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그냥 손님…제지할 이유 있나요”

2019.05.09 06:00 입력 2019.05.09 10:53 수정

노키즈존 논쟁 속 ‘예스키즈존’ 가보니

<b>“유아 동반자·임산부에 양보해주세요”</b> 8일 서울 서대문구의 베이글 전문점 마더린러에 임산부 및 유아 동반 고객을 우선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유아 동반자·임산부에 양보해주세요” 8일 서울 서대문구의 베이글 전문점 마더린러에 임산부 및 유아 동반 고객을 우선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노키즈 식당은 아동 차별”
인권위 시정 권고에도 불구
입장차 부각되며 공전 중

‘분리’ 대신 ‘공존’ 지향하는
예스키즈존 운영 증가 추세
“사업에도 도움” 목소리도

“임산부 및 3살 이하 유아 동반자 고객을 우선적으로 도와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카운터로 오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고객님들의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베이글 전문점 ‘마더린러’에 붙은 안내 문구다. 매장 안 테이블은 고작 3개 남짓. ‘베이글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가게에는 매일 긴 줄이 늘어선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랜 시간 줄 서면 힘들거든요. 엄마들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안내 문구를 붙였어요.” 사장 정정자씨(62)는 안내 문구 부착 이후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유아 동반자나 임산부에게 먼저 줄을 양보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노키즈(No Kids) 식당은 아동 차별”이라며 시정을 권고했다. 그 후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어린이 입장을 거부하는 노키즈존 논쟁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부모인 손님과 그렇지 않은 손님, 업주 간 입장차는 여전히 공전한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예스키즈(Yes Kids)존’도 찾아볼 수 있다. 아이 동반 손님을 특정 공간에 ‘분리’하는 키즈전용매장과 달리, 이들은 어린이 손님과 성인 손님의 ‘공존’을 지향한다. 예스키즈존을 운영하는 고급 식당들도 하나둘 늘어간다.

경기 오산시에 있는 카페 ‘가비당’은 예스키즈를 표방한다. 가비당은 다중 공공시설에나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를 카페 한쪽에 마련했다. 사장 이승빈씨(33)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카페를 갈 때마다 아기 기저귀를 갈려면 매번 주차장에 세운 차까지 가야 했죠. 카페 화장실 세면대에서 갈았다가는 냄새 때문에 다른 손님들에게 ‘실례’를 하는 것 같았거든요.” 이씨는 지난해 11월 카페를 열 때부터 “아기 엄마들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경기 오산시의 카페 가비당 한쪽에 기저귀 교환대가 놓여 있다. 가비당 제공

경기 오산시의 카페 가비당 한쪽에 기저귀 교환대가 놓여 있다. 가비당 제공

고객 호응은 뜨겁다. 서울, 평택, 안성에서도 유모차를 끌고 일부러 찾아온다. 수유공간부터 기저귀 교환대까지 각종 시설이 갖춰져 아이와 부모가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모두가 환영하는 건 아니다. 이씨도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한 번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한 젊은 손님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씨는 손님에게 “죄송하다”며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부모에게 아이를 조용히 시켜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걸 요구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도 ‘손님’이라고 생각한다.

제주 애월에서 펜션 ‘브릭나인맨션’을 운영 중인 정정호씨(61)는 자연스레 예스키즈존을 만들어나갔다고 한다. 주변에 노키즈존이 많아지면서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을 찾아온 손님들의 방문이 늘었다. 정씨는 유아용품을 하나둘 펜션에 두기 시작했다.

정씨는 아이를 동반한 부모가 직장 워크숍이나 친목 모임을 위해 찾아오는 성인들보다 조용한 편이라고 말한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정씨는 “아이들이 소파에서 뛰거나 인테리어 소품을 망가뜨릴 때도 있지만, 이는 어른 손님이라고 예외가 아니다”라며 “아이 손님을 특별히 제지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키즈존 정책을 시행 중인 가게 업주들은 주로 “(아이들 때문에) 손님들이 편안하게 식사하거나 쉴 권리를 침해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 최초 미슐랭 셰프 임정식씨가 운영하는 ‘정식당’은 노키즈존과 예스키즈존을 함께 운영한다.

아이를 데리고 온 고객을 독립된 방이 있는 3층으로 안내한다. 아이가 있는 손님과 그렇지 않은 손님의 입장이 충돌하지 않도록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매장 내 노키즈존과 예스키즈존을 분리하면서 부모들은 사과를, 다른 고객은 관용을 강요당하지 않게 됐다.

여러 부모들이 예스키즈존 식당이나 카페, 펜션 명단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전국의 노키즈존과 예스키즈존을 지도 형태로 아카이빙하는 ‘예스노넷(YesNoNet)’에 따르면 8일 기준 전국의 노키즈존은 407곳, 예스키즈존은 47곳이다. 어린 자녀를 뒀다는 운영자 ㄱ씨는 “대부분 외출을 아이와 함께하는 상황에서 (예스키즈존은) 재방문을 결정하는 거의 절대적인 기준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스키즈존이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브릭나인맨션의 정정호씨는 개업 후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매출이 안정된 비결로 예스키즈존 운영을 꼽았다. 그는 “아이들 물품을 하나둘 구비하기 시작하면서 좋은 후기를 남겨주는 손님들이 늘었다”며 “주변에 소개를 하거나 재방문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외식기업 ‘월향’을 운영하는 이여영 대표 역시 “지금 아이가 없는 젊은 손님도 10년 후엔 부모가 될 수 있다. 예스키즈존은 장기적으로 손님층을 넓히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매장 15개를 예스키즈존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사고가 나거나 컴플레인을 받은 적은 없었다”며 “아이가 소란을 피운다면 상황에 맞게 대처하면 되지 입장 자체를 막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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