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호소’ 엄마들 기억하시나요···서진학교 개교합니다

2020.02.23 09:10 입력 2020.02.25 13:35 수정

서울서진학교 설립을 이끈 조부용·이은자·정난모·장민희씨(맨 앞에서부터)가 서울장애인부모연대 강서지회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촬영을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서울서진학교 설립을 이끈 조부용·이은자·정난모·장민희씨(맨 앞에서부터)가 서울장애인부모연대 강서지회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촬영을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무릎 꿇은 엄마들의 호소가 열매를 맺었다. 서울 강서구의 공립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3월 문을 연다. 2013년 11월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처음 설립을 예고한 지 6년 만이다. 발달장애학생 139명(29학급)이 새로운 배움터에서 성장하게 된다.

당초 서울서진학교는 2016년 3월 개교할 예정이었다. 인근 마곡지구로 이전한 공진초교 부지를 활용하면 됐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계획은 질질 끌려갔다.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성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이 서울서진학교 터에 국립한방병원을 짓겠다고 공약하면서 반대 목소리는 불어났다. 2017년 9월 주민설명회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서울서진학교 설립을 호소했다. 이 모습을 담은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면서 학교 설립에 힘이 실렸다.

삽을 뜨고도 뒷맛은 씁쓸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김 의원, 반대주민 대표는 2018년 9월 ‘특수학교 설립 합의’를 맺었다. 예정대로 특수학교를 짓되 새 교육청 부지가 나오면 한방병원 건립에 협조한다는 내용이었다. 특수학교 설립 때마다 대가를 치러야 하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소음 민원 등으로 인해 공사도 더뎠다. 지난해 3월 개교 예정이었다가, 그해 9월로 미뤄졌고, 또 11월로 연기됐다가 올해 3월로 바뀌었다.

“진짜 이런 날이 오긴 오네요.” 2년 3개월 전 무릎을 꿇었던 엄마들의 기분은 남다르다. 2013년 행정예고 때만 해도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중·고교 과정을 서울서진학교에서 마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이들은 이미 20살을 훌쩍 넘었다.

서울장애인부모연대 강서지회 1대 지회장 이은자씨(50), 2대 지회장 정난모씨(49), 현 지회장 조부용씨(60), 토론회에서 가장 먼저 무릎을 꿇었던 강서장애인가족지원센터 팀장 장민희씨(48)의 또 다른 이름은 ‘어벤져스 4인방’이다. 한때 매일 머리를 맞대고 특수학교 설립 대책을 논의했다. ‘어벤져스’라는 이름의 단체 채팅방에선 여전히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서울서진학교 개교를 이끈 엄마들이 2월 18일 서울장애인부모연대 강서지회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뭉쳤다.

-개교를 앞둔 현재 심정이 어떠세요? 보통 학교 설립에 3년이 걸린다는 데 서울서진학교는 두 배의 시간이 들었습니다.

이은자 “오늘 여기 오면서 아 진짜로 이런 인터뷰를 하는구나, 이런 날이 오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동안은 아이들에게 특수학교가 왜 필요한지. 차별받는 교육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드디어 개교 앞둔 소감을 말할 수 있어 벅차요.”

정난모 “매일 복지관 가는 길에 서울서진학교 앞을 지나요. 재준이(아들)는 공진초를 졸업했는데, 학교가 완전히 바뀌어서 재준이 같은 아이들이 새 학교 다닌다는 게 남다르죠. 이 학교가 만들어지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는 뿌듯함도 있고요. 만약 좀 더 일찍 개교해서 재준이가 다녀봤으면 어땠을까 상상도 해요. 특수학교 반대 현수막이 붙어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휴대폰에 5년의 투쟁 사진이 담긴 앨범 카테고리가 있어요. 개교하는 날 없앨 거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지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서울서진학교 설립을 이끈 조부용·이은자·정난모·장민희씨(맨 앞에서부터)가 서울장애인부모연대 강서지회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촬영을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서울서진학교 설립을 이끈 조부용·이은자·정난모·장민희씨(맨 앞에서부터)가 서울장애인부모연대 강서지회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촬영을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조부용 “감개무량하죠. 저희 아이는 부모회(강서지회)가 생겼을 때 이미 성인이라 학교와는 무관했는데, 어떻게 인연이 닿아 이 자리까지 왔네요. 환갑이 되는 해에 서울서진학교가 개교해서 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웃음). 그나마 내가 60살 되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했구나, 토닥거리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장민희 “어제 서울서진학교 학부모를 만났어요. 선배 엄마인 제게 너무 감사하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똘똘 뭉쳐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됐으니까요. 이런 좋은 일은 물려줘야 해요. 혼자는 절대 못 하는데 강서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엄마들도 함께한 게 진짜 큰 힘이 됐어요.”

-토론회 때 무릎을 꿇으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사전에 ‘무릎이라도 꿇자’고 교감이 있었던 건가요?

장민희 “앞선 토론회는 시작도 못 하고 파행으로 끝난데다 그날은 주민들이 더 많이 모여있어서 주눅이 들었어요. 토론자로 나간 우리 대표들이 2시간 넘게 입이 닳도록 설명하고 읍소했는데도 결론이 안 나는 거예요.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공방만 오가고 사람들이 모두 지쳐 있을 때, 혼자 뭐라도 한마디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손들고 ‘우리가 너무나 기다렸던 건데 이렇게도 안 되냐’고 하면서 무릎을 꿇었죠.”

장애학생 부모들은 2017년 9월 5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무릎 꿇고 호소했다. / 연합뉴스

장애학생 부모들은 2017년 9월 5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무릎 꿇고 호소했다. / 연합뉴스

이은자 “저는 그날 기조발언을 했어요. 시간이 갈수록 토론회의 목적이 ‘시간끌기’라는 게 느껴졌고, 그냥 그렇게 끝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민희가 용감하게 얘기하다가 무릎 꿇으니까 엄마들이 주르륵 도미노처럼 옆에 무릎을 꿇었어요. 너무 놀랐죠. 갑자기 엄마들이 한마음으로 그러긴 어려운 거잖아요. 주민들이 ‘쇼한다’고도 하셨는데 참 매정하더라고요. 토론회 때 혼자 앞에 서서 사람들의 눈을 보니까 지현이(딸)가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제가 장애인 엄마라는 이유 하나로 동물원 원숭이 대하듯 조롱했거든요. 이게 지현이가 20년 동안 마주한 세상이구나, 제가 욕을 먹는 것보다 이게 너무 힘들었어요.”

정난모 “장애 영역에서 발달장애를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이 일을 계기로 인식이 높아졌어요. 강서구 내에서도 부모회 조직력이 확고해지는 계기가 됐고요. 그 전까지는 아줌마들의 모임이었거든요(웃음).”

-서울서진학교로 인해 특수학교를 둘러싼 인식이 크게 바뀌었어요. 다른 지역 특수학교 설립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쳐서 ‘나비효과’라는 말도 나오죠.

이은자 “특수교육의 결이 달라질 정도로 큰 파급효과가 있었다고 말씀들 하세요. 교육부나 교육청 내에서도 특수교육은 한직, 아웃사이더 개념이었대요. 지금은 교육청에서도 담당자들이 이야기할 때 잘 이해해주고, 공감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들이 뭉치고, 자연스럽게 의식이 생겨나고, 전국적인 이슈가 되면서 특수교육 방향이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위에 계신 분부터 하게 된 것 같아요.”

조부용 “개교 앞두고 굉장히 기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 있는 점은 많이 아쉬웠어요. 학교가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못 가는 친구들이 있어서 마음이 아프지만, 이게 시작이고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나가야죠.”

-사회의 지향점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통합교육’이죠. 통합교육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조부용 “결국은 저희 아이들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통합돼야 해요. 교육받을 때부터 통합되면 그 효과가 더 좋을 거고요. 하지만 현시점에선 많은 지원이 필요한 친구가 통합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왜 특수학교 갈 애가 여기에 있느냐’고 말하곤 해요.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시스템이 갖춰지면 특수학교에 가지 않아도 돼요. 요즘은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하지만 소수를 위한 뒷받침이 안 되는 상황이죠. 결국 인력의 문제이고, 곧 예산의 문제이기 때문에 계속 요구하고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은자 “엄마들이 장애자녀가 특수학교에 가는 걸 편안해하는 이유는 어떤 기준선이 없어서예요. 몇학년은 이만큼 해야 한다는 게 없고 아이 개인에게 맞추죠. 공교육에선 모든 아이가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기준선이 있어요. 학생들이 만날 시험 보고 이 기준선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해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아무리 많은 지원을 해줘도 이 기준선에 못 가요. 지금의 시스템이라면 시설 빵빵하게 해놓고 인력 늘려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각 학교에 도움반(특수교육을 위한 학급)이 있고, 그곳엔 장애인 딱지가 있어야만 오는 게 아니라 교육적 케어가 필요한 친구들도 올 수 있도록 바뀌면 사회적 인식이나 차별도 자연스럽게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곧 총선이잖아요. 한방병원 공약을 걸었던 김성태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죠. 원하는 정치인상이 있나요.

조부용 “일단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이는 사람, 저희 의견을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장민희 “반짝 총선 때만 장애인 공약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임기 동안 실천할 수 있는 국회의원!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은 비장애인들에게도 도움이 돼요. 강서구 한 초등학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휠체어 타는 학생이 배정돼 갈등이 있었어요. 결국 해당 학생은 전학을 가고, 내년부터 엘리베이터가 생긴다고 해요. 학교에 없는 시설이 그 학생 한 명뿐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하듯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 분이 필요해요.”

이은자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이라도 주민들 간 이견을 조율하고 절충하는 게 의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다수의 사람들에게 당신의 가치관이 잘못됐다고 말할 순 없더라도 잘 조율해서 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게끔요. 특히 특수학교는 개인적인 부탁이 아니니까요, 얼마나 표가 되냐를 떠나서 마땅히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오는 3월 개교하는 서울서진학교에는 ‘서진 뜨락에서 여러분과 함께 강서의 봄을 열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 이준헌 기자

오는 3월 개교하는 서울서진학교에는 ‘서진 뜨락에서 여러분과 함께 강서의 봄을 열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 이준헌 기자

-서울서진학교가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시나요.

장민희 “강남에 있는 밀알학교도 설립 당시에는 갈등이 말도 못 했다고 해요. 지금은 언제든 들러 차도 마실 수 있고, 행사도 하는 문화공간이 됐듯이 서울서진학교도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 됐으면 해요. 또 장애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실천하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난모 “특수학교지만 너무 특별한 눈으로만 보지 않으셨으면 해요. 가양동에 다른 복지시설들도 있다보니 ‘내가 이 동네에서 하루도 장애인 안 본 날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이 친구 만나든 저 친구 만나든 늘상 만나는 비장애인처럼 생각해줬으면 해요.”

이은자 “(장애자녀) 엄마들이 힘들 때마다 서울서진학교를 보면서 기운을 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함께 해냈으니까요. 모든 엄마가 애를 놔두고 어떻게 죽나 생각해요. 서울서진학교가 우리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국민이 힘을 보태 만들었고, 아이들에게도 그런 선한 이웃들이 많이 있으니까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으면 해요. 애들 데리고 죽을 생각 말고,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떠올렸으면 합니다.”

조부용 “시작에는 트러블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행복하게 다니고, 주민들도 ‘이젠 정말 좋네’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들도 서울서진학교의 역사를 잘 알고, 열정이 남다른 분들이 오셔서 기대가 큽니다. 학교 설립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선생님이 교장선생님께 개교식 때 학교 설립에 애쓴 엄마들에게 축사 기회를 주실 거냐고 물었더니 ‘아니오’라고 하셨대요. 그 의미는 결국 학교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라는 거죠. 당연히 맞는 말씀이에요. 개교가 다가오니 참 기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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