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돈·권력으로 학폭 덮는 나라, 누가 자식 낳고 살겠냐”

2023.02.26 21:00

‘정순신 사태’를 보는 학교폭력 피해자·가족들

정 변호사, 아들 학폭 무마
“정부 부실 검증이 2차 가해”
관련 커뮤니티서 비판 봇물
“드라마 같은 일이 버젓이”

임지영씨(59)는 ‘대구 중학생 사건’으로 알려진 학교폭력 피해자의 어머니다.

2011년 당시 중학생이던 그의 아들 권모군은 동급생에게 물고문과 구타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도 가족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임씨는 최근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사임한 정순신 변호사(57)의 아들 학교폭력 징계와 관련한 대응에 대해 “다른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새로운 가해”라고 말했다. “세상이 변하질 않았구나, 돈 있고 권력 있으면 모든 게 괜찮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이런 나라에 살고 싶을까요. 어떤 사람이 여기서 자식 낳고 살고 싶겠어요.”

지난 24일 국수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취임 직전 본부장직을 사퇴했지만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학교폭력을 직접 겪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학교폭력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저희 아이도 같은 경우” “기사를 읽으니 치가 떨린다” “이게 우리 현실인 것 같다” 등의 글을 쏟아내고 있다.

A씨(48)의 아들 B씨는 6년 전 중학생 때 같은 반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한 후 성인이 된 지금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B씨는 지난해 유서를 남기고 두 번이나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A씨는 “혹시나 아이에게 일이 생길까봐 방문 앞을 지키며 자곤 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도 피해자를 ‘두 번 울린 말’이 여전히 귓가에 생생하다. A씨는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가해자 아이들이 나중에 고위직 올라갔는데 빨간 줄 그어져 있으면 어떡하냐’며 합의를 종용하더라”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A씨는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과 이후 사건 전개를 두고 “영화 같지만 영화가 아닌 일들이 지금도 버젓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정 변호사가 아들의 ‘전학 처분’을 막기 위해 법적 수단을 총동원한 데 대해서도 “자기 자식만 자식인가”라며 “피해 학생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겪으며 스스로를 옭아맨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번 국수본부장 사태가 학교폭력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을 드러내는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조짐을 보이자 그제서야 국수본부장 지원을 철회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임명을 취소했다. 정 변호사를 임명한 것 자체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일종의 ‘2차 가해’가 됐다는 지적이다.

2년 전 고등학생 아들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C씨(48)는 “만약 (정 변호사의) 아들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며 “학교폭력 문제에 좀더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무언가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C씨는 “학교폭력은 끊이지 않고 계속 발생하지만 사람들에게 빨리 잊히고 정치권도 관심이 없다. 그게 너무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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