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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조위 방해’ 박근혜 정부 전 고위인사들 2심도 무죄, 이유는?

2024.04.29 06:00 입력 2024.04.29 06:07 수정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활동 방해’ 사건 항소심에서 박근혜 정부 고위 인사 9명이 지난 23일 모두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사실상 마지막 남은 세월호 참사 관련 형사재판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세월호 유족 측은 “끝까지 국가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지만 법원이 잇따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특조위 활동 방해 사건 역시 책임을 묻기가 어려워졌다.

특조위 활동 방해 사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박근혜 정부 고위 인사는 이병기 전 비서실장, 현정택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현기환 전 정무수석, 안종범 전 경제수석, 정진철 전 인사수석, 김영석 전 해양수산부 장관, 윤학배 전 해수부 차관,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조대환 전 특조위 부위원장 등이다. 이들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무죄 선고 이유는 특조위원장의 독립적인 ‘권리’가 인정되지 않아서다. 1·2심 재판부는 직권남용죄로부터 보호되는 ‘권리’에 해당하려면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판단 및 결정권’이 있어야 하는데 특조위원장은 이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았다.

세월호진상규명법은 특조위원장이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한 위원회 업무를 총괄하고, 업무수행을 위해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이나 직원의 파견근무 및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특조위 운영 예산을 요구할 권리도 있다. 재판부는 이처럼 법에 명시된 특조위원장의 권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형법 제123조는 직권남용을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로 규정했다. 이에 해당하면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심 재판부는 “특조위원장이 보유한 특조위 설립준비에 관한 권한은 추상적이어서 ‘법령상 행사할 수 있는 구체화된 권리’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의 방해로 특조위 활동이 강제 종료되긴 했지만 특조위원장의 권리는 추상적이어서 형법상 직권남용죄 요건인 ‘권리행사 방해’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실질적으로 설립준비행위에 차질이 생긴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직권남용 행위와 그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특조위 활동 시작일(기산일)에 대해서도 1심 판결을 수긍했다. 정부는 특조위 활동 시작일은 2015월 1월1일로 봤지만 특조위는 인적, 물적 기반이 된 직원채용과 예산배정이 이뤄진 8월4일이라고 주장했었다. 활동 시작일이 중요한 이유는 그에 따라 종료시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직원 감축도 종료시점에 따라 달라졌다. 2020년 10월 서울행정법원은 특조위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세월호 특조위 방해 사건 피고인 중 한 명인 윤학배 전 해수부 차관은 지난 16일 대법원에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유죄가 확정됐다. 직무상 독립성이 있는 해수부 공무원들에게 ‘세월호 특조위 설립준비 추진경위 및 대응방안’ 문건을 작성하게 한 혐의가 인정됐다.

4·16연대는 논평에서 “사회적 참사의 귀책이 있는 국가가 ‘독립적’인 조사기구에 정치적으로 개입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골든타임을 허비하게 했다”며 “법원은 그런 중대한 범죄에 면죄부 줬다”고 비판했다.

법원의 판단 여파로 향후 다른 특조위 업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서채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변호사는 “사실상 정부가 특조위원장의 권한 정도는 무시해도 된다는 선례를 남겼다”며 “향후 다른 특조위가 꾸려졌을 때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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