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기생하지 않고 자생하기 위해

2020.04.17 16:34 입력 2020.04.17 23:10 수정
이인규

‘지·옥·고’를 뚝딱뚝딱, 반짝반짝 ‘옥·반·지’로

[안녕, 둔촌 프로젝트 이인규가 만난 다른 집](6)기생하지 않고 자생하기 위해

오롯컴퍼니는 반지하, 옥탑방 등 낡고 열악한 공간을 개선해 동네와 골목을 재생하는 일을 하는 청년들의 사회적기업이다. 위 사진은 직접 시공을 하는 청년 기술자, 아래 사진은 ‘옥반지 프로젝트’를 통해 탈바꿈한 공간.  오롯컴퍼니 제공

오롯컴퍼니는 반지하, 옥탑방 등 낡고 열악한 공간을 개선해 동네와 골목을 재생하는 일을 하는 청년들의 사회적기업이다. 위 사진은 직접 시공을 하는 청년 기술자, 아래 사진은 ‘옥반지 프로젝트’를 통해 탈바꿈한 공간. 오롯컴퍼니 제공

작년 한 해, 전 세계 영화계를 석권한 영화 <기생충>의 성공은 많은 한국인에게 기쁨과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쓰라린 단면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부잣집 저택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반지하’에서의 삶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면서, 반지하에 몰리게 된 도시 서민들의 삶과 주거 실태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국토교통부에서는 반지하 가구 전수조사를 통해 지원책을 마련하고 서울시는 반지하 1500가구에 맞춤형 집수리 공사를 지원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롯컴퍼니 멤버들(왼쪽 세번째가 이종건 대표).  오롯컴퍼니 제공

오롯컴퍼니 멤버들(왼쪽 세번째가 이종건 대표). 오롯컴퍼니 제공

반지하는 <기생충> 이전에도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였다. 흔히 ‘지·옥·고’라고 줄여서 부르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은 쌓아놓은 자본이 없는 가난한 청년들이 서울살이를 시작할 때 자연스레 거쳐야 하는 관문처럼 얘기되기도 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이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1인 청년가구 주거빈곤율은 2015년 37.2%로 2000년 31.2%에서 6%포인트 높아졌다. 청년들에게 서울살이는 갈수록 더 팍팍해지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선해보고자 하는 청년들이 있다. 청년기술자들이 만든 도시재생 스타트업 ‘오롯컴퍼니(대표 이종건)’다.

1인 주거 문제 머리맞댄 기술자들
도시 골목 재생 스타트업 창업
DIY 기술 교육 공간개선 프로젝트
큰 돈 안 들이고 함께 할 수 있게

열악한 환경 바꾸는 도시재생은
사회의 필요이자 개인의 필요
청년들 기술 환원과 아이디어로
도시 변화 ‘선순환’ 이끌어

‘누구나 좋은 공간을 누릴 권리가 있다’라는 모토로 창업한 오롯컴퍼니는 지역의 낡고 열악한 공간을 개선하여 동네와 골목을 재생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낙후되고 열악한 공간을 살벌한 느낌이 드는 ‘지·옥·고’ 대신 ‘옥반지 프로젝트’라는 반짝이고 매끈한 느낌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옥탑, 반지하, 지하창고의 앞글자를 땄다. 이렇게 이름 붙이니 지옥고도 손봐주면 반짝반짝 빛나는 귀한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만 같다. 똑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절망을 볼 때, 오롯컴퍼니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옥탑·반지하·지하공간을 새롭게

반지하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무보증금에 월세 50만원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했던 스스로의 필요에서 시작되었다. 제한된 자금 때문에 주로 지하 공간을 보러 다니다가 어느 날 반지하를 찾게 되었을 때, ‘절반이 지하로 들어간 공간’이 아니라 ‘절반이 바깥으로 나와 있는 공간’으로 보였다고 한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작은 관점의 변화가 생각의 전환을 만들어냈다. 품을 들여 공간을 개선하고 보니 반지하는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이런 변화를 도시재생 차원으로 접근하는 사회적인 프로젝트로 기획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시작한 것이 ‘옥반지 프로젝트’다.

곰팡이 생성 원인을 분석한 스케치. 오롯컴퍼니 제공

곰팡이 생성 원인을 분석한 스케치. 오롯컴퍼니 제공

넉넉한 이들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자본이 부족해 옥탑, 반지하, 지하공간을 찾는 이들이 인테리어 공사에 큰돈을 쓰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오롯컴퍼니가 생각한 것은 기술교육과 DIY(Do it yourself: 완제품이 아닌 부품을 구입해 소비자가 스스로 제작·수리·장식하는 것)였다. 시공 분야는 우선 육체적으로 노동 강도가 높고, 장비와 기술 습득이 필요하다. 이런 일에 육체적,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느끼는 여성이 엄두를 잘 내지 못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은 시공기술의 공유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는 편이라 더욱 접근이 쉽지 않다. 오롯컴퍼니의 청년 기술자들은 이러한 진입장벽을 뚫기 위해 장비를 직접 구입하고 유튜브를 통해 해외의 자료들을 보며 기술을 익혔다. 사업 초기를 회상하며 웃는 그들의 얼굴에서 지난 우여곡절이 전해졌다. 그렇게 얻은 기술은 교육을 통해 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전해지고, 그 기술을 배운 이들은 자신의 공간을 스스로 시공할 수 있게 된다. 돈을 주고 맡기던 일을 스스로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기술교육과 DIY를 통해 도시의 낙후된 공간을 개선하는 비용은 줄어들게 되니 전체 사회로 봤을 땐 이득일 수 있다.

■ ‘필요해서 하는 일’

물론 이쯤에서 ‘그런 일이 돈이 되겠나’ 걱정이 앞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옥반지 프로젝트가 큰돈이 될 것 같진 않다. 이종건 대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옥반지 프로젝트는 저희에게 수익사업이 아니라 ‘활동’입니다. 또한 우리가 지향하는 바와 아이덴티티가 드러나는 일이지만, 그것이 오롯컴퍼니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선택의 문제인 거죠.”

서울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재개발 해제지역 갈등 관리자로 일한 경력이 있는 이 대표는 도시재생에 있어서 낙후된 공간의 개선이 필수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반지하와 옥탑이 특히 청년들의 주거 문제로 계속 언급되고 있었던 만큼 이 일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개인의 필요’와 ‘사회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을 향해 동료들과 의기투합했다. 딱히 큰돈이 되지 않더라도 사회에 필요한 곳에 자신들의 기술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는 더 많이 가진 자들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이 대표의 오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지식인은 지식을, 기업인은 이윤을, 기술자는 기술을 환원해야 사회가 선순환할 수 있다. 그것이 그들이 옥반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이자 사회적기업인 이유일 것이다.

■ 반지하를 연구하는 사람들

반지하 공간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땅에서 배어들어오는 습기와 구석구석 피어나는 곰팡이다. 심하면 거주자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오롯컴퍼니 멤버들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고 한다. ‘곰팡이로 술이나 페니실린도 만드는데, 왜 반지하에 피는 곰팡이는 인체에 안 좋은 걸까.’ 농업 등에서 활용되는 곰팡이 연구는 많은데, 막상 우리의 거주환경에서 자라는 곰팡이에 관한 연구자료는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롯컴퍼니는 직접 구한 반지하 공간에 ‘곰팡이 연구소’를 차렸다. 피어 있던 곰팡이를 바로 제거하지 않고 관찰에 들어갔다. 욕실과 장판 밑 곰팡이는 서로 종류가 달랐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번져나가는지를 지켜보면서 ‘숙주에 따라 곰팡이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시중에 이미 나와 있는 곰팡이 제거 제품을 몽땅 사들여 직접 사용해 보았다. 곰팡이 제거 효과와 시공성, 약품에 대한 내성을 직접 확인해 보았다. 결국 곰팡이 제거제의 효과와 시공성은 반비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약이 독할수록 효과는 좋지만, 시공자에게도 좋지 않고 잔류한 성분이 방을 쓰는 거주자에게도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시공 이후 환기와 공기 정화 기술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안녕, 둔촌 프로젝트 이인규가 만난 다른 집](6)기생하지 않고 자생하기 위해

오롯컴퍼니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기술 교육 현장. 오롯컴퍼니 제공

오롯컴퍼니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기술 교육 현장. 오롯컴퍼니 제공

반지하를 계속 탐구하다 보니 주인을 찾지 못한 빈집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비어있는 집들이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피난처가 되어줄 순 없을까.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홍수, 태풍 등의 자연재해나 보일러 고장, 누수, 침수 등으로 갑작스럽게 집이 일시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정폭력 등으로 긴급한 보호와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빈집을 미리 수리해 놓고 지자체가 ‘긴급구난주택’으로 보유하고 있다면 임시 대피소가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대표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어느날 오전 4시쯤 반지하가 침수되는 일을 직접 겪었다. 전기까지 나가버려 어둠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차 안에 피신해 있어야 했던 경험을 통해 임시 대피소의 필요성을 체감했다고 한다. 오롯컴퍼니는 이런 지역사회의 주거 보호망에 대한 아이디어 외에도 우리 지역, 우리 동네 가까이에서 주택 문제 전반을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는 여러 고민과 대안을 지자체에 제안하는 한편 여러 기업과도 협업을 논의 중이다.

■ 기생하지 않고 자생하기 위해

낙후된 공간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접목되는 순간 가격이 오르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여러 동네에서 벌어진 젠트리피케이션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오롯컴퍼니의 접근도 조금은 조심스럽다. 이 대표는 도시재생의 초점이 ‘활성화’가 아닌 ‘지속 가능성’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광지가 되어 외부에서 유입되는 소비인구에 기대기보다는 지역의 자생력이 되어줄 사람들이 오래 머물며 삶을 사는 ‘살아가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생하지 않고 자생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도시를 이해해야 합니다”라는 인상적인 문구가 오롯컴퍼니 홈페이지 한구석에 적혀 있다. 반지하를 개선하는 일은 그 이해의 시작이었다. 반지하 집은 서울과 수도권에만 96%가 몰려있다. 우리 사회가 서울이라는 초거대 도시에 기생하고 있는 기형적인 사회구조이기 때문에 비롯된 주거형태가 반지하인 것이다. 이러한 ‘기생’은 반지하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부모에게서 집을 물려받지 못하면 온전히 내 힘으로는 제대로 된 집을 구하기 힘들어진 세상,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재건축하지 않으면 남은 생에 먹고살 길이 딱히 없는 세상. 서울이라는 대도시로 모든 것이 쏠리기 때문에 모두가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들어 붙어살아야 하는 세상이지 않은가. 어쩌면 모두가 ‘기생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연쇄적인 기생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반지하의 공간에서 ‘기생’이 아닌 ‘자생’의 움직임을 시작하는 그들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오롯이 서는 자생력을 모두가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필자 이인규

[안녕, 둔촌 프로젝트 이인규가 만난 다른 집](6)기생하지 않고 자생하기 위해


둔촌주공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곳에서의 좋았던 시간과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집의 시간들>을 공동기획했다. 그동안의 작업을 통해 집에 대한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을 냈다는 것에 작은 의미를 느끼며, 이제는 비슷하게 ‘작은 균열’을 내는 이들을 찾아가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