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이분법적 역사에 파열음을 내는 힘”

2020.05.30 12:03

“공식 역사에서 지워진 행위자들 목소리 주목”
<기억전쟁> 쓴 임지현 교수가 말하는 후손들 ‘기억의 책임’

역사 대신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끼리 서로 전쟁한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지난해 펴낸 <기억전쟁>이란 책을 통해 역사보다는 기억에 주목했다.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 장면의 다양한 기억도 시간이 흐를수록 공식적인 서술을 거치며 이전까지 이어진 틀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실증’에 바탕을 둔 역사가 한편으로는 증거 없이 기억만 남은 피해자와 희생자의 목소리를 지워버리고 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의 기록에서 점차 증발하는 기억의 책임을 후손들이 어떻게 이어받아야 할지에 대해 임 교수에게 직접 물어봤다. 지난 5월 25일 서울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가 5월 25일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임지현 서강대 교수가 5월 25일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기억전쟁>이란 책에서 제시한 기억 연구는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 것인가?

“한국전쟁이나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사건들은 공식적인 역사가 서술됐고 나름의 역사적 상이 세워져 있다. 기억 연구의 관점은 그런 공식 역사에서 지워진 부분에 주목한다. 힘없는 역사적 행위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기고 보존하지 못해 억눌린 이야기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역사의 민주화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 과거 민중사라는 입장에서도 역시 해석자의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넘어 행위자들의 목소리 자체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포착되지 않았던 지점을 부각한다는 뜻인가.

“광주민주화운동만 해도 크게 봐서 ‘민주화운동이다’, ‘아니다 폭동이다’ 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해석이 있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이란 목소리 안에서도 운동을 이끈 남자 대학생 지도부의 이야기로 환원되면서 다른 다양한 참여자들이 사라지고 마는 문제가 있다. 혹은 전두환 신군부와의 대립 구도를 강조하면서 직접 진압한 현장의 공수부대원들의 살인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할까 하는지의 문제도 지워지고 만다. 기억 연구는 현재를 더 민주화하기 위해 구조만이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둔다.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도 있지만, 사태를 보고 떨면서 방관하다 죄책감을 느낀 사람도 많은 것이 사람살이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사실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만으로는 복합적인 현실을 모두 파악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결국 이분법적 구도에 파열음을 내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예로 들면 당시 폴란드의 한 유대인 게토에서는 나치 독일군을 위한 군수물자를 더 부지런히 생산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논리도 존재했다. 결국 유대인들이 전쟁행위에 동조한 셈이다. 한편으로는 폴란드의 반유대주의 조직이 유대인들을 구출하는 데 나서기도 했다. 왜냐면 그들이 매우 열렬한 민족주의자들이어서 민족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사람 사는 모습은 입체적이고 복합적이어서 단순하게 하나의 구도로만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어느 한쪽에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논리는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나.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자금을 보자. 따지고 보면 당시 징용되고 동원된 개인 희생자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인데, 한국 정부가 횡령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포항제철을 짓고 경제성장과 근대화를 이뤄 다음 세대가 수혜를 받았다는 점에서 사실 우리 세대도 ‘연루’됐다고는 볼 수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협력을 했다거나 하는 책임을 해당 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당사자에게 물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결국 이후 세대에게 남은 책임은 바로 ‘기억의 책임’이다.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후세대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아베 정권에 대해 ‘기억의 책임’은 물을 수 있고 물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전부터 민족주의를 비판한 연구 등에서도 현실을 단순한 구도로 치환할 수 없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온 바 있다.

“지금까지 ‘기억’과 ‘역사’를 구분해 표현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나누기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시민에게 공식적이든 대안적이든 기억을 받아들이는 역사 프레임이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 역사교육에 깔린 민족주의적 프레임은 좌·우파 모두가 공유하고 있고, 이들은 단지 민족적 정통성이 누구에게 있는지만 다퉜을 뿐이다. 게다가 역사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중문화와 일상에서 접하는 민족주의적 코드 때문에 민족이라는 틀로만 역사를 보는 현실은 그대로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주의 사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구멍을 내려 노력해왔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일상적 차원에서 사람의 삶과 문화를 만들어내는 게임의 장에 시민이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책에서도 주장했듯 국제적인 기억의 연대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보나.

“전에 독일에 있는 한 친구로부터 e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한 외진 마을에 있는 히말라야 공원이란 곳에서 마을과 아무 관련 없는 위안부 소녀상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더라는 것이었다. 여성에 대한 착취라는 인류적인 고민과 연결되지 않은 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에만 급급한 이런 행동은 운동을 속류화시키는 것이고, 진정으로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한 국경을 넘은 연대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하지만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경우도 분명 있다. 5·18재단에서 수여하는 국제인권상에 인도네시아에서 반공을 내세워 자행한 정치적 학살을 조명한 기억활동가가 수상자로 선정된 일이 있다. 이 경우 민족과 국경을 넘어 더 열려있는 연대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언급한 위안부 문제는 기억전쟁이 벌어지는 대표적인 주제라고도 볼 수 있겠다.

“캐롤 글룩이라는 미 컬럼비아대 일본사 교수는 ‘우리가 위안부 할머니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가 여성인권을 억압한 반인륜적 문제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켰다고 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한 인터뷰를 두고 정의기억연대에서는 할머니의 기억이 흐릿하다며 반박하던데, 이 논리는 일본 우파가 위안부 문제를 부정한 논리와 비슷하다. 오히려 이 할머니가 그동안 조직이 만든 프레임, 위안부에 대한 기억이 속류화되는 프레임을 깨고 파열음을 낸 것이다.”

-서로 다른 기억이 싸우고 갈등할 때 결국 진실을 밝히려면 증거를 내세울 수밖에 없지 않나.

“문서 같은 실증적인 증거로 진실이 밝혀지면 좋겠지만 사실 이렇게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안 밝혀질 수도 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계속해서 더 실증적인 자료를 찾아야겠지만 히틀러가 홀로코스트를 지시했고, 전두환이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지시했다는 자료는 안 나올 가능성이 더 많다. 그래서 기억들 사이의 전쟁이 벌어진다. 기억전쟁이란 진짜와 가짜 기억이 싸우는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진짜끼리 혹은 가짜끼리 싸우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이 전쟁을 통해 싸우면서 단일한 진실된 기억이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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