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70만원 벌이, 무임승차 폐지 땐 40% 날아가

2023.02.19 21:25 입력 2023.02.19 22:52 수정

실버택배원과의 하루 동행

지하철 실버택배원 최영식씨가 지난 16일 지하철 1호선 군포역 개찰구로 들어가고 있다.

지하철 실버택배원 최영식씨가 지난 16일 지하철 1호선 군포역 개찰구로 들어가고 있다.

지난 16일 오전 8시30분, 서울 중구 을지로4가역 인근 건물 3층 사무실. 건물 외벽에 ‘실버퀵택배’ 현수막이 붙은 이곳에 지하철 실버택배원 최영식씨(73)가 들어섰다. 이른 아침인데도 6~7명의 지하철 택배원들이 일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65세 이상으로, 지하철을 탈 때 요금을 내지 않는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겨 최씨 순서가 왔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인근 사무실에서 서류를 받아 경기 군포시 회사로 가져다주는 일이다.

이들이 배달하는 물건은 서류·꽃·근조기부터 깜박 놓고 온 자동차키, 계약에 필요한 도장 등 다양하다. 기본운임은 1만1000원이지만 같은 자치구 안에서는 8000~9000원으로 단가가 낮아진다. 경기 수원이나 일산·인천처럼 회사로 돌아오는 데 한나절 정도 걸리는 곳은 2만원 정도다. 운임의 30%는 회사에 수수료로 내야 한다.

지하철 퀵 택배 3건 뛰면
수수료 빼고 3만800원 수익
65세 이상 무임 혜택으로
차비 1만1900원 아낀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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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6호선 효창공원역에 도착한 최씨가 우대권 교통카드를 개찰구에 찍을 때, 기자가 찍은 일반 교통카드에는 1250원이 찍혔다. 최씨는 웬만해선 버스를 타지 않는다고 했다. 지하철과 달리 승차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1만원짜리 배달 건의 경우 3000원을 수수료로 떼고 왕복 버스비 2400원을 제하면 남는 게 4600원이다.

효창공원앞역~용산역을 거쳐 1호선 군포역에 도착했다. 기자의 교통카드에 1650원이 찍혔다. 최씨는 서류를 전하고 1만6000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밖으로 나온 최씨는 회사에 “배달 완료”라고 보고했다. 최씨는 바로 회사로 향했다. 1호선 군포역에서 2호선 을지로4가역에 내리니, 기자의 교통카드에 1750원이 찍혔다.

최씨가 오전에 번 1만6000원 중 수수료 30%를 제하고 남는 돈은 1만1200원. 기자가 최씨와 동행하며 지출한 교통비는 총 4650원이었다. 최씨는 무임승차로 이 금액을 아꼈고, 1만1200원 수익을 지킬 수 있었다.

오후 1시38분, 회사에서 대기하던 허성일씨(76·가명)가 길을 나섰다. 허씨가 받은 일은 서울 광진구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근조기를 받아 노원구 을지병원에 설치하는 것으로, 운임은 1만5000원이었다. 허씨는 터미널 안내데스크에 몇 번 물은 끝에 근조기를 찾아냈다. 일과를 마치면 2만보 정도 걷는다고 허씨는 말했다. 허씨는 “한 달 꼬박 일해 60만~70만원 정도 번다”고 했다. 이날 허씨는 2호선 을지로4가역에서 강변역, 강변역에서 7호선 하계역, 하계역에서 2호선 을지로4가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기자의 교통카드에는 1350원이 3차례, 총 4050원이 찍혔다. 근조기를 배달하고 받은 1만5000원에서 수수료를 제하고 남은 돈은 1만500원. 고령층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가 사라진다면, 허씨가 번 돈은 6450원으로 줄어든다.

이날 취재기자가 세번째로 만난 이는 지하철 택배원 ‘최고참’인 베테랑 백남기씨(85)였다. 2009년부터 지하철 택배원으로 일했다. 그는 “여태껏 일하면서 쉬는 날은 20일 정도”라며 “체력이 되는 데까지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백씨가 받은 일은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 근조기를 설치하는 것으로, 운임은 1만3000원이었다. 오후 6시. 근조기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어보내는 것으로 백씨의 하루 일과가 끝났다. 백씨가 번 돈은 1만3000원에서 수수료 30%를 제한 9100원. 무임승차로3200원을 아꼈다.

이날 기자가 만난 세 명의 노인은 각각 1만1200원, 1만500원, 9100원을 벌었다. 세 건의 택배 운임 단가를 합치면 4만4000원. 이 중 수수료 30%를 제하면 3만800원이 남았다. 기자가 동행하며 지출한 지하철 요금 총액은 1만1900원. 하루 벌이의 약 40%에 달하는 이만큼이 고령층 무임승차 제도로 떠받치는 임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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