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살려고 뭉친다는데…소도시·농촌도 살림살이 좀 나아집니까

2022.05.09 06:00

메가시티, 너도나도 나서고 있지만

[기울어진 균형발전]③ 살려고 뭉친다는데…소도시·농촌도 살림살이 좀 나아집니까

지방 인구 유출 ‘절박함’에서 시작
지난달 ‘부·울·경 특별연합’ 출범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 나서

“농경사회에선 농장이 혁신의 컨테이너였고, 산업화 시대엔 기업이 그 역할을 했다. 앞으로는 도시 자체가 컨테이너가 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세계적인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의견이다. 대도시 예찬론자인 그는 “도시가 창의력의 산실이고 대도시에 자치권을 줘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며 향후 세계경제는 ‘메가시티’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메가시티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서 메가시티에 관한 담론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지는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균형발전 의제를 집어삼킬 만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올랐다.

메가시티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2019년 처음 제안했다. 당시 그는 “메가시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지방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길”이라며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 메가시티 조성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2021년 10월 세종시에서 열린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수도권 일극체제를 타파하기 위해선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특단의 균형발전 전략이 모색돼야 한다. 초광역협력(메가시티)이 그것”이라고 밝혔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논의됐던 메가시티가 중앙정부의 균형발전 의제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메가시티 의제는 윤석열 정부도 균형발전 정책의 한 축으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3월 인수위원회에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으로 지방자치 전문가인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임명했다. 김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지방화 시대’를 여는 정부가 될 것”이라며 향후 부·울·경 등 권역별 메가시티를 조성하고 강소도시 연계·육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메가시티 의제는 과거와 달리 해당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나서 제안한 ‘바텀업’ 방식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메가시티 조성을 통한 지역 발전을 위해선 대도시 중심의 초광역권을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지역 중심 거버넌스를 확립해 다양한 참여주체의 이해관계를 결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메가시티 역시 또 다른 토건 프로젝트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발전 성공모델 1개라도 만들어야

메가시티는 2개 이상의 거대도시가 생활·경제 등이 기능적으로 연계된 인구 500만명 이상, 경제 규모 3000억달러 이상의 광역 지역을 말한다. 유엔은 인구 1000만명 이상의 메가시티는 2018년 33개에서 2030년 43개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구 500만~1000만명 규모의 메가시티도 2018년 48개에서 2030년엔 66개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에선 지난달 18일 ‘부산·울산·경남 특별연합 규약안’이 행정안전부의 승인을 받으면서 전국 첫 특별지방자치단체인 ‘부산·울산·경남 특별연합’(부·울·경특별연합)이 공식 출범했다. 부·울·경특별연합은 부산·울산·창원·진주 등 4개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주변 중소도시와 인근 지역을 생활권·경제권 단위로 연계해 발전시킬 목적으로 탄생했다. 부·울·경을 수도권과 같은 또 하나의 발전축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지역이 메가시티를 추진하겠다고 먼저 발벗고 나선 배경에는 절박함이 자리 잡고 있다. 4차 산업 등 신산업이 수도권에서만 성장하는 반면 그동안 중앙정부가 지방서 추진해온 도로 중심의 인프라 투자, 공공기관 이전 등의 전략은 지방 인구 유출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본 것이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도권에 대항할 수 있는 ‘또 다른 대도시권’을 만들자는 것이 메가시티의 핵심이다.

메가시티는 한국에서만 관심 갖는 의제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연결구조가 힘을 받으면서 대도시 쏠림현상이 심화됐고, 이를 타개할 균형전략 중 하나로 메가시티 구축을 택했다. 영국의 ‘맨체스터 지방연합’, 프랑스의 ‘메트로폴’, 일본의 ‘간사이광역연합’ 등이 대표적이다. 영국은 2011년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지자체 연합기구인 ‘맨체스터 지방연합’을 설립했다. 맨체스터 시를 포함한 총 10개의 기초단위 지자체가 연합하면서 하나의 광역도시권이 탄생했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광역적 연계를 통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혁신 인재를 모을 수 있는 대도시권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간의 균형발전 정책들이 번번이 실패하면서 지방에선 뭘 해도 안 된다는 낙인이 찍혀 있는 만큼 단 하나의 성공 모델이라도 만들어 지방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가시티 구축은 부·울·경을 넘어 다른 지역서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광역지자체로는 대구·경북과 충청권, 광주·전남권 등에서도 부·울·경 벤치마킹에 나선 상태다. 기초단체 차원에선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전북 남원·장수, 전남 구례, 경남 하동·산천·함양)과 접경지역 시장·군수협의회(인천 강화·옹진, 경기 파주·김포·연천, 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이 특별지자체 설치를 추진 중이다.

서울과 지방 간 문제로만 접근 땐
지역 내 불균형 심화시킬 수 있어

네트워크 기반의 자족기능 구축이 관건

부·울·경 메가시티의 청사진인 ‘부·울·경 초광역권발전계획’은 산업·인재·공간 분야별 전략, 30개의 1단계 선도사업과 40개의 중·장기 추진사업 등 총 70개의 핵심사업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지역의 3대 주력 산업인 자동차·조선·항공을 집중 육성하고 수소자동차·친환경 수소 선박 등을 중심으로 한 수소경제권 구축에 나선다. 아울러 1시간대 생활권과 경제·문화공동체 구축을 통해 수도권 집중을 해소한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교통’이다. 그중에서도 철도를 기반으로 한 대중교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누구나 비용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기차와 급행철도가 도입돼야 청년들이 일자리·교육·체험 등에 있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지방 문제를 연구해온 이관후 국무총리실 소통메시지비서관은 “수도권과 지방 사이 교통 격차의 핵심은 바로 철도망”이라며 “지역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잘 연결된 철도망을 구축하면 그 사이 있는 소도시들도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1시간대 생활권 안에서 교육·돌봄·의료 서비스와 일자리, 문화시설 등이 갖춰지면 지방도시를 떠날 가능성이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일명 자족기능의 확보다.

기업들이 지방 대도시권에 올 수 있도록 하는 산업생태계도 구축해야 한다. 마 교수는 “지역에는 특화 산업을 넘어 기존 공간구조와 어울리는 핵심 산업을 확보해야 한다”며 “기업 유치를 위해서는 법인세 감면 등 기업에 대한 혜택뿐만 아니라 주택 제공 등 이주 근로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도 “메가시티 전략이 각 지방정부가 하고 싶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며 “핵심 산업 콘텐츠를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기업과 일자리는 없고 청년은 빠져나가는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도시 중심으로 초광역권 잇되
시·군 단위 지자체 목소리 담아야”

소도시·농촌 등 ‘진짜 지방’ 소외 우려도

메가시티 의제를 둘러싸고 마냥 장밋빛 청사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메가시티는 대도시 중심적인 시각으로 지방 소도시와 농촌은 이미 스러져가는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활성화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촌경제연구원 김정섭 박사는 “지방 대도시 입장에선 메가시티 조성을 균형발전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이는 균형발전을 서울과 지방 대도시 간의 문제로만 본 반쪽짜리”라며 “메가시티는 오히려 국지적으로 지역 내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마을연구소 ‘일소공도’의 구자인 소장도 “혁신도시와 마찬가지로 메가시티를 만들면 수도권 인구를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인근 중소도시, 농촌의 인구를 흡수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도시는 농촌의 희생을 기반으로 많은 편익을 누리는 만큼 면 단위 지역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균형발전을 위해선 메가시티가 아닌 ‘연방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승수 전 녹색당 공동대표는 “우리나라 국토의 73%가 면 단위의 농촌”이라며 “대도시 발전을 통한 (농촌의) 낙수효과는 없다. 농촌이 잘 살아야 도시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권력의 중심이 아래로 내려가는 연방제를 통해 기초자치단체들도 의사결정권을 함께 가지고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발전전략을 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메가시티 전략을 옹호하는 그룹에서도 제대로 된 균형발전을 위해선 메가시티 조성 과정에서 ‘자치분권 거버넌스’를 함께 확립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최근 부·울·경 청사 소재지와 단체·의장 선출을 놓고 이견을 보이는 것도 지자체 주도의 거버넌스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 교수는 “우리나라는 자치분권의 역사가 일천해 지방정부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지역에서 의지를 가지고 주요 이슈에 대한 공론화 작업을 거치는 과정도 그래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 역시 “메가시티를 추진하게 되면 각각의 행정구역을 넘어 공동의 사업을 많이 해야 하기에 사업 참여 지자체들은 인구 비례가 아닌 동등한 발언권을 갖는 방식으로 공동의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광역단위는 물론 시군 단위 지자체들도 균형발전에 참여시키면서 평등성을 기반으로 한 거버넌스를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시골엔 학교도 병원도 없는데…거점도시 제대로 키우려면 배후지를 더 탄탄하게 해야”


충남 홍성 장곡면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구자인 소장

[기울어진 균형발전]③ 살려고 뭉친다는데…소도시·농촌도 살림살이 좀 나아집니까


복수의 도시 권역을 연계해 하나의 경제권으로 발전시킨다는 ‘메가시티’ 구상이 몇 년 전부터 화제다. 지난 20대 대선 후보들도 너도나도 메가시티 공약을 들고 나왔다. 반면 여전히 대규모 거점도시 개발보다는 소도시와 농촌 마을살리기가 먼저라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충남 홍성 장곡면에 있는 마을연구소 ‘일소공도’의 구자인 소장(57·사진)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농촌이 살아야 도시도 산다”고 믿는다.

충남 홍성 마을연구소 사무실에서 구자인 소장을 만나 균형발전과 자치분권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1세대 마을만들기 운동가인 구 소장은 균형발전이란 “농촌을 재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면 단위’ 마을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사람 몸으로 비유한다면, 농촌은 실핏줄입니다. 실핏줄에 피가 돌아야 전체적으로도 순환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최근 들어 균형발전 논의가 ‘거점도시 개발’ 위주로만 흘러가는 것을 우려했다. “시골에는 학교도 없고, 병원도 없는데, 이 상태로 거점도시 몇 곳을 더 키운다면 농촌은 ‘소멸’만 빨라지지 않을까요.”

구 소장은 메가시티 같은 거점도시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라도 배후지를 더 탄탄하게 만들 것을 주문했다. 그러려면 행정구역을 지금보다 더 작은 단위로 나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시·군·구’가 최소 행정단위로 정해져 있는 지금은 그보다 작은 ‘읍·면·리’의 다양성과 요구사항이 제대로 반영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구 소장은 “생활 쓰레기 등과 같이 일상생활과 밀접한 부분은 읍·면 단위까지 권한을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14년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가 지방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행정구역을 상당 부분 통폐합했다. 지금의 행정구역 편제는 일제의 잔재”라며 통합보다는 지방분권 강화가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구 소장은 서울대 해양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돗토리현에 있는 국립대에서 6년6개월을 공부하고 ‘산촌 마을연구’(농촌경제학)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한국에 돌아와 전북 진안에서 10년을 보냈다. 진안군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돼 마을만들기팀장·정책개발팀장 등을 맡아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업을 실험했다.

2015년 충남마을만들기센터로 적을 옮겼다. 20년 가까이 ‘마을만들기’에 전념하면서 그가 절실히 느낀 게 있었다. 의욕 있는 주민들이 있더라도 이들이 모이고, 토론하고, 직접 정책을 제안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를 위해선 마을에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했다. ‘일소공도’도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경제개발 시기 한국 정부는 농촌을 식량 생산기지, 혹은 노동력 공급기지로 봤습니다. 그러면서 농촌에 인구가 과잉돼 있으니 도시로 빼내야 한다고 노골적인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죠.” 구 소장은 앞으로 ‘새로운 농촌다움’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공동체가 최소한의 자족 기능을 갖추려면 농촌이 유지돼야 합니다. 농촌에 누군가가 살아가는 이상 그 안에서 기본권과 생활권이 보장돼야 합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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