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집 없는 이들을 위한 집

2020.06.12 16:05 입력 2020.06.12 16:49 수정
이인규

집에 머물라는데…집이 없는 사람들은요?

홈리스에 대한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숙인 102명 중 11.8%인 12명만이 재난지원금을 수령했다. ‘외출 자제령’ 속에 집이 없는 이들에 대한 선제적 지원이 절실하다. 홈리스행동 안형진 제공

홈리스에 대한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숙인 102명 중 11.8%인 12명만이 재난지원금을 수령했다. ‘외출 자제령’ 속에 집이 없는 이들에 대한 선제적 지원이 절실하다. 홈리스행동 안형진 제공

코로나19로 집을 의지하며 여러 날을 보냈다. 연일 확진자 수가 증가하며 언론이 시끄러웠지만, 신속하고 투명한 한국 정부의 대응 방식은 코로나19 사태가 결국 팬데믹에 이르렀을 때 이렇게 해야 한다는 모범 사례로 전 세계에 회자되었다. ‘K방역’이라는 자부심 가득한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게다가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은 신청을 받은 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이미 지급률 99.5%에 달했고, 덕분에 얼어붙었던 지역경제가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정부에서 공짜로 주는 돈도 안 받아 가는 0.5%는 어떤 이들일까? 힘든 이들을 위해 지원금을 ‘안’ 받아 간 노블레스 오블리주이길 내심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당장 지원이 가장 필요한데도 정보 부족, 거동 불편 등의 이유로 ‘못’ 받아 간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행정안전부는 아직 지원금을 받지 못한 노인과 장애인의 자택을 방문하여 신청을 받는 등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의 빈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있다. 바로 거리의 노숙인들이다.

■ 홈리스에 대한 배려 아쉬운 재난지원금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되었다. 당연히 노숙인들 역시 수급 대상자이다. 이들은 ‘외출을 자제하고 최대한 집에 머물라’는 정부 지침을 이행할 ‘집’이 없는 만큼 더욱 선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홈리스행동’ 등 반(反)빈곤 단체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홈리스에 대한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102명 중 고작 11.8%인 12명만이 재난지원금을 수령했다.

국민 99.5% 받은 긴급재난지원금
거리에서 코로나19 겪는 이들에겐
‘돈이 없어서’ 포기하게 되는 돈
전염병으로 혐오·배제 더 노골화
대합실·지하도·센터서 쫓겨나고
급식·의료 등 ‘생존형 지원’ 끊겨

노숙인 재활 말하기 전에 보호부터
사회가 ‘집 없는 이들의 집’이 돼야

이들의 수급률은 왜 이렇게 저조할까? 노숙인들은 정부의 지원체계 안에 속하지 않은 상태이며, 정부의 지급 방식이 이들의 사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에겐 온라인에 접속해서 정보 몇 개만 입력하면 끝나는 쉬운 일이지만, 처한 사정이 다른 노숙인들에게는 겹겹의 난관으로 계속 막히고 미끄러져 결국 신청을 포기하게 만드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노숙 생활 특성상 제대로 된 정보 습득이 어려워 이러한 지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으며, 알았다고 하더라도 신청 과정에서도 난관이 많다. 컴퓨터, 스마트폰이 없어 온라인 신청은 접근조차 어렵다.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거나 거주 불명 등록자인 경우를 위한 지원 방안은 아직도 협의 중이다. 주민등록이 되어있어도 노숙 과정에서 주민등록증을 분실하는 사례가 많아 신원 인증 방식을 지문으로 대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민등록지와 현재의 생활지역이 달라서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려면 먼 곳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그들에겐 그럴 교통비가 없다. 돈이 없어서 지원이 가장 필요한 이들이, 돈이 없어서 지원 신청을 포기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운영하는 홈리스 지원 체계를 활용하여 ‘찾아가는 신청’을 받고 현금으로 지원금을 지급하길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행안부는 노인과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자택에 방문하여 직접 신청을 받고 있으며,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등을 받는 사회 취약층 286만가구(전체의 13.2%)에는 현금으로 지급한 바 있다. 이처럼 다른 계층에게는 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섬세한 노력을 기하는 정부가 왜 유독 홈리스의 요구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들어보기 위해 만난 노숙인 이형찬씨(가명)와 홈리스행동의 안형진 활동가는 이번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홈리스가 이 사회에서 배제되는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뿐, 원래부터 갖고 있던 여러 문제가 코로나19 사태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홈리스에게 가중되는 어려움을 들어보니 참으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 코로나 시대, 집이 없는 이들의 삶

보호해줄 ‘집이 없어서’ 당장에 도움이 필요한 노숙인들이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이유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그들에게 ‘집이 없기 때문’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현재의 공적 지원 체계는 ‘주소지’를 기반으로 지자체와 대상자를 연결해야 하는데, 노숙인들은 정해진 집이 없어서 복지제도의 틀 안에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나마 ‘임시주거비지원’ 제도가 마련되어 수급자 신청을 위한 주소지를 얻을 수 있도록 쪽방이나 고시원 주거비를 일시적으로 지원해주지만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이다. 그렇게 수급자가 되어 복지제도 안에 들어가더라도 경제 최하위층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결코 단단한 것이 아니어서 언제라도 다시 노숙의 상태로 빠져나와 버릴 수 있다.

더욱이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노숙인들에 대한 배제와 혐오는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 사람으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먹고, 자고, 씻는’ 최소한의 행위를 보장해야 하는 공간이 집이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집이 있는 이들은 외출을 막아도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이 없는 홈리스는 이러한 ‘생존’을 거리에 의지하여 해결해야 한다. 거리에 몸을 누이고, 무료급식을 찾아 끼니를 해결하고,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 사회는 코로나19 방역과 민원을 핑계로 이들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들을 빼앗고 있다.

우선 이들이 ‘머물 자리’를 아무런 대안도 없이 빼앗기고 있다. 부산역은 대합실을 심야에 폐쇄하며 노숙인을 내쫓았고, 용산역과 서울역에서도 홈리스의 물건들을 무단으로 철거해버렸다. 수원의 노숙인 자활 시설에서는 택배 일을 하는 노숙인이 코로나19 전파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퇴거를 강요했고, 서울의 한 노숙인 시설에서는 감염 우려로 센터를 찾아온 노숙인을 거리로 돌려보냈다.

홈리스의 끼니를 지원하던 ‘무료급식’도 대부분 끊겼다. 구청에서는 방역을 이유로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급식소 폐쇄를 강요하였다. 민간급식소를 폐쇄하기보다는 오히려 방역을 지원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나마 서울시에서 위탁 운영하여 방역 관리가 되는 서울역의 ‘따스한 채움터’는 열려 있는데, 사람들이 너무 몰려 그 또한 걱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노숙인 지원을 종교기관 등 민간에 과도하게 의지해왔던 공적 지원 체계의 한계가 코로나 시국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건강’이다. 노숙인들은 건강 악화로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노숙으로 내몰리기도 하지만, 노숙하는 과정에서 신체적·정신적 타격을 입으면서 건강이 더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노숙인에게 의료지원은 매우 중요한데,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노숙인들을 찾아와 약을 처방해주던 의료서비스도 끊겼다. 매년 봄과 가을에 꾸준히 진행되었던 결핵 검사도 코로나19가 발생한 이번 봄에는 없었다고 한다. 또한 노숙인 진료 시설로 지정된 국공립병원 등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지정병원이 되면서 노숙인들의 건강권은 더욱 제한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은 노숙인들을 피해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살아가기 위해 사회와 계속 접촉해야 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집단생활을 하기에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더 큰 불안이 쌓인다. 그들은 코로나19 방역 및 예방도 사회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노숙인 이형찬씨는 “선거 때 지하철역에 사전투표소 설치하듯이 노숙인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에 선별진료소를 설치해서 우리를 찾아와 달라. 좀 더 적극적으로 관리를 해달라”며 현 지원 방식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반가운 속보가 떴다. 서울시에서 무증상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선제검사 범위를 확대하기로 하였고, 다행히 대상에 노숙인도 포함되었다. 7개 시립병원에서 매주 1000명씩 선정하여 검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이씨의 제안처럼 현장으로 찾아가는 선별검사소 설치를 고려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처럼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최소한의 집이 없는 이들은 사회가 더욱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을 제대로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사회의 잠재적 위협인 것처럼 더한 낙인을 찍고 이를 핑계 삼아 그나마 있던 그들의 자리를 뺏는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를 아무리 부정해도 그들이 정말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결국 우리 사회 안에 있고,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라는 사실도 변함이 없다. 집이 없는 이들에게는 우리 사회가 집이 되어주어야 한다.

■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한 집

누군가 노숙을 하게 되는 사연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가족과의 관계, 가난의 대물림, 건강과 장애, 고용과 주거의 불안 등 무엇이 먼저고 나중인지 구분도 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가 복잡하게 얽힌 결과, 노숙으로 이른다. 그리고 노숙이라는 변수가 다시 모든 것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시작점이 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그들이 다시 설 힘을 기를 수 있다. 이들에게 ‘자활’을 이야기하기 전에 ‘보호와 지원’이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지원해야 할 이들이 너무 많아서 안 된다. 나도 힘들어 죽겠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맞다. 우리 사회에 힘든 이들이 너무 많다. 모두가 죽도록 일하고 있는데 모두가 죽겠다고 하는 것은 분명 구조가 잘못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첫 단추를 위에서 두 칸쯤 어긋나게 끼운 듯한 지금의 사회구조는 너무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한다.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도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도록, 다시 첫 단추를 아래 끝단에서부터 제대로 맞춰 끼워 새롭게 시작하면 어떨까. 전 세계가 ‘포스트 코로나19’를 고민하는 지금이 어쩌면 사회의 구조를 바꿀 기회인지 모른다.

▶필자 이인규

[안녕, 둔촌 프로젝트 이인규가 만난 다른 집](8)집 없는 이들을 위한 집


둔촌주공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곳에서의 좋았던 시간과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집의 시간들>을 공동기획했다. 그동안의 작업을 통해 집에 대한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을 냈다는 것에 작은 의미를 느끼며, 이제는 비슷하게 ‘작은 균열’을 내는 이들을 찾아가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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