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노동양극화에 노동장관 “원·하청 자율” 노동계 “법 고쳐 진짜사장 불러내야”

2022.08.30 15:53 입력 2022.08.30 16:05 수정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오후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조선업 주요 3사(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대표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오후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조선업 주요 3사(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대표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조선업 주요 3사와 조선소 사내협력사 대표들을 만나 고용 이중구조 해결을 위한 자율적인 노력을 주문했다. 노동계는 기업의 자율적 노력으로는 부족하다며 원청이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직접 교섭에 나서도록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30일 오후 조선업 주요 3사(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대표들을 만나 “조선업의 고용구조와 근로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노동시장 개혁의 중요한 과제이고 출발점”이라며 “원·하청이 자율과 연대를 기반으로 협력해 조선업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원·하청 간 공정거래 문화를 확산하고,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을 개선하며, 숙련인력들이 직무와 숙련도에 맞는 대우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조선 3사가 이중구조 문제를 풀어나가는 열쇠를 쥐고 있는 만큼 새로 만들어질 상생협의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했다.

이 장관은 이어 주요 5사(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사내협력사 협의회 대표들도 만나 같은 내용을 당부했다.

조선소는 10명 중 6명이 하청···尹도 “개선책 마련하라”

조선업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가장 심각한 업종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2022년 고용형태 공시 결과’를 보면, 조선업 노동자 가운데 62.3%가 하청·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였다. 사내협력사를 중심으로 한 하청 시스템이 만연하고, 불법 다단계 하도급에 해당하는 ‘물량팀(재하청 일용직)’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달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농성중인 유최안 대우조선 하청지회 부지부장. 이준헌 기자

지난달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농성중인 유최안 대우조선 하청지회 부지부장. 이준헌 기자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조선소 노동양극화의 현실이 널리 알려졌다. 하청노동자들은 2015년 조선업 불황기 때 30% 삭감된 임금이 그대로라며 임금 인상을 주장했다. 수십 년 경력의 숙련공 월급이 200만원대에 그치는 등 열악한 상황이 드러났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원청과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교섭 의무가 없다’며 하청노동자들의 교섭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하청 협력업체들은 원청이 주는 비용이 늘지 않으면 처우 개선이 어렵다고 버텼고, 하청노동자들은 51일간파업했다.

임금차별·고용안정부터 산업안전까지 거의 모든 문제의 핵심이 이 같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있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대통령실 참모진에게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에서 드러난 원청과 하청노조 간 임금 이중구조 문제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라며 개선책 마련을 주문했다.

노동계 “자율개선으론 역부족···노조법 개정해야”

노동계는 원·하청 기업들의 자율적 노력에 기댄 개선책만으로는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하청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하이트진로, 연세대 청소노동자까지 올해 주요 노동분쟁은 대부분 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 요구를 ‘진짜 사장’인 원청이 묵살하면서 벌어졌다. 노조법상 ‘사용자’의 범주에 원청을 분명하게 포함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에 대형 현수막을 설치하고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에 대형 현수막을 설치하고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간접고용 노동자 원청 교섭권 보장 노조법 개정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직접적인 근로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은 단선적 근로관계만 존재했던 20세기 초반 근로관계에 적합한 법제도일 뿐”이라며 “낡은 근로관계에 적합한 제도를 벗어나 고도화되고 복잡해진 근로관계 변화에 맞춰 실질적으로 결정권이 있는 사용자에게 교섭의무를 부담시켜야 한다”고 했다.

정 원장은 이어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원청 사용자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없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기본권이 아니라 헌법에 기재된 문구에 불과한 유명무실해진 권리”라며 “지금까지는 근로조건에 관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 사용자가 자신의 이익은 최대한으로 누리면서 법적 의무와 책임은 지지 않도록 법이 면죄부를 부여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정영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는 조선업 임금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조선업의 도급구조 개선과 노동시장 차원의 임금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며 “그렇지만 법제도적인 방법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거의 없다. 원청의 단체교섭 당사자성을 인정하고 교섭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한다면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 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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