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의 진화 - 블로그, 팟캐스트, 유튜브

2017.07.09 09:53 입력 2017.08.17 15:24 수정
백철 기자

직장인 김훈일씨(32)는 퇴근 후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방송을 자주 본다. 집안에 TV가 없는 김씨가 주로 시청하는 것은 인터넷 개인방송이다. 김씨는 “혼자 살다보니 집에 오면 적적하기도 해서 하나둘씩 보다 보니 지금은 개인방송 마니아가 됐다. 게임방송을 주로 보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방송을 가리지 않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일하고 들어오면 피곤한데 게임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싶진 않다. 직접 게임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이들이 게임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개인방송의 매력에 대해 “친구들과 함께 축구 한·일전을 보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축구도 여럿이서 같이 봐야 재미있지 혼자서 보면 지루하다. 다른 시청자들과 채팅을 하면서 웃고 즐기는 것은 개인방송에서만 찾을 수 있는 행복감”이라고 말했다.

블로그, 팟캐스트 등으로 이어져 왔던 1인 미디어가 또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실시간 영상방송이다. 1인 미디어는 소수의 전유물을 넘어 점점 대중화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는 가장 젊은 층에서부터 시작한다. 지난해 12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16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조사’에 의하면, 1인 방송을 시청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비율은 26.7%로 기존 미디어(라디오, 신문, 팟캐스트 등)를 모두 앞질렀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말 청소년들의 유튜브 시청시간이 케이블TV 시청시간을 처음으로 넘어섰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올해 3월 발표된 나스미디어의 2017 인터넷 이용자 조사보고서(NPR보고서. 국내 인터넷 이용자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10대의 45.3%, 대학생의 41.2%가 1인 방송을 시청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미디어 자몽의 내부 스튜디오./백철 기자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미디어 자몽의 내부 스튜디오./백철 기자

블로그·팟캐스트에서 실시간 영상으로

‘1인 미디어’라는 단어는 역사가 있는 말이다. 2006년 초 포털사이트 다음의 블로거뉴스 서비스는 텍스트 1인 미디어 시대의 도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2011년 ‘나는 꼼수다’ 열풍 이후에는 음성 중심의 팟캐스트 시장이 열렸다. 올해 7월 초 기준으로 한국 최대 팟캐스트 사이트 ‘팟빵’에 등록된 방송 수는 1만개가 넘는다.

블로그, 팟캐스트와 달리 최근 1인 미디어의 가장 큰 특징은 실시간 영상 방송이라는 점이다. 다중채널네트워크(MCN) 기업 미디어 자몽의 김건우 대표(34)는 지난해 촛불집회를 전후로 1인 미디어 제작과 시청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에도 월드컵이나 촛불집회 등 광장에서 거대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후 미디어 환경에도 변화가 왔다. 지난해 페이스북 라이브 등 여러 실시간 방송 기술이 대중화된 것과 맞물려 촛불집회 현장에서 수많은 이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저마다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며 “이들 중 일부만 지속적으로 방송을 하는 창작자가 돼도 1인 미디어 시장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미디어 자몽 스튜디오의 예약 스케줄 표를 펼쳤다. 지난해 7~8월만 해도 스튜디오 예약은 하루 1~2건에 불과했고, 아예 예약이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께부터는 주말까지 하루 4~5건씩 스튜디오 예약이 잡혀 있다. 김 대표는 “우리 회사의 사례를 명확한 근거라고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3년간 MCN 사업을 하면서 최근 몇 개월 사이 확실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현재 1인 미디어가 과거 1인 미디어와 다른 점은 예능 콘텐츠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이후 1인 미디어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팟캐스트는 정치·시사 분야가 주를 이룬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교양·영화·코미디 등 여러 가지 방송이 시작됐지만, 올해 7월 현재에도 팟빵 순위 10위권 방송은 대부분 정치·시사 방송이다.

반면 영상 1인 미디어의 콘텐츠는 예능이 대세다. NPR보고서에 의하면, 1인 미디어를 시청하는 남성들이 가장 즐겨보는 콘텐츠(78.5%)는 게임이다. 여성의 66.7%는 요리, 먹방 방송을 주로 시청했다. 그 외 유머, 뷰티 등 예능 및 생활정보에 가까운 콘텐츠를 보는 이들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미디어는 뉴스·정치 분야에서만큼은 여전히 우위를 지키고 있다. NPR보고서에 의하면, 1인 미디어를 포함한 모든 인터넷 방송에서는 뉴스·정치 분야가 가장 인기가 높다. 이 분야만큼은 기존 미디어가 1인 미디어보다 강점을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등장한 여러 MCN 기업도 더 많은 1인 미디어 생산자와 소비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MCN 기업은 일종의 개인방송 매니지먼트 회사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도를 쌓은 개인방송인들을 돕기도 하고, 개인방송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교육과 지원을 해주는 게 MCN 기업의 일이다. 유명세도 기술도 없는 개인도 MCN 기업을 통해 제작자로 나설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시청자들은 MCN 업체를 통해 양질의 개인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치·시사 분야에서 예능 콘텐츠로

김건우 대표는 1인 미디어 붐을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인기와 비교했다. 그는 “너바나로 대표되는 음악에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것은 쉬운 음악적 구성과 파격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너바나와 비슷한 밴드가 여럿 생겼던 것처럼 나만의 방송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1인 미디어 제작자로 나서는 사람 중 상당수는 이미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주말이나 퇴근 이후 여가시간에 자신의 취미를 나누거나, 도전하고 싶었던 새로운 영역을 방송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분들이 미디어 자몽 등 여러 MCN의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한다. 김건우 대표는 “무언가 창작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방송을 하도록 전략과 기획을 해주는 것이 저와 같은 MCN 업계 종사자들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직장인 김훈일씨도 지난해부터 1인 미디어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200원’이란 아이디를 쓰는 김훈일씨는 격투게임 아마추어 선수 출신으로, 여러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다. 격투게임 마니아들 사이에선 잘 알려진 이름이다.

그는 “한창 대회에 나갈 때는 방송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에 방송할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실시간 방송을 하는 게 매우 쉬워졌고, 덩달아 게임방송의 인기도 높아지면서 나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방송할 때 김씨는 평소에 자신의 컴퓨터로 게임하듯 모니터에 나오는 화면을 그대로 방송으로 내보낸다. 카메라를 통해 게임에 집중하는 김씨의 모습도 화면에 나온다. 게임에서 이기거나 졌을 때의 김씨 반응도 시청자들이 볼 수 있다.

김씨는 1인 미디어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실력이나 콘텐츠 내용보다도 중요한 게 꾸준함이다. 완전히 지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일주일에 최소 3회, 3시간씩 같은 시간에 꾸준히 방송을 했더니 내 방송을 보는 사람이 100명 단위는 넘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김씨는 개인방송에 대한 큰 기대는 오히려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블로그나 팟캐스트를 시작한 사람들 중에 금세 접는 사람들이 많듯이 실시간 방송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아프리카TV나 트위치에 가면 시청자가 10명도 안되는 방송들이 널렸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로 시작해야 꾸준히 할 수 있고, 방송을 꾸준히 해야 입소문을 타고 시청자가 생기는 거다. 처음부터 시청자들과 많은 소통을 나누고 후원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다”며 "지금처럼 퇴근 후에 취매생활하듯 방송하는게 딱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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