해 대부업자를 소개시켜주는 등의 방식으로 빚을 지도록 조장한 것이다. 대딸방에서 2년 남짓 일하다 현재는 평범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27세의 ㄱ씨는 “업주들이 매일 일당을 줄 때 그날 손님이 적었다 싶으면 대놓고 성형을 하라느니, 더 꾸며야 한다느니 하면서 대출을 받으라고 부추겼다. 성형받고 더 예뻐지면 수입이 늘어 몇달이면 다 갚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수백만원 단위의 돈을 높은 금리로 대출하고 나면 매달 이자를 갚는 일도 버거워 더 업무강도가 높고 통제가 강한 업소로 옮기게 된다.

“처음 이쪽 일을 시작할 때 나도 모르게 빚이 생겨 있더라고. 선불금이라고 얼마 받았는데 숙소비·화장품값 따위로 다 나가고 생각도 못했던 빚만 잔뜩 있어 손에 쥐는 돈은 없이 정신없이 갚아나가야만 했어.” 1970년대 후반 18세 때부터 방석집에서 일한 50대 후반의 ㄴ씨는 당시의 선불금은 “미리 족쇄를 채워두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바로 거액의 돈을 받은 뒤엔 매일 버는 돈으로 따지면 금방 갚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당시엔 지각비·결근비 등 온갖 이유로 돈을 뜯어내는 일이 만연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ㄴ씨는 다른 지역의 성매매 업소로 도망갔지만 끝까지 찾아온 전 업소 업주가 처음 가게에서 진 빚을 그대로 물렸다. 동료 여성이 연대보증을 서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광범위한 감시를 받는 생활이 지속됐다.

벌금보다 더 괴로운 단속반의 현장급습

성매매 특별법 이후로 성매매 여성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불안은 상시적인 단속이다.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현장을 잡아야 하는 단속의 특성 때문에 알몸인 상태로 단속반원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2011년부터 휴게텔과 유사성행위 업소에서 일한 20대 중반의 ㄷ씨는 “평소에 단속에 대비하는 요령을 익혀 두지만 막상 급작스럽게 단속이 들이닥치면 부끄럽고 놀란 감정만 들어 허둥댈 때가 많다. 벌금 무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게 단속현장 (사진) 찍히는 것, 조사받는 것이다”라며 “평소에도 단속 비상벨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항상 불안한 마음 때문에 안절부절못한다”고 말했다. 현재 속칭 여관바리라 불리는 성매매를 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ㄹ씨는 “예전에는 업주들이나 경찰, 공무원이나 다 연결이 돼 있어서 단속이 형식적이었고 기껏해야 보건소 검진만 받으면 됐다. 단속이 심해진 뒤로 방에 들어와 온통 헤집어놓고 강압적으로 묻는데, 내가 잘못을 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까지 하면 되는지 화가 난다”고 말했다.

성매매 여성들이 겪는 불안은 일상에서도 이어진다. 성매매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켜선 안 되기 때문이다.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 이룸의 조사에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의료지원 중 불안·강박이나 우울증세 등으로 인한 신경정신과 지원이 25%를 차지했다. ㄱ씨는 “한 번은 친구와 동네를 지나가다가 일하던 업소에 자주 오던 손님을 보고는 너무 놀라 얼어붙은 적이 있다. 그 뒤로 출퇴근 때뿐만 아니라 평소 길을 지나갈 때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일을 그만둔 뒤까지 한동안 계속됐다”고 말했다.

심야까지 일하는 업종 특성상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도 멀어져 탈성매매에 필요한 심리적·경제적 지지도 얻기 힘들게 된다. ㄷ씨는 “일하는 것을 안 들키려고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다. 집안사정이 어려워 조금이라도 보태는데 정작 아무도 이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알아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 살아갈 의욕이 꺾인다”고 말했다.


법은 바뀌었지만…성매매女의 삶은 그대로

길에서 아는 사람 만날까 늘 불안

나이가 드는 것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다. 취재를 위해 만난 여성들은 모두 나이를 먹는 것이 곧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몸에 밴 탓에 나이를 밝히기를 꺼렸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해당 연령대가 주로 근무하는 업소 형태가 바뀔 뿐 성매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ㄹ씨는 성매매 특별법 이후 선불금에서부터 시작된 업주와의 종속관계를 청산하고 일시적으로 탈성매매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다시 성매매를 계속하고 있다. 1990년대 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ㄹ씨는 벌이가 괜찮다는 말에 티켓다방에서 일하게 된 이후 안마시술소와 휴게텔 등으로 업소를 옮겼다. “2008년부터 서울 장안동 일대 집중단속 때문에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어 (성매매를) 그만뒀다. 근데 막상 하던 일이 이 일뿐이라 다른 일을 해도 적응도 안 되고 몸이 많이 상해 병원비는 많이 들어가고 해서…. 나이가 먹으니 받아주는 데는 노래방이랑 여관뿐인데 술을 먹질 못하니 여관으로 갔다.”

수입이 불안정하지만 그마저도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어 생계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진다. 고령이 돼도 성매매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호선 명지대 교수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매매 여성 연구’ 논문에서 심층면접을 진행한 소위 ‘박카스 아줌마’ 대부분이 50대 이상이라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서울 종로 일대에만 노인 대상 성매매 여성이 많게는 300명 수준에 이르며, 최근 유입되는 중국 국적 여성을 제외하면 한국인 대부분이 50~60대였고, 70대도 적지 않았다. 성매매의 대가로 받는 금액은 1회 5000원에서 2만원 사이였다. 길게는 30년 이상 성매매를 해온 여성도 있지만 면접 대상 중 3분의 1은 일한 기간이 10년 미만이었다. 젊은 시절 성매매 경험이 없어도 나이가 들어 경제적 궁핍 때문에 성매매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성매매 여성들은 대개 낮은 학력, 생계유지의 어려움을 공통적으로 호소하고 있었다”면서 “사회적 자립을 위한 공공부조와 복지 지원이 없이는 빈곤으로 인한 성매매 유입을 막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성매매 여성 처벌조항 없어져야”

성매매 특별법 위헌심판 제청에 대한 성매매 당사자들의 의견을 물어봤다. 생계 때문에 탈성매매 후 다시 성매매를 하고 있는 ㄹ씨는 “성매매 특별법 시행 당시에도 업소 여성들이 반대시위를 한 가장 큰 이유는 앞으로 먹고 살 길이 막힌다는 것 때문이었다. 몸을 팔아서라도 먹고 살려는 현실에는 대책이 없이 그저 잡아서 벌금만 거둔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고 말했다. ㄷ씨는 “단속에 걸려 한 번 벌금을 낸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전과라는 걸 알고 충격 받았다. 앞으로 이 일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건 아닌가 싶어 후회된다”고 말했다. 현재는 성매매를 그만두고 다른 직종에서 일하는 ㄱ씨도 “단둘이 있는 방에서 손님이 돌변해 폭행이나 협박을 해도 처벌이 두려워 신고할 수도 없고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길도 없다. 또 사채 때문에 해결 못할 빚이 생겨도 정당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길을 피하게 된다”며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조항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조항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21조 1항이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1961년 제정된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한국의 성매매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역할을 했다. 이 법은 성매매(윤락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1962년 보건사회부가 지정한 전국 104곳의 ‘특정지역’에서 사실상 성매매를 허용하면서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 성매매 특별법은 업주의 성매매 여성 감금·폭행·갈취 등의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업주의 강요에 의해 일한 성매매 여성을 성매매 피해자로 규정했다. 또 선불금, 지각·결근비 등으로 인한 빚은 불법무효채권이기 때문에 갚을 의무가 없다는 내용을 포함시켜 업주와 성매매 여성 간의 종속관계를 시정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신정원 활동가는 “성매매 특별법으로 탈성매매가 이뤄질 수 있게 법적인 지원대책이 마련된 것은 좋은 성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될 무렵부터 단속이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업주들이 신·변종 성매매 업소를 여는 식으로 대응한 것은 여전히 사회적 차원의 성구매 수요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매매로 인한 피해를 일부 완화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탈성매매가 아닌 신·변종 업소로의 유입으로 이어진 것이 한계라는 지적이다. 신 활동가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 규정을 없애고 성매매로 얻는 이득규모에 맞게 업주 위주의 처벌방식을 택해야 이미 산업 수준에까지 이른 조직적 성매매를 근본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