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산재로 몇 명이 죽었는지 아십니까?”(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숫자는 정확히… 저 몇 백명….”(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발전소 생명안전 업무 노동자 정규직화) 법 안 만들고 뭐하셨습니까?”(심 후보), “민간에 강요할 수 없고 국민의힘이 동의해야 되는 것이지, 지금 민주당 보고 강행 처리하라는 취지이십니까?”(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난 2일 열린 20대 대통령선거 마지막 TV토론에 고 김용균씨가 소환됐다. 김씨는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 고인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TV토론이 열리는 KBS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업장 확대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함께한 뒤 토론을 지켜봤다. “자기네들이 할 의지가 없다는 걸 이야기한 거잖아요.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 다 약간 발뺌하는 모양새였어요.” 김 이사장은 토론을 지켜본 뒤 기자와 통화하면서 여러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김 이사장은 이 후보와 여권에 대해서는 “고용 불안에 떠는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게 그들이 할 일인데, 이걸 내빼는 건 (차기) 대통령으로서 직무유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토론에서 ‘생명·안전 업무 정규직 직고용’ 등 민주당의 공약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사회적 합의인데 못 지키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했고, “(법안을) 강행처리하라는 거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용균씨의 사망 이후 국무총리 훈령으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발족했고, ‘운전 및 정비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첫 권고안으로 나왔다. 하지만 3년 넘도록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노동계는 비판한다.
김 이사장은 특히 노동 문제에 대한 윤 후보의 발언을 “듣는 내내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국민의 72%가 찬성한 법인데 국민에 반하는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노동자들이 열악하게 일하고 말도 안 되게 죽음을 당하고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했다.
윤 후보는 토론에서 “중대재해법의 구성요건이 약간 애매하게 돼 있다. 형사 기소를 했을 때 여러 법적 문제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이 유예·제외된 것에 대해서도 “가슴으로 와닿는데 현실에서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윤 후보는 “김용균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으로서 서산지청에 지휘해서 13명이 기소되게 수사를 철저하게 시키고 처리했다”고 했다. 노동 문제에 대한 인식이 검사 시절 갖고 있던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촌평이 나왔다. 김 이사장은 “노동에 대한 윤 후보의 생각은 아직까지 기업 편에 서 있다”고 했다.
중대재해 발생 시 기업 최고경영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중대재해법은 2020년 9월 김 이사장이 올린 법 제정 국민청원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에서 다뤄지기 시작했다. 법 제정 전까지 기업들은 노동자가 산재로 숨져도 100만~1500만원 수준의 벌금을 내는 데 그쳤고, 상부 책임자들은 처벌을 피했다. 사고 이후 3년2개월 만인 지난달 10일 나온 김용균씨 산재 사건 1심 판결에서도 벌금형을 제외하고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원·하청업체 책임자는 없었다.
김 이사장은 “용균이가 일한 현장과 수많은 죽음을 볼 때마다 ‘기업들과 이 나라가 안전을 방치했구나’ 생각한다”며 “노동자가 안전해야 한다고는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안전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빠져 있다”고 했다. 그는 “여태까지 (정치권이나 정부는) 기업에 ‘알아서 노동 안전 지키라’고 했는데 그게 안 됐잖나”라며 “그럼에도 (유력 대선 후보들은) 또 그렇게 하겠다는 걸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