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야 할 대학도 있지만, 정책은 지방대에 공정했나”

2021.03.31 06:00 입력 2021.03.31 08:01 수정

김상호 대구대 총장

김상호 대구대 총장이 지난 24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대학교육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br />김 총장은 “지방대 위기는 우리 아이들의 장래와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며 “인재가 자원이고 국가 경쟁력인 나라에서 이 문제를 대학에만 맡기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김상호 대구대 총장이 지난 24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대학교육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총장은 “지방대 위기는 우리 아이들의 장래와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며 “인재가 자원이고 국가 경쟁력인 나라에서 이 문제를 대학에만 맡기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1957년 전남 출생. 문학박사.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고전번역원 연수부를 마쳤다. 동국대도서관 사서를 거쳐 1988년 대구대 교수로 부임해 사무처장과 사회과학대학장 등을 지냈다. 교수와 교직원의 직접 투표로 2018년 5월 제12대 대구대 총장에 당선됐다. 신입생 모집 부진에 책임을 지고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밝혀 교육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달 초 한 대학 총장이 신입생 모집 부진에 책임을 지고 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상호 대구대 총장(64)이다. 그동안 대학 총장들의 사퇴 이유는 대개 학내 분규 아니면 개인 비리였다. 김 총장의 사퇴는 벼랑 끝으로 몰린 지방대학들의 위기를 환기시키며 파장을 일으켰다. 대구대는 올해 780명의 정원 미달을 기록했다. 신입생 등록률이 80.8%로 전년보다 19%포인트 떨어졌다. 지난 24일 김 총장을 만났다. ‘한가해진’ 김 총장이 직접 승용차를 몰고 동대구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면적이 서울대 다음으로 넓은 경북 경산시 진량읍의 대구대 캠퍼스를 김 총장의 차로 돌았다. 봄꽃이 흐드러졌지만 교정은 쓸쓸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이뤄지는 탓인지 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김 총장은 지난 29일 대학법인인 영광학원에서 보직 해임됐다. 김 총장이 법인과 사전 협의 없이 외부에 보직 사퇴 의사를 밝혀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김 총장은 30일 전화통화에서 “사퇴 의사는 변함없지만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법인이 징계를 내린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방대의 위기

서울 소재 대학 가는 학생은 소수
다수 아이들·국가 미래 걸린 문제
막무가내 구조조정·폐교 답 아냐
홍보 덜 돼서 미달? 교육비에 써야

- 지방대 미달 사태는 예견된 일이다. 정원 미달이 총장직 사퇴 사유가 될 수 있나. 대구대만 그런 것도 아닌데….

“대규모 미달 사태는 총장의 불찰과 무능에 기인한다. 대구대는 영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하는 대학이다. 중요한 것은 권한과 책임이다. 그 권한을 총장이 갖고 있으니 책임을 지는 것이다.”

- 다른 대학 총장들이 더 곤혹스러울 것 같다. 신입생 미달 사태를 빚은 전북의 원광대도 교직원들이 총장 사퇴를 거론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웃음)원광대 박맹수 총장이 고등학교 동창이다. 원광대와 교류가 있어서 그학교 교직원들과 우리 교직원들도 서로 잘 안다.”

- 미달이 급증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시모집 추가 합격자 발표가 나면 학생들의 연쇄 이동이 일어난다. 서울지역 대학들의 빈자리를 경북대 합격생들이 채우면 그 빈자리에는 영남대나 계명대, 대구대 합격생들이 간다. 대구대에서 빠져나간 자리는 대구의 다른 대학들과 전문대 합격자들이 채우는데 올해는 거기서 뽑지 못했다. 단과대학 중에는 공대의 미달이 많았다. 코로나19 탓인지 관광 관련 학과 신입생도 줄었다. 추가 모집이 잘 안 되는 것을 보고 총장직에서 물러나기로 마음먹었다.”

교육부 정책의 문제점

재학생 충원율·취업률 등 평가항목
지방대에 불리, 결국 불이익으로
공정한 경쟁 가능한 틀 만들어야
교육 환경·질 불평등 해소 가능해

- 홍보가 부족했다는 내부 비판이 있다고 들었다.

“서울대가 홍보하는 것 봤나. 학생들은 대학 홍보 기사나 광고를 보고 진로를 결정하지 않는다. 작년에 홍보비를 줄이긴 했다. 홍보에 쓸 돈이 있으면 학생들 교육비로 써야 한다. 홍보로 학생들을 뽑으면 1~2년은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될 수 없다.”

- 780명 미달이면 학교 재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나.

“등록금 수입이 연간 50억여원 줄어든 셈인데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되돌려주는 것 등을 제외하면 올해 20억~30억원 마이너스다.”

- 학령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내년엔 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교직원들에게 2040년에는 신입생이 지금의 절반 수준인 2040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늘 강조해왔다.”

- 그동안 어떻게 대응해왔나.

“학과 구조조정과 직원 축소 등 감량 경영을 꾸준히 했다. 경북도 등 지자체와 협업도 많이 했다. 외국인 학생 유치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 베트남 학생이 800명, 몽골 학생이 200명이다. 지난해에는 인도네시아 학생들을 대거 유치할 계획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물거품이 됐다.”

- 안타깝지만 경쟁력 떨어지는 대학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한국은 가진 게 인재밖에 없다. 인재 총량을 줄이면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고등교육은 특혜가 아니고 보편적 복지가 된 지 오래다. 이른바 SKY대와 서울 지역의 대학에 가는 학생들은 소수이다. 지방대 위기는 우리 아이들의 장래와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성적이 좀 떨어지는 아이들도 대학에 가서 성장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 인재가 자원이고 국가경쟁력인 나라에서 이 문제를 대학에만 맡기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면 그 피해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돌아갈지 생각해봐야 한다.”

- 하지만 국가 예산이나 사회의 자원은 한정돼 있지 않나.

“단언컨대 지방 사립대가 서울에 있는 대학이나 경북대 같은 지방의 거점 국립대보다 노력을 더 많이 한다. 우리 대학만 해도 특수교육 분야 등에 특성화가 정말 잘 돼 있다. 그동안 구조조정도 정말 많이 했다. 나는 지방대를 무조건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망해야 할 대학도 있다. 시장 원리에 맡기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경쟁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최소한의 룰은 만들어야 한다. 부자들이 더 욕심이 많다는 말이 있는데 대학 상황도 비슷하다. 농어촌전형 만들어 지방 학생들 빼가고, 서울대나 연세대 같은 대학들은 대학 명성에 맞게 높은 기준으로 외국 학생들을 뽑아야 하는데 전형을 보면 지방 사립대와 큰 차이가 없다.”

- 교육부 정책에 문제는 없나.

“경기장이 기울어 있다. 대학평가만 봐도 지방대는 현격히 불리하다. 3년 주기와 5년 주기로 하는 평가가 있는데 올해 3년 주기 평가를 진행한다. 교수 충원율과 입학생 충원율, 졸업생 취업률, 재단 전입금 같은 지표를 측정한다. 이 중에서 재학생 충원율 같은 것은 대규모 미달 사태를 빚은 지방대가 무조건 불리하다. 그런데 이번 평가에서 학생 충원율 배점을 이전보다 2배로 높였다. 지방대는 죽으라는 얘기다. 취업률 평가도 문제가 있다. 질 낮은 단기 일자리만 양산한다. 우리 대학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졸업생 취직시켜주는 기업에 대학들이 급여를 지원한다. 대학의 급여 지원이 끊기면 바로 해고된다. 불공정한 평가 지표를 고치는 것이 시급하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은 가르치기가 더 어렵고 비용도 더 많이 든다는 사실을 교육당국이 모를 수 없다. 그런데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지방 대학들을 격려하기는커녕 불이익을 주려 한다. 대학평가는 대학을 지원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들에 대한 교육환경과 교육의 질, 교육비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

‘공영형 사립대’는 실패작

지배구조 개선하면 돈 준다는 건데
10억 받으려 재단 내부 공개 안 해
총장·이사 잘못하면 비리 사학 낙인
대학에 불이익 줘 학생이 피해봐

- 정부가 ‘공영형 사립대’를 육성하겠다고 했는데….

“공영형 사립대는 대학 이사회의 절반 이상을 공익이사로 선임해 대학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정부가 운영경비를 일부 지원하는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참여 신청을 한 대학이 대구대를 비롯해 전국에서 5곳밖에 안 된다. 지원금이 10억원 정도인데 규모가 좀 되는 대학들은 그 정도 금액을 받기 위해 재단 내부를 공개하려 하지 않는다.”

-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사학의 신뢰도를 높일 필요가 있지 않나.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비리’라는 단어는 사학에만 붙는다. 이사장과 총장이 비리를 저질렀는데 피해는 학생들이 본다. 교육부는 이른바 사학비리를 막고, 그 책임을 묻기 위해 벌점제를 시행한다. 예컨대 총장이 잘못하면 국책사업 등을 통해 해당 대학에 집행된 자금을 회수해 간다. 책임자를 엄하게 처벌하면 되는데 대학에 불이익을 주니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고, 내부 고발자가 나오기 어렵다. 시민들이 비리 이사장과 비리 총장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 당초 임기가 내년 5월이다. 중도 사퇴로 아쉬운 점이 있을 텐데….

“경북 경산시만 해도 대구대를 포함해 10곳의 대학이 있다. 그렇지만 변변한 대학가나 문화공간은 없다. 경일대와 호산대, 대구가톨릭대, 대구대, 영남신학대, 대경대, 대구한의대, 영남대, 대신대 캠퍼스를 관통하는 모노레일 같은 것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2만명 정도의 학생을 수용하는 기숙사를 짓고…. 내가 물러나도 후임 집행부가 잘할 것으로 믿는다. 지방대가 위기인 것은 틀림없지만 쉽게 무너질 수는 없다. 일본에서는 ‘평생 도쿄에서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이 욕이라고 한다. 서울이 사람 살기 제일 좋은 곳인가?”

수능 42만명 봤는데 입학정원은 48만명
수도권 대학·국립대도 구조조정해야


[논설위원의 단도직입]“망해야 할 대학도 있지만, 정책은 지방대에 공정했나”


올해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한 4년제 대학은 전국적으로 162곳에 이른다. 대학들이 미달인원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따르면 이들 대학의 추가 모집인원은 2만6000명으로 작년보다 3배 늘었다. 이렇게 학생 모집이 어려운 것은 기본적으로 입시를 치른 학생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기 때문이다. 2021학년도 수능 응시자는 42만1000명인데 대학 입학정원은 4년제가 31만8000명이고 전문대까지 합치면 48만명에 이른다.

서울대와 수도권 사립대, 지방거점 국립대 순으로 이뤄진 대학 생태계의 맨 아래에 지방 사립대가 있다. 대구대를 비롯한 지방 사립대의 대규모 신입생 미달 사태로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할 것이라는 말이 현실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방대에만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것은 곤란하다. 지방대 정원 감축이나 폐교는 지역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지역 공동체 붕괴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방 인재 유출도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정원 감축 등 대학 구조조정은 수도권 대학과 국립대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대학 위기를 타개할 단기 대책으로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한계사학 정리를 위한 특례 입법을 제시했다. 교육부와 대교협,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 지역과 산업 관련성 등을 고려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이 과정에서 살아남는 대학들이 수도권으로 집중되지 않도록 정원 관리정책 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홍규 대교협 사무총장은 “정원 감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모집유보 정원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시적으로 학생 모집을 중지하고 여건이 호전되면 다시 정원대로 학생을 모집하는 방안이다, 교육부가 결심하면 2022학년도부터 바로 적용할 수 있다. 대학의 노력에 따라 학생들의 선택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학생수 감소에 따라 대학이 당면한 문제는 재정이다. 학생 1명의 등록금이 연간 800만원 수준이므로 전국적으로 1만명이 미달할 경우 연간 800억원, 4년간 3200억원의 재정 결손이 생긴다. 김상호 대구대 총장은 “사립대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의 잉여공간(교지, 교사)을 특수학교나 직업교육훈련기관, 청소년시설, 요양병원, 창업보육센터, 공공박물관 등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하고,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사무공간을 대학 캠퍼스에 두는 방안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정부의 대학혁신지원사업비를 일반운영비로 전환해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대학들의 요청도 한시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계대학이나 비리를 저지른 대학은 제외해야 한다. 사립대학들은 재산세 등 국공립대학과 차별적으로 부과하고 있는 세금을 축소·폐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폐교 시 학교의 남은 재산을 설립자에게 돌려줘 사학재단 스스로 구조조정에 나서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안들은 사학에 대한 특혜가 될 수 있다. ‘폐교 먹튀론’으로 불릴 정도로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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