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을 미용실 간판으로? “창작자는 괴로워”

2019.02.10 10:02 입력 2019.02.20 16:14 수정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셀카’에 ‘배경’으로 등장한 경험, 있으신가요? SNS가 일상이 된 시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인증샷’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세상입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길을 걷다 의도치않게 누군가의 사진에 찍혀 타인의 SNS에 등장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타인의 허락없이 사진을 찍고 이를 유포했다면 초상권 침해에 해당하는데요, SNS상에서 공유되는 ‘얼굴들’의 권리는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SNS 초상권’을 둘러싼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봤습니다. ※이 기사는 각 회당 설문조사를 통해 독자의 의견을 들어보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기사를 읽고 투표에 참여해주세요.


ㄱ씨가 2015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찍은 사진(오른쪽)을 고 박정희 대통령 사진과 나란히 담은 책 표지(왼쪽). 검찰은 ㄱ씨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사진을 사용한 출판사 대표 ㄴ씨에 대해 “유명인의 사진이이서 저작권이 있을 것으로 쉽사리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저작권법 위반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ㄱ씨가 2015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찍은 사진(오른쪽)을 고 박정희 대통령 사진과 나란히 담은 책 표지(왼쪽). 검찰은 ㄱ씨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사진을 사용한 출판사 대표 ㄴ씨에 대해 “유명인의 사진이이서 저작권이 있을 것으로 쉽사리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저작권법 위반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책 표지에 사용된 사진 때문에 법정에서 싸움을 진행 중인 ㄱ씨의 사례를 지난 회에서 소개해 드렸습니다. ㄱ씨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출판사 대표 ㄴ씨를 고소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는데요. “이 사진은 유명 정치인의 인물 사진이어서 그 사진에 저작권이 있을 것이라고 쉽사리 예상하기는 어렵고, ㄴ씨가 구글 검색으로 다운받은 사진에는 저작자 표시나 저작권법 보호 대상이라는 문구가 전혀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ㄱ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정신청을 하는 한편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ㄴ씨를 상대로 민사 소송도 냈습니다. 사진 한 장 때문에 어찌 이렇게까지 하게 된 것일까요?

■구글에 쉽게 나오니 괜찮다?

ㄱ씨는 “단지 유명인의 사진이고 쉽게 검색된다고 해서 저작권 침해를 용인한다면 창작자들이 설 땅은 너무 좁아진다”고 소송을 진행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검찰은 ㄴ씨가 구글 검색으로 다운받은 사진에는 저작자 표시나 저작권법 보호 대상 문구가 없다고 밝혔는데요. ㄱ씨는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릴 때 마다 표시를 명확히 했다고 합니다.

ㄴ씨가 구글에서 ‘잘생긴 대통령 문재인’을 검색해 다운받았다고 주장하는 사진. ㄱ씨가 2015년 찍은 사진을 2017년 대선 때 누리꾼이 변형해 공유하는 과정에서 저작권자 표시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ㄴ씨가 구글에서 ‘잘생긴 대통령 문재인’을 검색해 다운받았다고 주장하는 사진. ㄱ씨가 2015년 찍은 사진을 2017년 대선 때 누리꾼이 변형해 공유하는 과정에서 저작권자 표시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ㄴ씨가 다운받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사진에는 이런 표시가 모두 빠져있었습니다. 누리꾼이 ㄱ씨 사진을 다시 꾸미는 과정에서 지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선거 포스터처럼 기호 ‘1’을 붙여 넣고 소속 당명 자리에 ‘잘생긴 대통령’이라고 쓴 이 사진은 지난 대선에서 ‘#잘생긴_대통령_문재인’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널리 퍼졌습니다. ㄴ씨는 이 사진과 관련해 “선거 포스터를 썼으니 저작권법 28조에서 허용한 ‘공표된 저작물 인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ㄱ씨는 “설령 변형된 이미지로 사진을 처음 접했다 하더라도 ‘구글 이미지 검색’ 등을 이용하면 원작자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인데 ㄴ씨가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상담사례를 보면, 저작권자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허락 없이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추후에 저작권자가 나타나면 이용료를 지불하겠다고 밝히고 쓰더라도 면책사유는 되지 않습니다.

ㄱ씨의 법률대리인 방수란 변호사는 “검찰은 ㄴ씨가 저작권을 고의로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출판업자로서 저작권자를 찾으려는 사전 조사와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이라고 해서 상업적으로 이용하도록 허락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더 널리 퍼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건을 훔치는 것과 똑같습니다”

창작자들은 SNS가 작품 홍보의 중요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저작권을 존중 않는 이용자들 때문에 고충이 크다고 토로합니다.

‘그림왕 양치기’라는 별명을 쓰는 현대미술 작가 양경수씨는 직장인이 겪는 부조리하고 답답한 상황을 표현한 일러스트로 유명한데요. SNS를 활발히 하신다면 한 번쯤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양씨도 최근 저작권과 관련해 법적 대응을 검토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작가님 그림을 어느 미용실에서 간판에 쓰고 있어요.” 그는 팬들로부터 이런 제보를 워낙 자주 받는다고 하는데요. 특히 양씨 그림에서 문구만 바꿔 가게 홍보물처럼 이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양씨가 그린 일러스트를 무단으로 변형해 가게 홍보물로 만든 사례

양씨가 그린 일러스트를 무단으로 변형해 가게 홍보물로 만든 사례

양씨가 그린 일러스트를 무단으로 변형해 가게 홍보물로 만든 사례

양씨가 그린 일러스트를 무단으로 변형해 가게 홍보물로 만든 사례

양씨가 그린 일러스트를 무단으로 변형해 가게 홍보물로 만든 사례

양씨가 그린 일러스트를 무단으로 변형해 가게 홍보물로 만든 사례

양씨는 페이스북 ‘그림왕 양치기의 약치기 그림’ 계정과 인스타그램에 새로 그린 일러스트를 꾸준히 공개해 왔습니다. 직업적 성장에 SNS의 도움이 있었음을 그도 인정합니다. “제 그림을 개인적으로 짤(온라인 게시글에 첨부하는 그림)로 쓰시거나 프로필 사진으로 해 두시는 건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 낙에 작업을 하거든요.”

하지만 그림을 공개하는 것과 상업적 이용을 허락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허락없이 변경하는 것 자체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오기석 연구위원은 “저작권에는 재산권 뿐만 아니라 인격권도 있어 함부로 변형하면 인격권 침해까지도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양씨는 창작활동으로 생계를 잇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도용에 노출돼 힘들어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림을 광고에 쓰는 것은 작가들에겐 생활을 이어 나가는 중요한 경제적 수단이기도 하거든요. 창작물을 함부로 훔쳐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더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김밥 한 줄, 물 한 통 훔쳐도 범죄인데…. 인터넷에서 쉽게 접하는 창작물에 대해서도 ‘물건’처럼 권리가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SNS와 초상권⑤]내 그림을 미용실 간판으로? “창작자는 괴로워”


[6화 예고]내가 찍은 사진에 저작권이 없다고?···‘일상 사진’ 저작권 Q&A
분명히 내가 찍은 사진인데 저작권이 내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진이 저작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다음 회에는 일상에서 찍은 사진도 저작물로 인정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