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돈 내놓으라며 행패 부리는 삼촌

2018.09.23 14:01
배상훈 전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장(프로파일러)

·바라건대, 이번 추석에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술을 먹고 “왜 나는 재산을 적게 줬냐”며 행패 부리는 ‘삼촌’은 더 이상 볼 수 없길 빌어본다. 부모의 재산은 자식들 것이 아니라 부모의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왔다. 혼사남·혼사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추석 연휴는 ‘집안 잔소리’와 별개로 경찰 치안과 관련해서도 몇 가지 특이점이 제시된다. 경찰청 치안 통계에 따르면, 추석 연휴 이후 이혼신청이 급증(대략 전달 대비 30% 상승)하고, 가족 사이의 폭력신고가 폭증해 지구대 경찰들의 출동건수가 전달 대비 50% 이상 증가한다고 한다.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여 회포를 푸는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술이 들어가면서 이전의 감정문제가 폭발한다는 점이다.

가정 내 불화 등을 다룬 영화 <똥파리>의 한 장면. / 공식사이트 캡쳐

가정 내 불화 등을 다룬 영화 <똥파리>의 한 장면. / 공식사이트 캡쳐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사회 변화는 가족 사이의 관계까지도 불균형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문제가 상대적 박탈감이 수반된 불평등한 상속과 관련된 재산문제이다. 다음은 최근 필자가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접한 사례다. 필자에게 온 사연을 공개한다.

재산 지분이 본인에게 있다는 생각

“메일을 보내기까지도 많은 고민이 있었고 매일매일 달라지는 상황에서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 용기를 냈습니다. 가족 내의 문제인 만큼 어느 곳에도 상의하기가 쉽지 않아 속으로 앓고 있습니다. 삼촌 한 분이 젊었을 때부터 다른 가족들에게 감정적으로 어긋나면 술을 먹고 와 칼이나 주변 물건들로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을 했습니다. 가족들은 동네 창피하다며 쉬쉬하고 술이 깬 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삼촌을 다독이며 이제껏 용서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삼촌이 재산 분배에 불만을 갖고 저희 부모님께 욕설과 성희롱 발언, 살해 협박 등을 했습니다. 할머니를 비롯해 다른 가족들은 저러는 게 잠시일 것이고 그때만 그러다가 말 것이니 혼내주겠다는 말만 하고 덮으려고 합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삼촌 미래가 걱정이 되신다는 어른들 말도 일리가 있어서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를 할까 생각하다가도 그동안 보낸 문자나 카톡, 녹음된 통화내용을 보면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집을 제외한 가족들은 다시 시간이 지나면 삼촌이 정신 차리고 잘못했다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삼촌의 주폭을 덮어주는 가족들도 잘못이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냥 주폭으로 한 번 넘어가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몇십 년간 가족들에게 지속되어 오던 주폭에 대하여 적절한 치료와 처벌을 받게끔 하는 게 맞는 것인지요? 정말 누구한테 말하기 어렵고 상의할 수 없어 심적으로 힘들고 좋지 않은 생각까지 하게 되는 등 익숙지 않은 상황들 때문에 혼란합니다. 부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한 집 건너 하나 정도는 이런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 가장 깊은 곳에는 가산 공유 의식이 있다. 즉 가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난 이상 가족 공유재산에 대해 현실적으로 부모의 명의로 돼 있더라도 재산에 대한 지분이 본인에게 있다는 생각이다. 누구는 대학을 가서 교육을 받았으니까 그만큼의 교육비를 받지 못한 자신은 교육비에 상응하는 지분의 재산을 어떻게 해서든지 가지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또 형제자매 중 누구는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니 상대적으로 소홀한 대접을 받았던 본인은 그에 합당한 지분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역시 그것이다. 누구는 딸이니, 누구는 아들이니, 누구는 장남이니, 누구는 막내이니 등 갖가지 이유와 곡절은 수만 가지도 넘는다. 그러나 그 기저에 있는 딱 하나의 문제는 가산 공유의식이다.

서구의 아이들은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따로 방을 쓴다. 청소년기 이후에는 부모와는 독립된 롤을 가진다고 믿는다. 자녀의 삶은 자녀의 인생이지 부모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다. 일본의 가족도 가계를 이어받는 상속자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자녀들은 독립된 삶이라고 인식된다. 중국도 형제들 사이에 엄격한 물적 상속으로 인해 서로는 서로에 대해 독립된 개체가 된다. 몽골과 같은 유목민들은 ‘말자상속(末子相屬)’이라는 전통을 가진다. 첫째부터 나이가 차면 적당한 가축을 분양받아 독립된 삶을 살아간다. 맨 마지막에 남은 막내가 가족의 재산 및 신분, 제사권 등을 상속받는 것을 말자상속이라고 한다.

부모도 자식의 일에 간섭하지 말아야

그런데 상당히 독특하게도 한국인들은 인류사적으로는 유별난 가산 공유 중심의 가족의식의 유제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관념에 비춰봐도 이상한 노릇이다. 조선시대 관습은 모든 재산은 장자 상속이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부모에게 재산을 달라고 패륜을 저지르며 장남 또한 자신의 지분이 작다고 분노하면서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주어지는 일부 상속분에 시비를 걸까.

적지 않은 연구결과를 통해 논증된 바에 따르면 한국의 가족전통은 수천년 동안 균분 상속, 혹은 평등 상속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유교적 제사를 강요받은 조선시대에 잠시 잠깐 장자에게 제사에 소용될 재산을 일부 더 주었을 뿐, 그때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형제자매 사이에 가산을 공유하는 가족체제였다. 장자 상속제도는 유교문화에서 잠깐 존재했을 뿐 우리 고유문화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가산 공유는 가족 자체의 생존에는 불리하지만 반대로 가족 구성원들의 생존에는 매우 유리한 시스템이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가계의 계승이라는 관념과 그를 위한 윗세대의 희생이 전제된다. 그리고 그러한 희생정신을 자연스럽게 아랫세대가 이어받는 시스템으로 한국은 인류사적으로 보기 드문 가족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여러 시련을 거쳐 일궈낸 근대화와 민주주의를 세우려 노력해온 대한민국에서 지금의 우리 가족은 어떠한가. 우리의 부모세대는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경제적으로 노후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이고, 자녀세대는 일자리와 주택문제, 교육문제로 뼈를 깎고 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바라건대, 이번 추석에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술을 먹고 “왜 나는 재산을 적게 줬냐”며 행패 부리는 ‘삼촌’은 더 이상 볼 수 없길 빌어본다. 부모의 재산은 부모의 것이다. 자식세대들은 왜 돈을 들여 좋은 학교를 보내주지 않았냐, 혼수를 왜 다른 형제자매보다 적게 해눴냐 등등 ‘역(逆)잔소리’를 하는 것 대신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부모님들의 희생을 헤아리고, 부모님들도 자식의 진로나 결혼·출산·육아 등은 자식세대의 일이니 간섭하지 않는다면 이번 명절은 조금 더 편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감히 말하지만 가족이 공유해야 할 것은 부모님의 피땀이 들어간 가산이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 그 자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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