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하지 않은 가정의 아동학대 더 많아…다만 밝혀지지 않을 뿐”

2021.03.23 22:04 입력 2021.03.23 22:05 수정

아동학대방지 전문가 정익중 교수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지난 18일 이화여대 교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지난 18일 이화여대 교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아동청소년복지 전공으로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동학대와 아동빈곤 등을 집중 연구하면서 보건복지부, 법무부, 아동권리보장원 등의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3년 울주 아동학대 사망사건(이서현 사건)의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2014년 ‘이서현 보고서’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저서로는 <아동복지론> <빈곤아동과 삶의 질>(공저) 등이 있다.

지난해 말 ‘정인이 사건’(양천 아동학대 사망사건) 이후 연이어 아동학대에 의한 사망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에도 이서현 사건(2013년), 원영이 사건(2016년) 등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공분은 그때뿐이었다. 국회와 정부가 나서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사건은 반복됐다. 근절책은 정말 요원한 것인가. 아동학대 방지 전문가인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52)를 지난 18일 이화여대 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정 교수는 “아동학대 사망은 한 달에 서너 건 일어나는데, 이 중 계부모나 입양부모에 의한 경우 크게 보도된 후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게 되고, 정부의 대책이 발표되는 것으로 끝나는 패턴을 반복한다”고 개탄했다. 반짝 관심과 급속 소멸의 악순환이 문제라는 것이다.

- 언제부터 아동학대 문제를 주목했나.

“평소 빈곤아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학대 문제를 접했다. 빈곤한 사람들은 학대 신고의무자를 많이 만날 수밖에 없어 아동학대가 드러난다. 반대로 환경이 괜찮은 가정에서는 학대를 발견하기 힘들다. 정인이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학대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 공개되지 않고 덮이는 학대 사건이 더 많다는 것인가.

“빈곤하지 않은 가정의 아동학대가 더 많다. 다만 밝혀지지 않을 뿐이다.”

- 지난해 말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아동학대 사망은 지금도 한 달에 서너 건 일어난다. 이 중 계부모나 입양부모에 의한 학대라고 하면 신문에 크게 보도된다. 그다음에 국민들의 공분이 일어나고 국가는 종합대책을 내놓는다. 그것으로 끝이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아이들이 죽어야만 대책이 만들어지는 이런 패턴이 생긴다. 더 이상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아동정책은 아동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니까 계속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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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의 실상

계부모·입양 가정 사건만 크게 보도
국민 공분 뒤 정부 대책 발표하고 끝
형량강화만으로는 학대 줄지 않아
예산·인력 확보 없인 악순환 반복

- 예산은 왜 확보하기 힘든가.

“아동예산을 확보해주는 사람이 없다. 아동이 당사자인데, 직접 예산을 달라고 할 수 없다. 아동은 원래 가정에 맡겨져 있다. 부모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 정인이 사건의 경우 학대치사죄가 아닌 살인죄가 뒤늦게 적용됐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아동학대 살해죄를 규정한 일명 ‘정인이법’이 통과됐다. 형법상 살인죄보다 처벌을 더 무겁게 했다.

“지금까지는 학대로 아이가 죽어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다행히 조금씩 변해 처벌이 강화됐다. 하지만 형량 강화는 인과응보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형벌을 강화한다고 아동학대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 아동학대 사건은 사회적 공분이 크다. 정인이 사건을 접하고 어땠나.

“나도 울었다. 부검 기록을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내용에 대해 들었다. 서울남부지검 검사가 전문가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너무 참혹해 눈물이 났다.”

- 정인이 사건의 경우 어린이집과 소아과 병원에서 학대의심 신고가 접수됐지만 입양기관, 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 등이 양부모 말만 듣고 방치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신고의무자를 교육해 반드시 신고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법 집행자는 신고의무자가 아니지만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들이 만나는 범죄자는 아동학대자보다 더 악질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연약하기 때문에 매 한 대로도 죽을 수 있다. 아동학대 사망과 관련된 예측 요인은 전혀 없다. 아동학대 신고 한 건이 죽음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아 괜찮네, 하면 아동학대로 죽게 된다.”

현장 대응과 대책

아이들은 ‘한 대’로도 죽을 수 있어
지자체·경찰 등 협업 여전히 부족
부모가 조사 안 받겠다 하면 그만
아동보호팀 특별사법경찰권 줘야

신고 후 보호조치

무조건 분리는 더 충격 줄 가능성
전문가들이 정확히 판단케 해야
보호 쉼터·보호시설 절대 부족
분리한다고 마땅히 보낼 데 없어

- 정부는 지자체와 경찰의 협업체계 강화와 현장 대응이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현장 대응과 협업에 대한 강조는 옛날에도 있었다. 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하고 크게 네 번의 대책이 나왔다. 굉장히 노력한 것은 맞지만 제대로 안 되고 있다.”

- 지난해 10월 각 지자체에 아동보호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효과가 있다고 보나.

“예전에는 민간에 위탁한 아동보호전문기관만 있었다. 지난해 10월 아동보호팀이 만들어져 전담 공무원이 조사하게 된다. 아동보호팀이 있는 시·군·구에서는 민간인이 하던 것을 공무원이 조사하게 되는데,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가 조사를 안 받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경찰이 나서야 상황정리가 된다. 아동보호팀에 특별사법경찰권을 줘야 한다.”

23일 정부가 신고가 두 번 접수되면 즉각 분리하는 피해아동 즉각분리제 시행 방침을 밝힌 후 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로 인터뷰했다.

- 정부가 30일부터 지자체의 보호 조치가 있을 경우 피해아동을 원가정에서 즉각 분리해 학대피해아동쉼터 등에서 일시보호할 수 있게 하는 조치를 발표했는데.

“한 번의 신고라도 긴급하고 중대한 아동학대 사건이 될 수 있고, 두 번 이상 신고해도 분리가 능사가 아닌 경우가 있다. 살릴 수 있는데 못 살리니까, 정부에서 일단 분리하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아이에게 오히려 충격을 줄 수도 있다. 또 분리하면 보낼 데가 있는 거냐고 묻고 싶다. 아동보호쉼터도, 일시보호시설도 부족하다. 신고의 횟수로 대책의 효과를 따지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분리할 것 같으면 전문가가 왜 필요한가. 횟수에 관계없이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전문적인 인력이 중요한 것이다.”

2013년 울산 울주에서 여덟 살 서현이가 집 안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갈비뼈가 부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이 사건을 조사해 민간 차원에서 ‘이서현 보고서’를 만든 주역이었다. 아동학대 보고서로 가장 유명한 것은 클림비 보고서이다. 2000년 8세 빅토리아 클림비의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조사한 영국 정부와 의회조사단이 만든 400쪽의 조사보고서이다. 이서현 보고서는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로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아동학대 관련 보고서였다.

국내 첫 ‘이서현 보고서’ 이후

정부가 진상조사하도록 법 만들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서 맡게 해야
정서적 학대, 매일 맞는 것과 같아
훈육의 잘못된 인식 바로잡아야

- ‘이서현 보고서’를 만드는 데 참여하게 된 경위는.

“당시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부장과 함께 진상조사를 하자고 나섰다. 외국은 진상조사하는데 우리나라는 왜 못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민간 차원에서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아 국회의원에게 제안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의원이 응해줬다. 의원을 통하니 정부 부처가 답변을 해줬다. 민간 차원에서 했으면 답변을 안 했을 것이다. 아동 관련 기관과 학회를 모아 함께 진행했는데, 그만큼 절실했다. 모두가 다 무보수로 자원봉사한 것이다. 책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개인 정보가 많아 보고서만 만들었다.”

- ‘이서현 보고서’ 이후 민간 차원에서 대구·포천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조사한 ‘은비 보고서’가 2017년 작성됐다. 국가기관에서 조사해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조사해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이 내용을 담은 진상조사 법안이 김상희 국회 부의장(민주당)에 의해 지난 2월 발의됐다. 국회에서 통과됐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죽음에서 교훈을 얻자는 것이다. 처벌은 경찰과 검찰이 하면 된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찬찬히 챙겨보자는 것이다. 정부 부처가 하지 않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서 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 부처는 자기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

- 서현이 사건과 정인이 사건은 7년의 시차가 있다. 그동안 어떤 점이 달라졌다고 보나.

“아이 학대 사례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 죽었다. 비슷한 것은 신고의무자를 만나 살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안타깝다. 7년 세월 동안 달라진 것은 신고의무자의 역할이다. 정인이 사건에서는 신고의무자가 신고했으나 살릴 수 없었다. 이서현 보고서의 가장 큰 유산은 관련 법을 만든 것이다. 아동복지법이 바뀌었고 아동학대 범죄에 관한 특례법이 생겼다.”

- 7년 동안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때는 법만 바꾸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양만 바뀌었다.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 학대의심 아이를 발견하면 뭐 하나, 찾아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무엇보다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아직 그대로다. 그런 점에서 민법에서 징계권 조항 삭제가 의미가 있다. 정인이 사건 때문에 개정됐다. 굉장히 큰 변화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데 아무도 모른다.”

1월에 민법 제915조에서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삭제됐다.

- 과거에는 가정에서 체벌이 묵인됐다. 이것이 어떤 영향을 주나.

“예전에는 때려서 가르치거나, 윽박지르거나 욕해가며 가르쳤다. 지금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한 대라도 때리면 학대이다. 내가 배워왔던, 양육된 방식으로 아이들을 양육해서는 안 된다. 전 국민을 조사해보면 때리는 사람과 욕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상담과 치료를 해야 한다. 때리는 것은 범죄임을 알아야 한다.”

- 때리지 않고 어떻게 교육시키느냐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부모들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혼자 고민해서는 안 된다. 부모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부모교육 현장에 가보면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만 온다. 아주 훌륭한 부모가 더 훌륭한 부모가 되기 위해 온다. 교사들은 상담하고 싶은 부모만 안 온다고 이야기한다.”

- 고함을 치거나 모욕을 주는 것도 학대에 해당하나.

“다 학대다. 모욕은 정서적 학대이다. 아동학대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 있다. 아동학대는 신체학대밖에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정서학대는 일상의 학대이기 때문에 더 문제가 많다. 신체적 학대는 한 대 맞고 끝날 수 있지만 정서적 학대나 방임·방치는 매일 맞는 것에 해당한다.”

- 통계를 보면 아동학대로 밝혀진 사례 중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가장 많다.

“대부분이 부모다. 거의 부모에 의해 집에서 학대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 양부모·계부모가 학대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긴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기보다 나도 학대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일반적이다. 그렇게 인식해야 자제하고 조심하게 된다. 아이들은 왜 맞으면서 배워야 하나. 아동학대를 만드는 양육의 내로남불이 있다. 내가 하면 훈육이고 남이 하면 학대라는 것이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동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아동학대 발생 건수가 늘어날 수 있지 않나.

“집에서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이 늘었다. 부모들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면서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생긴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가 많이 발생하는 환경이 된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신고도 잘 안됐다. 아이들이 돌아다녀야 신고의무자를 만날 기회가 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 그러니까 신고가 줄어도, 실제로는 아동학대가 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

“잠재적으로 더 많아졌을 것이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빈곤하지 않은 가정의 아동학대 더 많아…다만 밝혀지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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