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목소리 낸 ‘행동 시민’…삶의 풍경을 바꾸다

2017.10.30 21:03 입력 2017.11.10 16:53 수정

미군 항공기 뜨고 내리던 베를린 옛 공항…어떻게 이런 ‘피크닉 공원’으로 변했을까

[창간 기획-용산의 미래](5)목소리 낸 ‘행동 시민’…삶의 풍경을 바꾸다

2014년 5월25일 독일 베를린 시내에 모여 숨죽인 채 텔레비전 뉴스를 지켜보던 이들은 투표 결과가 화면에 나오자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베를린 시민 전체의 주민투표라는 쉽지 않은 문턱을 시민들의 힘으로 넘어선 것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었다. 방송 화면에는 “템펠호프공항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에 찬성하십니까?”라는 질문에 73만9124명이 ‘예’라고, 41만21명이 ‘아니요’라고 답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만드는 것에 투표자의 3분의 2에 가까운 64.3%가 찬성한 것이다.

지난 8월3일 방문한 베를린의 옛 템펠호프공항 부지의 템펠호퍼펠트공원에서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레저활동을 즐기고 있었다. 공항이었을 당시 활주로로 쓰인 아스팔트 위에서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시민들,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동호인들, 잔디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이들, 공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등 여느 공원과 다를 바 없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잔디 일부에는 개인들이 분양받아 관리하는 조그만 정원도 만들어져 있었다. 불과 9년 전까지만 해도 미군 항공기가 오가던 공항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활주로와 공항 대합실 건물 옆의 레이더 건물 정도가 공항이었던 시절을 짐작하게 해줬다. 아직 공원 조성이 완료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3만명 이상, 평일에도 1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템펠호퍼펠트공원’을 이용하고 있다. 이 공항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시민운동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시민단체 ‘100%템펠호프’의 활동가인 에스더 비트와 마라이케 비트 자매는 “주말에는 바비큐를 하러 오는 시민들로 공원이 가득 차기도 한다”며 “영리행위를 제외한 대부분의 활동이 공원 내에서 허용돼 있다”고 소개했다.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2008년까지 민간항공기뿐 아니라 주독미군의 군용기들도 이용했던 옛 템펠호프공항 부지의 템펠호퍼펠트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위 사진).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2014년 5월25일 옛 템펠호프공항 공원화를 둘러싼 주민투표 결과를 들은 후 환호하고 있다. 이날 투표에서는 부지 전체를 공원화하자는 시민들 측 주장이 64% 이상의 높은 찬성표를 얻었다. 100%템펠호프 제공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2008년까지 민간항공기뿐 아니라 주독미군의 군용기들도 이용했던 옛 템펠호프공항 부지의 템펠호퍼펠트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위 사진).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2014년 5월25일 옛 템펠호프공항 공원화를 둘러싼 주민투표 결과를 들은 후 환호하고 있다. 이날 투표에서는 부지 전체를 공원화하자는 시민들 측 주장이 64% 이상의 높은 찬성표를 얻었다. 100%템펠호프 제공

100%템펠호프라는 단체명은 템펠호프공항 부지 100%를 공원으로 만들자는 의미로 베를린시가 부지 일부를 주거단지, 체육시설, 도로, 주차장 등으로 사용하려 한 것에 반대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군의 반환이 완료되고 베를린 인근의 다른 국제공항 개항을 앞둔 상태에서 템펠호프공항은 2008년 10월 문을 닫았다. 공항이 굳게 폐쇄돼 있는 상태에서 베를린시는 총 305㏊(305만㎡)에 달하는 부지의 41%가량인 125㏊에 4700가구 규모의 주거단지와 체육시설을 짓는 계획을 마련했다. 2010년 5월 베를린시는 폐쇄돼 있던 공항을 시민들에게 임시개방하면서 개발계획도 본격화했는데 공항 내부를 직접 둘러본 시민들 사이에선 개발에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11년 1월에는 빈집점거운동 활동가들이 공원 내를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등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교사나 일반 직장인, 대학생 등 평범한 시민들이 100%템펠호프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공항 부지 내에서 개발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여는 동시에 법적으로 베를린시의 개발계획을 막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에스더 비트는 “법적으로 개발을 막을 방법을 모색하다가 의견이 모아진 것이 주민투표 청구였다”며 “처음에는 20만명의 서명 참여라는 투표 요건 달성이 가능할까라는 의문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투표 요건을 갖추기 위한 서명은 2012년 겨울부터 2013년 초, 2013년 3월부터 2014년 1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마라이케 비트는 “개발 측의 마스터플랜이 시민들의 공분을 자아내면서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나도 이때부터 100%템펠호프 운동에 참여했다”며 “우리는 제각각 운동 측 진영에 합류했는데 활동을 하다보니 4남매 모두가 반대운동을 하고 있었다”고 웃음을 지었다. 베를린 시민들의 개발반대운동 참여를 독려하는 결과를 낳은 베를린시의 개발계획은 템펠호퍼펠트공원을 주변의 주거단지가 둘러싼 형태다. 반대 측 시민들은 공원의 어떤 부분도 사유화에 반대한다는 것을 표어로 내걸어 높은 호응을 얻었다.

베를린 시민들이 템펠호프공항의 공원화에 이렇게 큰 관심을 보인 이유는 템펠호프공항이 독일 현대사에서 베를린 시민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기 때문이다. 템펠호프공항 건물을 처음 세운 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다. 나치가 군용기를 만들던 템펠호프공항의 일부는 종전 이후 미군이 사용하게 됐다. 1948~1949년 구소련의 베를린 봉쇄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서베를린으로 식량과 연료 등을 대규모로 공수했을 때 바로 템펠호프공항이 물자를 받는 창구였다. 서베를린 시민들의 생명줄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인 셈이다. 당시에는 기상이 악화돼 템펠호프공항에 착륙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 서독 비행기가 물자를 전달하지 못한 채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회항하는 일도 벌어졌다. 용산 미군기지가 몽골군, 일본군, 미국군 등 외세의 침략 또는 주둔에 얽힌 역사적인 공간인 것과 마찬가지로 템펠호퍼펠트공원 역시 독일 현대사의 질곡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인 것이다.

2014년 주민투표 이후 100%템펠호프 활동가들과 베를린시는 꾸준한 대화를 이어가면서 천천히, 제대로 된 공원을 만들기 위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100%템펠호프 활동가들을 만난 3일 저녁에도 시민들과 베를린시 직원들의 공원 조성 관련 회의가 열렸다. 템펠호퍼펠트공원을 방문한 다음날 만난 베를린시 담당자들은 “2016년부터 포럼 형태의 모임을 만들어 시민대표 7명, 시청 측 2명, 공원관리업체 2명 등이 공원 조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시 이블린 보덴마이어 템펠호퍼펠트공원 담당자는 “모든 회의 내용은 바로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고, 양방향으로 의견도 주고받는다”며 “주민투표 이전 시민들이 시청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기 때문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주민투표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앞으로의 공원 조성계획에서 결정된 사항은 전혀 없는 상태다. 충분한 논의를 통해 만장일치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베를린시 산하 행정부처들은 이를 실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보덴마이어는 “완공 시기 등을 포함해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베를린시는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이 모아지면 이를 집행하는 방식으로 공원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시개방을 통해 내부 모습을 알게 된 시민들이 힘을 모아 개발을 막아내고, 투표 이후 민관이 협력해 공원을 만들어가는 템펠호프공항은 이미 용산 미군기지 반환과 공원 조성에 관심이 높은 이들이 주목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취재 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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