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우리가 1번도 2번도 안 찍은 이유

2021.05.01 06:00

2016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페미니즘이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3주기를 맞은 2019년 5월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꽃과 추모 글이 놓여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2016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페미니즘이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3주기를 맞은 2019년 5월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꽃과 추모 글이 놓여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김유진씨(가명)는 1994년생이다. 여대 졸업 후 마케팅 분야에서 일해왔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다 최근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 서울에서 혼자 산다. 본가는 다른 지역에 있다. 대학 입학 전엔 성차별 문제를 실감한 적이 없다. 집에서 장녀로 ‘대우’받으며 자랐다. 중·고교도 남녀공학에 합반이었다.

학보사에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후배를 만나며 젠더 이슈에 눈을 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맞닥뜨렸다. ‘여성이란 이유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피부로 느꼈다.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고 공부를 시작했다. 2018년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혜화역 시위에 참여했다. 그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위력 성폭력’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젠더·인권감수성을 갖춘 정치인으로 여겨 마음속으로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을 “우선 아웃”시켰다. 박원순 전 시장의 성폭력으로 선거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도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시장에서 스스로 물러난 전력이 있어서다. 김진아 여성의당·신지예 무소속(팀서울) 후보를 두고 고민했다. 고향의 어머니는 “사표(死票)가 된다”고 말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1인 가구로서 김진아 후보의 ‘여자 혼자도 살기 좋은 서울’ 슬로건에 끌렸다. 김 후보를 찍었다.

이민지씨(가명)는 1999년생이다. 남녀공학 대학에 다닌다. 성평등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총여학생회(총여) 폐지였다. 대학가의 총여 폐지 바람은 페미니즘 확산에 대한 ‘백래시’(반격)로 해석됐다. 여성 대상 범죄들을 접하면서 안전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다.

서울시장 보선에서 그는 “1·2번(민주당·국민의힘)을 찍지 않음으로써” 20대 청년 여성이 뭘 원하는지 표출하려 했다. 두 후보 다 재개발·재건축 이야기만 하는데, 누가 당선되든 청년이자 무주택자인 자신의 삶은 달라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선택은 신지예 후보였다. 청년 노동자들의 고민에 공감하고 차별금지조례·생활동반자조례 제정을 약속한 게 마음에 들었다.

서울시장 보선 출구조사 결과 20대(18~29세) 여성의 15.1%가 소수정당·무소속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세대·성별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시선은 온통 ‘20대 남성’에 쏠려 있다. 이들 중 72.5%가 국민의힘을 찍었다는 데 주목하며 호들갑을 떤다.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은 “20대 남성을 분석하려는 이 움직임 자체가 남성권력을 보여준다”(한겨레)고 지적했다. 선명한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고도, 해석 대상에서조차 배제되고 있는 2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20대 여성’ 그들은 누구인가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서울과 경기도에 거주하는 22~29세 여성 8명을 만났다. 지난달 20~27일 대면·전화·e메일 인터뷰를 활용했다. 솔직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8명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했다. 한국 8대 성씨(김·이·박·최·정·강·조·윤)와 1990년대생 여성 이름 1~8위(유진·민지·지은·지혜·지현·은지·수진·지영)를 차례로 짝지어 만들었다. 예컨대, 김유진씨는 성씨 1위(김)와 이름 1위(유진)의 조합이다.

■강남역, 미투, 혜화역, n번방

처음부터 ‘페미’는 아니었다

강남역 살인 사건·불법촬영
안희정·박원순 성폭력 사건
조주빈 n번방·김태현 스토킹
일련의 사건 보면서 다짐했다
“이건 나의 일이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지난 2월 여자대학을 졸업한 박지은씨(26·서울 거주)는 취업 준비 중이다. 방송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그는 여대 입학 전 남녀공학 대학에 1년간 다녔다. 그때는 페미니즘과 거리를 뒀다. 새로운 대학에 들어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서울 강남역 인근 노래방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이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가 ‘또’ 일어났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그의 마음에 분노를 지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범죄일 뿐이고, 여성혐오 범죄로 볼 수 없다는데 화가 났어요.” 동기들은 사건 현장인 강남역 10번 출구에 가서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는 등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최지혜씨(28·서울 거주)도 ‘강남역’을 기억한다. 대학교 4학년, 취업을 준비하며 사회적 의제에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접하곤 “내가 알던 세계가 완전히 뒤집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묻지마 살인’으로 보기 어려운데, 경찰은 묻지마 살인이라고 했다. 대학 내부에서도 논쟁이 많았다. “이제부턴 목소리를 낮춰선 안 되겠다, 기회가 되면 발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는 강은지씨(27·경기 거주)는 2016년 휴학하고 강남역 근처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그 건물을 본 적 있어요. 엄청 번화가에 있거든요. 누구나 갈 수 있는 위치예요.” 당시 한 지인은 “사건이 난 건물의 노래방은 내 동생이 자주 가던 곳이다. 그날도 가려고 하다 다행히 안 갔다더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건 이후 ‘여자들은 밤길 조심하라’는 식의 이야기가 오고가는 게 더 싫었다. “걱정해서 하는 말인 줄은 알지만, 개개인이 조심한다고 피해를 면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강씨는 2018년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의 물결이 일 때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김지은씨에게 쏟아지는 2차 가해에 분노하며 ‘행동’을 고민하게 됐다.

대학생 정지현씨(22·서울 거주)는 불법촬영 관련 혜화역 시위와 n번방 사건 등을 목격하며 여성과 남성이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성 대상 범죄를 다룬 기사에 ‘내 가족이나 애인이 저런 일을 겪으면 화날 것 같다’는 댓글이 달리는 걸 볼 때마다 분노가 치밀었다. 실제 피해자가 명백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가상의 피해자를 만들어야만 공감이 가능한가?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여성 화장실에 가보면 벽에 뚫린 구멍이 휴지로 막혀있는 걸 보게 돼요. 우울해지죠.”

■안전, 그리고 취업

“가장 걱정되는 건 안전 문제예요. 여대 주변에는 ‘여성 전용’이라고 붙은 주거지들이 있어요. 다른 곳보다 월세가 10만~15만원씩 비싸도 여기를 택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택배를 주문할 때도 실명이 아닌, 김춘삼·박두팔 같은 ‘센 이름’을 적는데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다 기사화돼서, 의미가 없다는 말도 있어요.”

박지은씨는 2019년 ‘신림동 원룸 강간미수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남성 조모씨는 새벽에 귀가하는 한 여성을 뒤쫓다가 여성이 집으로 들어가자 현관문을 쳐서 문이 닫히는 걸 막으려 했다. 닫힌 뒤에도 손잡이를 돌리고 비밀번호를 눌러보는 등 침입을 시도했다. 법원은 그러나 강간미수를 무죄로 보고 주거침입죄만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 이후 박씨는 자취방에 달린 도어록을 배터리도 교체할 겸해서 뜯어봤다. “안심버튼(집에 들어가 누르면 외부에서 비번을 눌러도 안 열리는 버튼)이 있으니 괜찮겠지 했는데, 사실 제대로 작동이 안 되고 있더라고요. 멘붕이었죠.”

박씨의 한 지인은 결별을 통보한 남자친구에게 스토킹을 당했다. 헤어진 남성은 매일 문자를 몇십 통씩 보내고, 집 앞에서 몇 시간씩 기다렸다. 여성의 아버지가 “쎄게” 이야기해서 3주 만에 마무리됐다. 자취하던 여성은 다시 본가로 돌아가 몇 시간씩 걸려도 통학하는 쪽을 택했다.

최근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조수진씨(29)는 로스쿨 입학 전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채용 차별을 실감했다. “한 공기업에 지원한 적이 있어요. 서류와 필기까지는 ‘블라인드’였습니다. 1차 면접에 갔더니 남녀 성비가 반반이에요. 그런데 2차 면접에선 여자가 5분의 1밖에 안 되더군요.”

명문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됐다고 ‘벽’이 무너진 건 아니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날, 한 선배가 실무 연수받을 로펌을 소개해주겠다면서 ‘2년 안에 결혼이나 출산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커리어의 출발점에서 처음 듣는 질문이 결혼·출산 계획이라니…. 앞으로 여성 변호사로서 힘든 일이 많겠구나 싶었지요.” 실제 소규모 로펌은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 지원이 일반 기업에 비해 뒤처진다. 이 때문에 많은 여성 변호사들이 출산·보육 과정에서 기업 사내변호사로 이직하기도 한다.

최지혜씨는 취업에 성공하기 전 최종 면접에서만 10여차례 떨어졌다. 면접장에 들어갈 때마다 대부분 면접관은 남성이었다. 일부 회사에선 “혜화역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일종의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하기도 했다. “출산 후 아이가 아픈데 급한 업무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도 받았다. ‘아저씨들’이 묻는 의도에 맞춰 답하다보면 부끄럽고 불쾌했다. 자꾸 떨어지다보니 자존감이 깎여나갔다. ‘내가 문제인가 보다’ 하며 자기검열에 시달렸다. 입사한 뒤 ‘윗분’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아무래도 남자들을 배려할 수밖에 없어. 안 그러면 (합격자가) 다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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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현재호 기자

■소통의 벽

우리가 원하는 건 안전과 소통

새벽 귀갓길이 무섭지 않길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갖길
자기 검열 않고 의견 말하길
세상 향해 외치는 이유인데
대결 구도로 모는 시선 여전
그래서, 내 ‘의제’ 대변해 줄
‘제3의 후보’를 선택했다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대학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윤지영씨(22·경기 거주)의 말이다. 그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여성 문제뿐 아니라 청소년·장애인·성소수자 인권과 환경 문제까지 관심 영역이 확장됐다. 또래 여성 친구들과의 대화에선 자연스럽게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이 집단을 벗어나면 소통이 어려워진다. 영화 상영 후 GV(관객과의 대화)에서 평론가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평론가는 대뜸 ‘학생’이라고 칭하면서 ‘학생이 이건 오해하고 저건 잘못 생각했다’는 식으로 잘랐다. 생각과 감정과 지성을 지닌 고유한 존재임에도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대학생 이민지씨(22·서울 거주)는 또래 남성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 쉽지 않다. 친구든 연인이든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대화하고 싶지만 화제를 꺼내기가 꺼려진다. 기분이 상하고, 서로 좋지 않은 감정이 쌓이게 될까 싶어서다.

강은지씨는 사회로부터 자기검열을 강요받는 것 같다. 연애할 때도 나의 생각을 어느 수준까지 밝힐지 고민된다. “오픈하면 피곤함을 감당해야 하거든요. 주변에서 이런 문제로 트러블을 겪는 사례를 많이 봅니다. 저는 피곤해지느니 차라리 연애 안 한다는 쪽이에요. 친구들은 ‘(시각 차이를) 살짝 외면하고 연애하라’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요.”

20대 후반이 된 최지혜씨는 누군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젠더 감수성이나 인권의식 측면에서 생각이 잘 맞는 남성을 찾기 쉽지 않기에 고민스럽다.

■4월7일의 선택

인터뷰에 응한 8명 중 5명이 4·7 서울시장 보선에 참여했다. ‘박영선이 좋아서’ 혹은 ‘오세훈이 좋아서’ 표를 던진 이는 없었다. 반대의 경우는 있었다.

정지현씨는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러나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낙선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결국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최지혜씨는 투표장에 가기 전까지 4명의 페미니스트 후보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최종 선택은 박 후보였다. “절대 민주당이 좋아서는 아닙니다. 오 후보가 당선되는 게 싫었어요.” 선거 후 ‘소신투표를 했어야 했나’ 후회가 스쳐갔다.

“지금까지 치러본 선거 중 가장 어려웠다”는 박지은씨는 오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이유는 정지현·최지혜씨와 정확히 반대다. “서울시장 보선이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에서 비롯된 거잖아요. 피해자가 사전투표 며칠 전 기자회견하는 걸 보면서, 민주당에서 시장이 나온다면 이분이 얼마나 좌절할까 싶었어요.” 민주당의 ‘블러핑(허세)’도 영향을 미쳤다. 사전투표 후 박 후보 선대위 측이 ‘사전투표에서 이겼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사실이 알려졌다. 박씨는 페미니스트 후보를 선택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민주당 주장이 사실이면 어떡하나 싶어 오 후보로 돌아섰다.

■15.1%의 힘

서울시장 보선 출구조사 결과 18~29세 여성의 44%가 박 후보에게, 40.9%가 오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주목받은 것은 1·2번 지지자가 아니었다. ‘제3후보’에게 표를 던진 15.1%였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투표했든 안 했든, 어느 후보를 찍었든 ‘15.1%의 힘’을 반겼다.

“김진아가 4등을 했다. 사표 될까 겁내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찍었으면 3등은 했을 거 아니냐.” 김진아 후보에게 투표한 김유진씨는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친구들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김씨는 “무조건 둘 중 하나를 뽑는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무소속(팀서울) 신지예 후보를 선택한 이민지씨는 15.1%란 숫자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숫자로 드러나는 게 임팩트가 있으니까요. 15.1%라는 숫자에 소속감과 존재감을 느낍니다. 제3후보를 선택하고 싶었던 20대 여성은 이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최악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차악’으로 1번이나 2번을 찍은 사람이 적지 않을 거라고 봐요.”

박지은씨(오세훈 지지)는 “투표 직전까지 갈팡질팡한 저보다 심지가 굳은 사람들의 선택”이라며 웃었다. 그는 여당도, 제1야당도 20대 여성들이 ‘내 의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대변하지 못한 결과로 해석했다. “양당 모두에 신물이 난 거죠.”

최지혜씨(박영선 지지)는 김진아·신지예 후보를 찍은 친구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민주당이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한 데 분노했다고 한다. 최씨는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들이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일단 각성되면 과거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박 후보를 지지한 정지현씨도 “젊은 여성들이 현 체제에 불신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변화를 바란다는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보여준 결과”라고 평가했다.

“말로만 ‘페미니스트 대통령’ 외쳐…이제라도 여성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문 정권은 ‘친여성적’이었나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20대 남성’의 마음을 잡지 못해 선거에서 졌다고 탄식한다. 지나친 ‘친여성 정책’이 문제였다며 20여년 전 위헌 결정이 난 군 가산점 부활까지 주장한다. 20대 여성은 이를 어떻게 바라볼까.

최지혜씨는 “여성 장관을 등용하려고 노력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개별 여성 시민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유진씨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짚었다.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이 그렇게 스스로를 호명한 것은 의미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이후로는 기억에 남는 게 없네요.”

정지현씨는 “여성 대상 범죄에서 가해자들에게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지 않고 외려 피해자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약한 처벌과 미온적인 대책이 실망스럽다”고 했다.

강은지·조수진씨의 반응은 비슷하다. “안희정·박원순·오거돈 사건 때 (현 정권의) 여성에 대한 관점이 모두 드러났죠.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도 심각했고요.”(강) “ ‘피해 호소인’이란 용어만 봐도 모든 게 설명되지 않나요.”(조)

가장 신랄한 반응은 박지은씨에게서 나왔다. “정권이 20대 남성들을 향해 ‘기약 없는 짝사랑’을 하는 것 같습니다. 20대 여성은 알아서 돌아올 ‘집토끼’로, 20대 남성은 애써서 잡아야 할 ‘산토끼’로 여기는 건가요?”

■‘공정’ 이상의 세상을 꿈꾼다

공론장을 휩쓸고 있는 뜨거운 화두 ‘공정’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달랐다.

조수진씨는 “20대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으며 살아왔는데, ‘조국 사태’ 등에서 불공정한 게 보이니까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커졌다”고 해석했다.

반면 윤지영씨는 ‘공정’ 담론에 반기를 들었다. 공정이란 경쟁의 규칙과 관계되는데, 경쟁은 아무리 공정하다 해도 결국 성공과 낙오를 낳는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SKY(서울·고려·연세대)’ 청년은 극소수잖아요. 대다수 평범한 청년들은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지 않을까요.” 그는 평범한 청년들이 종사하는 택배 노동 등의 여건을 개선해서 노동자들이 적정한 임금을 받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강은지씨도 ‘공정’에 대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 20대 사이에서, 이해하기 힘들 만큼 이상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어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지금의 체제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청년들이 있잖아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야기할 때 같은 경우죠. 그 마음을 아예 모른다고는 못해요. 하지만 피해는 결국 20대에게 돌아갈 겁니다.” 강씨는 “20대가 먼저 나서서 ‘파이 싸움 그만하자’고 외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성에게 더 큰 스피커를!

입사 3년차인 최지혜씨의 가장 큰 열망은 ‘일’에서 성공하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일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회사에는 롤모델로 삼을 만한 여성 선배가 많지 않다. 여성 간부는 임원급에 단 한 명, 그 아래 간부들도 단계마다 한 명 정도씩 ‘구색만 맞추는’ 수준이다. 경영진은 ‘여성 인력의 풀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씨는 “제도적 변화도 필요하지만, 여성 의제에 대한 인식 확산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싸우겠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 외치는 것이죠. 정치인과 행정가들이 여성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박지은씨는 “정부나 국회에서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는 것 같다”며 스토킹처벌법을 예로 들었다. 지난달 공포된 스토킹처벌법은 다양한 유형의 온라인 스토킹을 처벌하기 어렵다는 등의 한계를 지적받고 있다. 박씨는 “여성 관련 정책을 만들고 법을 제·개정할 때 여성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유진씨도 젊은 여성들이 마이크를 더 많이 쥐어야 한다고 했다. 86세대(1980년대 대학 입학·1960년대 출생)를 향해선 “페미니즘을 말로만 이야기하지 말고, 실천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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