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주민참여·도의회 협력…‘지역 내 분권’ 확립이 관건

2018.02.13 06:00 입력 2018.02.13 06:02 수정

자치권 강화 실험한 지자체장

[헌법 11.0 다시 쓰는 시민계약]재정, 주민참여·도의회 협력…‘지역 내 분권’ 확립이 관건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에 관해 제117조 2개 조항에서 언급하고 있다. 1991년 지방의회 선거가 있기 전에 만들어진 탓에 지방자치에 관해 많은 내용을 담지 못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안 제119조 2항은 위임사무비용을 위임하는 정부가 부담하도록 해 비용전가를 금지했다. 중앙정부가 약속하고 비용은 지역교육청이 내도록 해 생겨난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규정한 것이다. 동시에 제119조 1항에서 지방정부의 재정 책임성을 강조했다. 외부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비용을 부담해 업무를 처리하고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로 지방자치가 본격화한 지 23년이 지났다. 2014년 선출된 현 민선 6기 단체장들은 지역의회와의 소통·협의를 강화하거나 주민참여를 확대하고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지방자치를 강화하려는 다양한 실험을 했다. 주요 지방단체장들의 활동을 재정 관점에서 살펴봤다.

■ 시민 참여 보장한 박원순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과 직접 ‘거래’했다. 마을공동체 사업,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주민참여예산 등 시민들이 참여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몇 개의 지자체들이 시도한 주민참여예산제도는 2011년 지방재정법상 의무화됐지만 서울시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참여예산 규모를 500억~700억원으로 키웠고 제도를 정교화·실질화하는 데 공을 들였다.

이를 통해 예산 결정에 대한 주도권을 시민들 손에 넘겨줬다. 관은 기획자에서 내려와 조정자로 변신했다. 시민들이 직접 사업을 공모했고 시민들이 직접 심의·결정할 수 있도록 참여예산위원회, 민관예산협의회, 주민참여예산학교 등 기구를 통해 권한을 부여했다.

주민들이 모임을 조직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서울시는 주민참여예산학교 등 학습기관을 지원하면서 상설적인 참여 시스템을 만들었다. 전체 예산 30조원을 모니터링하며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을 반영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2017년부터 참여예산위원을 300명으로 늘려 기능을 분리했다. 이런 서울시 모델을 벤치마킹해 기획재정부가 올해부터 국민참여예산제도를 실시한다. 지방정부의 제도를 중앙정부가 배워간 경우다.

이에 대해 전문성 없는 시민이 예산을 결정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최승우 좋은예산센터 기획팀장은 “참여예산은 시민이 어떻게 살고 싶으냐를 묻는 것”이라며 “사회기반시설 사업이 많다고 비판하는데 잘 보면 공무원이 기획하는 것은 도로이지만 시민이 기획하는 것은 보도이다. 동네를 걷는 사람과 차로 다니는 사람의 차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장 전에는 행정 경험이 없는 박 시장이 주민과 직접 거래하는 것은 의회권력을 우회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의회권력과 시민참여가 보완 관계가 되는 것은 중요하다”며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시민사회를 우회해서 의회권력을 통제하려고 했다면 박원순 시장은 의회권력을 우회해서 의회와의 갈등을 피하고자 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 야당과 예산권 나눈 남경필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지방자치 역사상 처음으로 연정을 했다. 남 지사는 2014년 도의회 다수당인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에 연정을 제안, “도의회와 예산 편성권을 나누겠다”고 밝혔다. 여소야대 국면을 넘어서려는 방법이었다. 야당에 사회통합부지사(이후 연정부지사) 자리를 내줬고 지자체 처음으로 산하 공공기관장 인사청문회도 실시했다.

경기도 연정은 재정권을 대폭 양보하는 것이었다. 1기 연정에서는 야당 사회통합부지사가 일부 국실의 예산·정책을 관장하는 형태였다. 당시 환경국, 보건복지국 등이다. 그러다 2016년 2기 연정에서는 전체 예산 19조6700억원의 7%에 달하는 1조4000억원 규모의 288개 민생사업에 도정부와 도의회가 합의했다.

각 당에서 필요한 사업, 의원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편성하게 한 것이다. 연정사업으로 생활임금제가 도입됐고 경기도형 청년수당(청년구직지원금제)이 시행됐다. 도의회에 자율예산편성권도 부여했다. 이 재정 연정으로 여소야대 국면에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갈등이 예방되는 효과가 있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소장은 “기관대립형이던 도정부와 도의회 사이의 관계가 연정으로 조정할 수 있는 여력이 많이 생겼고 도정부 관료들도 도의회에서 돈을 쓰게 되니까 도의원과 도당을 존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계는 원내에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정당에 한정했고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 양당의 거래라는 점이다. 시민사회와 주민의 이해관계를 직접 반영하기 어려운 상층부 중심의 연정 구조였다.

연정 예산이 도의원 요구 사업을 수용한 ‘예산 나눠먹기’라는 비판도 받았다. 김상철 연구위원은 “지방자치가 시민주권을 강화하는 것이라면 경기도 연정의 경험이 도민의 정치적 감각, 시민 역량을 강화하는 데 무슨 도움을 줬느냐 역으로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가계부 공개한 안희정

안희정 충남지사는 2013년 실시간재정공개시스템을 도입했다. 도지사가 세입·세출 예산 운용 상황을 매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편성된 예산을 보여주고 그 다음해 결산이 끝나면 그 결과만 보여주는 식의 1년 주기가 1일 주기로 바뀐 것이다. 안 지사는 재정에 대한 투명성 확보가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라고 봤다.

충남도의 재정정보 공개 시스템은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안 지사가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해 널리 알려졌고 2014년 세입·세출 예산 운영 현황을 공개하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통과돼 2016년 시행됐다. 이에 따라 전국 지자체는 예산 내역과 총수입액, 총지출액, 일자·기간별 현황 등 세입·세출 예산 운용 상황을 의무적으로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나라살림연구소는 2015년 시민의 감시와 참여, 정책입안 결정자의 판단과 절감, 사업자의 예측과 신뢰성 등 23개의 평가 지표를 구성해 전국 지자체별 재정정보 공개제도를 평가했다. 서울은 64.5점, 충남은 67.25점(100점 만점)으로 다른 지자체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전국 평균은 36점, 일부 지자체는 17.5점에 그쳤다.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부소장은 “충남은 재정 정보뿐 아니라 실제 사업 내용을 연계해 공개하고 있다는 게 의미가 크다”며 “예산을 들여다보며 사업 내용까지 알 수 있게 해놨다”고 말했다. 이 부소장은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모를 때는 주민들이 지원금을 받으면 공무원들이 시혜를 베푸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게 되니 행정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 공공서비스 확대한 이재명

“세금은 국가안보,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복지에 최대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남시 예산편성의 기본 원칙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청년배당·무상교복 지원·공공 산후조리 지원 사업 등 ‘3대 무상복지사업’을 임기 내 확대해왔다. 이 시장은 “살림 잘해서 시민들에게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것이 소신행정”이라고 밝혀왔다. 공공서비스를 직접 수행한다는 점에서 이 시장은 다른 단체장들과 구별된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늘어난 민간 위탁 구조로 행정기관도 민간 사업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지원해왔다. 이 시장은 행정이 직접 공공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돌아갔다. 행정기관이 직접 나와 이해관계를 맺는 공공서비스 생산자로 등장한 것이다. 간접 지원하는 비용을 줄이고 주민에게 직접 혜택을 늘리는 결과도 가져왔다.

반면 이 시장은 복지 사업을 발표할 때마다 이벤트성이라거나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행정이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시민들의 편익을 제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느냐는 것이다. 예산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도 임기 4년을 넘어 10~20년 후의 지역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는지,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했는지 등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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