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3·5 법칙’을 들어보셨나요?
숫자 3은 ‘징역 3년’, 5는 ‘집행유예 5년’을 뜻합니다. 한국 재벌총수들이 법정에서 꼭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실형을 면하는 현상을 가리켜 이런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집행유예는 징역 3년 이하를 선고할 때만 가능합니다. 일각에선 법원이 집행유예가 가능하도록 낮은 형량을 적용했다고 의심합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정찰제 판결’이란 비아냥도 나왔습니다. (▶징역 3년·집유 5년 재벌편향 ‘정찰제 판결’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재벌 3·5 법칙’ 살아나나)
지난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법원은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3·5 법칙은 깨진 것일까요? 여전히 법원에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법원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등 공소 사실 5개 모두를 유죄로 판단했지만, 유죄 판단시 받을 수 있는 가장 낮은 형을 선고했습니다. (▶징역 5년 받은 이재용, 형량 무거운가 가벼운가)
SNS에서는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가 지난 4월 펴낸 책의 한 대목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정말 ‘3·5 법칙’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2000년 이후 언론 보도상으로 주요하게 다뤄진 대기업집단(재벌) 총수 사건에서 법원이 내린 형량을 정리해봤습니다.
-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탈세)
· 1심 징역 4년
· 2심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상고포기)
2003년
- 최태원 SK그룹 회장 (배임)
· 1심 징역 3년
· 2심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대법원 확정)
2003년
- 손길승 SK그룹 회장 (배임)
· 1심 징역 3년
· 2심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대법원 확정)
2006년
-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횡령)
· 1심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 2심 동일 (상고포기)
2006년
- 박용만 두산그룹 부회장 (횡령)
· 1심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 2심 동일 (상고포기)
2007년
-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 (횡령)
· 1심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 2심 동일 (대법원 확정)
2008년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횡령)
· 1심 징역 3년
· 2심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파기환송심 확정)
2009년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탈세)
· 1심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 2심 동일 (대법원 확정)
2014년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배임)
· 1심 징역 4년
· 2심 징역 3년
· 대법원 파기환송
· 파기환송심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2014년
- 최태원 SK그룹 회장 (횡령)
· 1심 징역 4년
· 2심 동일 (대법원 확정)
2015년
- 이재현 CJ그룹 회장 (배임)
· 1심 징역 4년
· 2심 징역 3년
· 대법원 파기환송
· 파기환송심 징역 2년6월
2017년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공여)
· 1심 징역 5년 (항소심 대기)
이렇게 정리하고보니 3·5 법칙이 실존하는 것으로 보이시나요? 판단은 독자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실제로 유명 재벌총수 사건에서 1심에서 실형이 내려지면 ‘이번에는’이란 기대 섞인 반응이 나왔던 반면, 항소심·상고심 등으로 재판이 이어지면서 형량이 줄거나 집행유예가 선고되면 ‘역시’란 실망감이 분출되는 양상이 반복돼 온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엄격해진 양형기준·재벌개혁 여론에 ‘총수 비리 엄단’ 신호탄 ▶재벌개혁 바람에 총수 사법처리 수위 높아지나)
그러면서 3·5 법칙이 유령처럼 배회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자 각종 개선책도 나옵니다. 재벌총수들이 곧잘 연루되는 횡령·배임죄를 다루는 법률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0억원이 넘는 횡령·배임이 현재는 최하 ‘5년 이상’ 징역형이 하한이지만 이를 ‘7년 이상’으로 높여 감형을 해도 집행유예가 불가능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각종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습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의안명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으로 검색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