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성범죄 재판부 배치, 별도 자격 없고 사실상 무작위”

2020.04.24 06:00

175개 성범죄 전담 재판부 중

진짜 ‘전담’만 하는 곳 드물어

성인지 감수성 교육도 형식적

성착취물을 제작·판매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재판받을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현우)는 ‘성폭력범죄 전담 재판부’다. 하지만 성범죄 재판부 구성 과정에 성인지 감수성, 성비 등은 사실상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올해 전국 법원에는 175개 성범죄 전담 재판부가 운영되고 있다. 소속 법관은 363명이다. 면면을 보면 이름만 ‘성범죄 전담’인 곳이 대부분이다. 수원지법 형사12부는 ‘국민참여재판, 선거, 식품, 보건, 성폭력 전담 재판부’다.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만 해도 성범죄 전담은 모두 13개 재판부가 지정돼 있지만, 실제로 성범죄 사건만 전담하는 재판부는 4개다. 나머지는 외국인, 아동학대 등 사건도 함께 맡는다.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성범죄 전담 재판부를 구성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사무분담위원회 회의 내용은 비공개”라고 했다. 성범죄 전담 재판부에 근무한 한 판사는 “특별한 자격을 요하지 않는다. 사실상 무작위로 배치된다”고 말했다. 법원은 판사가 과거에 근무한 재판부가 형사였는지 민사였는지, 경력이 몇 년인지 등을 따져 새 재판부에 배치한다. 일선 판사들은 그 과정에서 성비나 성인지 감수성 등이 고려되기는 어렵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가 마녀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피해자들 중에는 “여성 판사가 사건을 심리했으면 좋겠다”는 답변을 한 경우가 있었다. 성범죄 전담 재판부의 여성 비율은 전체 법관 여성 비율보다 오히려 낮다. 성범죄 전담 법관 363명 중 여성은 60명(16.5%)이었다. 2020년 3월 기준 전체 법관 2931명 중 여성 비율 31.4%(920명)의 절반에 불과하다.

성폭력 전담 법관 교육연수는 매년 사법연수원에서 1박2일로 이뤄진다. 올해 연수 계획표를 보면 판사들은 ‘성폭력범죄의 심리절차 및 적정한 양형’(1시간40분), ‘2018~2019년 성인지 감수성 판결의 이해’(50분), ‘성폭력범죄 관련 법령의 해석과 부수처분’(최대 1시간30분) 세 과목을 이수했다. 피해자를 배려하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은 50분에 그친 것이다.

사법연수원에서 다년간 피해자 보호 조치 관련 강의를 맡았던 신진희 성범죄 피해 전담 국선변호사는 “요즘도 피해자에게 ‘왜 즉시 항의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판사들이 종종 있다”며 “피해자 배려 조치를 적용하는 데 각 재판부 재량에만 맡기지 말고 법원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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