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출신, 로스쿨 출신 의미 없다…실력있는 자만 살아남는다”

2018.10.27 14:49 입력 2018.10.27 15:41 수정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2015년 12월 9일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 옆에서 사법시험 폐지를 반대하는 고시생이 일인시위를 동시에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2015년 12월 9일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 옆에서 사법시험 폐지를 반대하는 고시생이 일인시위를 동시에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올해로 로스쿨 개원 10년을 맞았다. 그동안 7차례 변호사시험이 치러졌고, 지난해까지 9285명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배출됐다. 지난 10년의 역사는 사법고시 출신의 현역 법조인과 사법고시 준비생들, 그리고 로스쿨 출신 신규 법조인과 로스쿨 재학생들 간의 지난한 다툼의 역사이기도 하다.

54년간 유지돼 온 사법시험은 지난해 55명의 합격자를 끝으로 폐지됐다. 그러나 여전히 사법시험 준비생 모임이 존재하고, 이들은 로스쿨 폐지·사법시험 부활을 주장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와 사법고시 출신 변호사 간에 두드러지는 불화나 갈등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지만 여전히 서로를 나누는 보이지 않는 벽은 존재한다.

처음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이 인가를 받을 때부터 나왔던 우려의 목소리는 ‘사법서비스의 질 저하’였다. 한 해 1500명 가까운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이 부정확한 법률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소위 ‘이길 수 있는 사건’마저도 패소해 결국 의뢰인의 소송비용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연수원 출신들의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10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퇴색됐지만 여전히 ‘로변(로스쿨 출신 변호사. 사시 출신과 구별하는 용어로 쓰인다)’을 둘러싼 수많은 편견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편견은 초창기 판사, 변호사들이 겪은 몇몇 사례에서 비롯됐다.

“2013년도였나…, 수도권 법원에서 1심 재판장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간단한 사건이었는데 원고 측 변호사가 당연히 냈어야 할 입증서류와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변호사를 세워서 ‘왜 이러이러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냐’고 물어보는데 그 변호사의 눈빛이 ‘지금 저 재판장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이지?’ 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내가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게 저 변호사를 위해 옳은 일인지 그 순간 혼란도 왔습니다. 재판부 직원에게 포스트잇을 빌려 재판부에 제출해야 할 서류를 하나하나 작성해 전달했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와 그 변호사의 이름을 찾아보니 로스쿨 출신이었습니다.”(현직 고등법원 판사)

2014년 열린 전국 25개 로스쿨 공동 입학설명회에 지원자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2014년 열린 전국 25개 로스쿨 공동 입학설명회에 지원자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한 때는 명함에 출신 구분 주장도

“파트너 변호사가 사건을 나눠주는데 저와 로변에게 배당되는 사건 수가 6대 4였습니다. 월급에 차이가 났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하루이틀이면 끝날 서류작업을 그 사람은 일주일이 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하다못해 간단한 의견서 한 장을 쓰는 데 목차를 나눠 쓰고 있는 걸 보니 솔직히 답답했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파트너변이 주는 사건 비율이 7대 3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로변에 대해 (제가) 좋은 감정을 가지기는 어려웠죠.”(41기 현직 변호사)

일부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사법고시 출신과 변호사시험 출신을 구별하기 위해 변호사 명함에 양쪽을 구분할 수 있는 경력 문구를 삽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변협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당시 1기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치사해도 그렇게 치사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2015년 9월에는 사법연수원 35~42기 법조인 10명과 연구원이 함께 쓴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로스쿨의 진실>이라는 책도 나왔다. 책에는 사법고시 출신들이 바라보는 로스쿨과 로스쿨 교수, 로스쿨 출신 변호사에 대한 시각이 적나라하게 제시된다.

“현재 로스쿨 내 실무가 출신 교수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실제 재판에서 변론 한 번 해본 적 없고 소장 한 번 써본 적 없는 백면서생들이 법률실무가를 양성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재판을 책으로 배운’ 비실무가에게서 교육을 받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과연 국민들의 생명, 신체, 재산을 얼마나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을지 우려가 적지 않지만 이 점에 대해 로스쿨은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의사 자격증도 없고 수술 한 번 해본 적도 없는 의대 교수로부터 의술을 배운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길 환자가 있을까? 로스쿨에서는 사법시험에 응시한 적조차 없거나 여러 차례 낙방한 끝에 어쩔 수 없이 학자의 길로 들어선 ‘고시낭인’ 출신 교수가 장차 법조계를 이끌어 가야 할 법률실무가들을 길러내고 있다.”(책 115~116페이지)

2015년 7월 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로스쿨 출신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선서를 하는 모습. 로스쿨 출신 판사 임용은 이때가 처음이다. / 서성일 기자

2015년 7월 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로스쿨 출신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선서를 하는 모습. 로스쿨 출신 판사 임용은 이때가 처음이다. / 서성일 기자

대형로펌 급여수준 양쪽 출신 동일

“로스쿨 출신 변호사에게 경험을 쌓게 한다는 미명 하에 실험대상 ‘마루타’로 전락하는 국민들의 고귀한 생명, 신체, 재산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그동안 국민들이 변호사를 선임할 때 누구에게 사건을 맡겨야 할지만을 고민했다면 앞으로는 변호사들의 실력 검증부터 마친 후에 사건을 맡겨야 할지도 모른다.”(167페이지)

그렇다면 현재 로스쿨 출신 변호사, 판사와 함께 근무하는 기존 시니어 법조인들의 평가는 어떨까. <주간경향>은 변시 출신의 재판연구원(로클럭)과 함께 근무했던 중견급 판사들과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들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들어보았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이제는 사법고시 출신과 로스쿨 출신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실제 대형로펌들은 사법고시 출신과 로스쿨 출신에 대한 급여도 동일한 수준으로 지급하고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로스쿨 출신도 사법고시 출신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놓고 사시 출신 변호사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며 “그런데 로펌 입장에서는 로스쿨 내에서 우수한 인력을 끌어오기 위한 유인을 다양하게 둬야 하는데 ‘로스쿨 출신은 사시 출신보다 급여가 낮다’고 말하면 훌륭한 경력과 성적을 가진 로스쿨 출신이 우리 로펌에 오지 않을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또 다른 로펌 관계자는 “사법연수원 출신은 법대 4년에 사법연수원 2년 경력이 있는데 로스쿨 출신은 학부를 제하고 로스쿨 3년에 의무실무연수 6개월이 전부이기 때문에 양 출신을 동일하게 1년차로 취급하기 어려운 점은 있지만 그렇다고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당신은 연수원 출신 1년차보다 0.5년 경력을 낮게 쳐서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과 함께 송무를 담당하는 한 시니어 변호사는 “일을 시켜보면 로스쿨 출신은 아주 기본적인 서면작성 능력이 연수원 출신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런 기술적인 부분은 한두 달 연습하면 금방 따라올 수 있는 부분이고, 오히려 데리고 있어보면 지방대 로스쿨 출신이 더 일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잘 해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대+사법고시 출신’이 ‘지방대+로스쿨 출신’에 비해 더 일을 잘한다는 식의 평가는 실무에서는 정말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했다.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대법원 앞에서 사법농단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대법원 앞에서 사법농단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비법대 출신 늘어 다양한 시각 가능

로클럭에 대한 법원 내 평가는 후한 편이다. 로클럭을 두고 재판업무를 해본 경험이 있는 판사 15명 중 13명이 “잘 해내고 있다”고 답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비법대 출신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기존 ‘법대+사법연수원’ 출신보다 다양한 시각 면에서는 더 큰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특히 로클럭에 지원한 로스쿨 출신들은 대부분이 로스쿨 내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낸 사람을 중심으로 엄선해서 선발하는 만큼 기존 사법연수원 출신과 비교해 실력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편이라고 평가했다. 한 고법 판사는 “아무래도 재판연구원들은 법원에서 1~2년간 근무한 경험을 갖고 이후 판사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누가 더 잘한다 할 것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신규임용되는 판사 가운데 재판연구원 출신은 증가추세다. <주간경향>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신규임용된 법관 111명 가운데 재판연구원 출신은 27명(24.3%)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109명 가운데 25명(22.9%)이, 2017년에는 161명 중 60명(37.2%)이 재판연구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 내에서는 판사들은 야근해도 야근수당이 나오지 않는데 로클럭들은 야근수당도 나온다는 부러움 섞인 칭찬도 들을 수 있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로클럭들은 계약직 공무원 신분인데 이 친구들이 아무래도 밤새 일하는 경우가 많아 특근비도 많이 타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석부장판사가 이들의 근무시간을 체크해 일한 만큼 수당을 타갈 수 있도록 독려하기도 하고, ‘우리 연구원들이 고생한다’고 걱정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일부 고법 부장판사 중에 로클럭이 작성한 판결문 초고를 거의 수정도 하지 않고 내놓아 배석판사보다 고등 부장판사 주심사건 판결문의 질이 떨어진다는 뒷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10명 이상의 로클럭과 근무한 한 고위법관은 “법만 학부 때 4년, 고시공부하면서 몇 년, 연수원에서 2년을 공부한 사법고시 출신들의 시야는 (나도 그랬지만) 좁은 편이다. 그런데 지난 7년 사이 연수원 출신과 비법대 출신 로클럭들을 두루 접하면서 내가 바라보는 시각과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을 어린 친구들을 통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로스쿨,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

로스쿨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양질의 로스쿨 출신 법률가가 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는 ‘실력 편차’다. 검사로 임용되는 인원, 로클럭 및 판사로 임용되는 인원, 국내 10대 로펌에 취직하는 인원을 제외한 대다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실력은 사실상 검증되지 않는다. 기존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이 주장하던 법률서비스 질 저하 문제가 단순한 우려는 아니라는 지적이 로스쿨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법원이나 검찰, 대형로펌들은 대부분 부정하지만 로스쿨 시장에도 여전히 ‘입도선매’가 존재한다. 문제는 끝까지 채용되지 못하는 대다수의 변호사들이다. 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작은 법률사무소에라도 취직하기는커녕 실무연수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는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4월 심포지엄에서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연간 1000명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가 로스쿨 측의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사법연수원도 35기부터 1000명씩 배출하면서 실력있는 법조인과 형편없는 법조인의 스팩트럼이 넓어졌다”며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줄이는 문제는 단순히 기득권의 밥그릇 싸움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고 자리를 잡는 변호사는 한 기수당 전체의 20~30%도 되지 않는다.

사실상 대부분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허허벌판’에서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무급으로 일할테니 일할 기회만 주면 안 되냐’는 연락을 한 해에 6~7건씩 받는다”며 “로스쿨 제도에 대한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한 현재의 인원을 계속 배출하는 것은 막말로 ‘사법 쓰레기’를 양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로스쿨의 특성화 교육도 형해화된 지 오래다. 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1~2기 로스쿨은 그래도 특성화 트랙을 충실히 밟았지만 그 이후로는 사실상 로스쿨별로 특성화 교육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다수의 로스쿨들이 특성화 교과를 ‘전공필수’에서 ‘선택과목’으로 슬그머니 미뤄놓고 있는 실정이다.

홍태석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지난해 <법이론실무연구지>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변호사시험 합격률 평균이 50% 초반이 되자 특성화 과목에 대한 교육은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합격률이 30%대로 추락한 일부 지방 로스쿨도 합격률 상승에 사활을 걸고 있어 이른바 ‘변시학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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