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건축가 이재준의 다른 생각

2019.12.13 17:02 입력 2019.12.17 11:13 수정
이인규

사람·시간·관계를 건축자재 삼아 어떤 집보단 ‘어떤 삶’을 설계해야

건축가 이재준의 집에 대한 다른 생각은 공간과 사람, 시간이 모두 연결되어 동네로 확장되는 다양한 실험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새동네의 첫 번째 집 가좌330의 내부 공간, 가좌330의 외관, ‘아이들의 작업실’을 표방한 이문238을 맘껏 누리는 아이들, 이문238의 내부 공간, ‘토끼집’이라는 애칭이 붙은 새동네의 두 번째 집 가좌관330.

건축가 이재준의 집에 대한 다른 생각은 공간과 사람, 시간이 모두 연결되어 동네로 확장되는 다양한 실험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새동네의 첫 번째 집 가좌330의 내부 공간, 가좌330의 외관, ‘아이들의 작업실’을 표방한 이문238을 맘껏 누리는 아이들, 이문238의 내부 공간, ‘토끼집’이라는 애칭이 붙은 새동네의 두 번째 집 가좌관330.

5년 전,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서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전시가 열렸다. 건축가 정기용의 인터뷰에서 따온 ‘기억의 집, 지금 사는 집, 살아보고 싶은 꿈의 집’이라는 큰 틀에 맞춰 여러 작가의 작업을 선보였던 이 전시는 ‘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전시로 평가받았다. 그 결과 아르코 미술관 최다관람객 및 일일 최다관람객 동원으로 기록될 만큼 대중적으로도 크게 성공하였다.

■ ‘집’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한 사람

전시를 보러 대학로로 향했던 추운 겨울날이 지금도 또렷하다. 가정집 현관처럼 만들어 놓은 전시장 입구에 적혀 있던 ‘다녀왔습니다’라는 한마디를 보고 시작부터 울컥했던 기억, 어릴 적 살던 집에 대한 기억과 감각들이 떠올라 포근해졌던 첫 번째 전시관. 이어진 두 번째 전시관에서는 자신의 연봉이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모의 자산과 소득에 따라 정해지는 자리에 서게 된다. 사방에 적혀 있는 ‘냉정한’ 숫자들을 보며 암담함을 느꼈던가. 그리고 마지막에 소개된 국내외 여러 가지 실험 사례들을 보고는 아직은 현실과 너무 먼 이야기 같아 답답함을 느꼈던 기억까지 생생하다.

전시를 기획했던 건축가 이재준은 앞서 2006년에도 아르코 미술관에서 ‘집에 관한 사유’라는 전시를 연 적이 있다. 집에 대해 ‘오래’ 그리고 ‘다르게’ 사유해 온 그를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눴다. 고맙게도 그의 이야기는 집이라는 공간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 집은 ‘공간’이 아닌 ‘시간’ ‘관계’

집을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자연스레 어떤 공간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이재준 리마크프레스 대표는 시작부터 조금 다른 이야기를 건넸다. “집은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더라고요.”

‘집’이라는 것은 공간의 특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이 시간을 들여 머물며 공간을 사용하는 기억이 그곳을 집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과 공간이 만나 시간을 통해 쌓여가는 관계가 바로 집이라는 것. 신경인류학자 존 S 앨런이 <집은 어떻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나>(반비, 2019)에서 “집은 어떤 구조물에 의해 정의된 장소가 아니라, 활동과 관계에 의해 그리고 기억과 정보에 의해 정의된 장소다”라고 정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대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집뿐만 아니라 집 주위의 ‘동네’까지도 관계로 바라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며 살고 싶은지, 즉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며, 이때 상상하는 삶의 배경에는 내 집만이 아닌 동네까지 자연스럽게 담기기 마련이다. 사적 공간인 ‘집’과 공적 공간인 ‘동네’는 구분되는 것 같지만 결국 넓은 맥락에서는 서로를 포함하게 된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세를 줘 오랫동안 살 수 있는 집을 공급하는 대안 주거 시스템에 그가 ‘새동네’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새동네(newdongne.kr/)는 2013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6가구, 4가구로 이루어진 다세대주택 ‘가좌330’ ‘가좌관330’ 2동을 지어 임대한 데 이어 2016년 5월에는 충북 청주 사창동에 17가구로 이어진 ‘사창186’을 건설해 임대했다.

이재준 건축가.

이재준 건축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경험 보여주는 ‘나래바’
‘집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도록 자극해
경제적 자산 관점 아닌 경험에 대한 욕구로
마음의 무게 중심이 옮겨진다면
집을 선택하는 기준 삶의 방식 등
많은 것이 바뀔 수 있어

■ 좋은 집을 고르는 즐거움

집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집의 형태뿐만 아니라 집과 사람이 맺는 관계도 변화할 수 있음을 뜻한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집을 소유하지 않는, 혹은 소유하지 못하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집을 소유함으로써 한곳에 뿌리내리고 ‘정주하는 삶’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삶의 방식이 아닌 우리와 집과 동네의 새로운 관계 맺음이 필요하다.

이 대표는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는 ‘선택권’을 이야기한다. “집과 동네에 만족하여 한곳에 오래 머무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죠. 혹은 완전히 반대로 계속 새로운 환경을 즐기며 옮겨 다니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타의에 의해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자의로 선택할 수 있다면, 그리고 좋은 선택지가 계속 주어진다면 새로운 집과 동네를 경험해보며 옮겨 다니는 것 자체가 매력적인 삶의 한 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좋은 집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주면 어떨까?’ 이런 고민에서 출발하여 ‘좋은 집을 고르는 즐거움’을 모토로 시작한 ‘홈쑈핑’(www.homeshowping.kr)은 ‘취향’ 있는 이들을 위한 공인중개 서비스이다. 지역 기반의 매물을 소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 상관없이 건축가가 신경 써서 지은 ‘좋은 집’만을 선별하여 소개하고 있다. 현재 전명희 공인중개사가 대표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건축가가 설계한 조금 특별한 집을 찾는 이들, 그런 취향과 안목을 가진 소비자를 만나고 싶은 건축가와 건축주라면 앞으로 지켜볼 만한 플랫폼이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새동네’가 더 좋은 집을 ‘만들어 공급하는 방식’의 실험이었다면, 홈쑈핑은 더 좋은 집을 ‘소개하고 이어주는 방식’의 실험이다.

‘만족스러운 거주 경험을 위해 조금 더 지불할 의사가 있다’라는 생각은, ‘한 푼이라도 더 아껴 집을 사야 한다’는 기존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에 따르면 철없는 혹은 배부른 생각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MBC 예능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의 인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람들은 ‘다양한’ 집에 점차 눈을 뜨고 있으며 자신의 삶에 맞는 집을 만나고 싶어 하는 욕구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이 대표는 집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흔들어 놓은 또 하나의 사례로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나온 ‘나래 바(BAR)’를 꼽는다. 화려한 인테리어나 자극적인 농담보다 돋보인 것은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즐기는 경험을 보여줌으로써 ‘집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도록 자극했다는 것. 그것이 ‘나래 바’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집 꾸미기 관련 콘텐츠도 넘쳐나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자신의 집과 삶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구도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집을 ‘경제적 자산’이라는 관점이 아닌 ‘경험에 대한 욕구’로 바라보는 쪽으로 마음의 무게중심이 옮겨진다면 사람들이 집을 선택하는 기준이나 살아가는 방식 등 많은 것이 바뀔 수 있을 거라 이 대표는 예견한다.

2014년 이재준이 기획한 ‘즐거운 나의 집’은 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전시로 평가받았다.

2014년 이재준이 기획한 ‘즐거운 나의 집’은 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전시로 평가받았다.

■ 새로운 ‘균열’을 만드는 역할

집에 대한 선택지가 늘어나야 한다는 이야기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청년이 고시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 한국의 주거 상황에서 ‘더 나은 주거’에 대한 선택권을 이야기하는 그가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새동네’ 프로젝트에서도, 공공디자인 관련 지원사업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에도 ‘사회적 의미’를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던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극히 일부만이 선택할 수 있을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고 불편한 마음을 내비치자 그는 ‘새동네’를 진행하며 아쉬웠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새동네의 첫 모델은 금융 이자보다는 높은 수익을 냈지만, 일반적인 부동산 수익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을 얻었다. 이를 조정하자는 내부적인 요구가 있었으나 이 대표는 반대했다. 그 결과 수익률은 조정되지 않았고, 사업 확장도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주거를 위한 대안적 모델로서는 성공적이었지만, 계속해서 이어나갈 힘은 결국 ‘사업’의 영역에 있었던 것이다.

새동네 프로젝트가 사회를 바꾸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사회 전체를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 부분은 엄연히 공공의 영역이다.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균열’을 만들어 사회를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회적’일 수 있다. “민간의 영역에 있는 우리가 사회 전체를 케어하지 못한다고 죄책감까지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시도를 하며 소진되지 않고 계속해나갈 힘을 이어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이 대표는 말한다. 사업적으로 적정 이윤을 남기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 사회적 책임감이나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 또다시 ‘다른 문’을 연다는 것

‘새동네’를 잠시 떠나 멈춰 서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는 현재 ‘아이들의 작업실’이라는 생소한 개념의 공간, 이문238(異門238)에 집중하고 있다. 2017년 2월, 서울 이문동 이문초등학교 바로 앞에 문을 연 이곳은 공간 한쪽 편을 어른들은 출입할 수 없는 ‘노 어덜트 존 (NO Adult zone)’으로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맘껏 ‘작업하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자유를 얻고, 부모는 아이와 떨어져 여유를 누리는 시간을 얻는다. 이 공간에서의 경험이 가족 안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고, 동네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실험은 마을과 학교를 잇는 ‘마을 교육 공동체’의 관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갑자기 그의 관심사가 ‘주거’에서 ‘교육’으로 바뀐 것 같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연결된다고 그는 말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집은 단지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공간과 사람, 시간이 모두 연결되어 동네로까지 확장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전시 <즐거운 나의 집>의 도록 서문에 실린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의 인터뷰를 다시 읽어보았다. “집은 유년 시절을 보낸 기억의 집, 현재 사는 집, 살아보고 싶은 꿈속의 집이 있다. 이 세 가지가 겹친 집에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던 이야기는 다음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집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꿈에 머물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제 우리는 어떤 집이 아닌, 어떤 삶의 모습을 찾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각자 그리고 함께.

▶필자 이인규

[안녕, 둔촌 프로젝트 이인규가 만난 다른 집](2) 건축가 이재준의 다른 생각


둔촌주공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곳에서의 좋았던 시간과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다큐멘터리 영화 <집의 시간들>을 공동기획했다. 그동안의 작업을 통해 집에 대한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을 냈다는 것에 작은 의미를 느끼며, 이제는 비슷하게 ‘작은 균열’을 내는 이들을 찾아가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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