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면] [Lite] 🪑 잠깐 앉았다가 갈까?

점선면

[Lite] 🪑 잠깐 앉았다가 갈까?

6분 2023.09.08

벤치 공공공간 노숙인 배제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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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환대하는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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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9.08. 금요일

혹시 독자님이 평소 다니는 길에는 벤치가 잘 보이나요? 애매한 지점을 톡 건드린 기사를 좋아하는 저의 이번 주 마지막 큐레이션은 벤치에 관한 이야기예요.

제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을 쭉 보냈던 아파트 단지 쪽문 근처에 벤치가 하나 있었어요.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벤치가 놓인 지점에서 어떤 친구는 1동으로, 또 어떤 친구는 9동으로, 12동으로, 이렇게 흩어졌습니다. 그 벤치는 그 동네에서 꽤 중요한 길목에 놓여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 벤치에는 항상 낯익은 또래들이 앉아 있었어요. 학교를 마치고 집에 그냥 들어가기 아쉬우니까요. 언제나 그 벤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어둑어둑해 질쯤에야 각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심심할 때는 그 벤치로 나가 시간을 죽이고 있으면 아는 얼굴이 꼭 하나씩은 나타나곤 했죠.

오늘 소개해 드릴 기사가 그 벤치와 그 자리에서 인연을 맺은 얼굴들을 아주 오랜만에 생각나게 했습니다. 독자님께도 기억 속에 담아뒀거나 요즘 무심코 자주 찾는 벤치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르겠어요. 기사는 약 2분 분량이에요.

☑️ 일본 가나가와현 히라쓰카시는 지난 7월 기차역 JR히라쓰카역 주변에 놓인 벤치의 낮은 칸막이를 모두 없앴다.

☑️ 칸막이 벤치는 1990년대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늘어난 노숙인을 배제할 목적으로 나타나 널리 퍼졌다.

☑️ 칸막이 벤치 제거를 주도한 히라쓰카시의원은 고령화 추세 속에 약자의 처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본다.

벤치 칸막이를 없애다

2023.09.04. 박은하 기자

2020년 도쿄 비엔날레 개최 당시 도쿄도 주오구 교바시 번화가에 놓은 벤치에 칸막이가 설치돼 있다.

일본 가나가와현 히라쓰카시의 기차역인 JR히라쓰카역 서쪽 출입구 앞에는 나무벤치가 있다. 가로 263㎝, 세로 43㎝의 벤치 4개가 가로수를 둘러싸고 있는데, 평상마다 칸막이 역할을 하는 나무 돌기가 설치돼 있다. 노숙인 등이 벤치에 눕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

지난 7월 3일 히라쓰카시는 나무돌기를 없앤 벤치를 새로 설치했다. 벤치는 평평한 상태가 돼 누군가 눕거나 비스듬히 기댈 수 있게 됐다. 도쿄신문은 지방 정부가 나서 벤치 칸막이를 없앤 것은 최초 사례라며 여기에는 에구치 도모코(47) 시의원의 노력이 있었다고 4일 전했다.

에구치 의원은 지난 5월 한 시민으로부터 “벤치가 낡고 앉을 수가 없게 돼 있다”는 연락을 받고 시에 수리를 요구하면서 고치는 김에 칸막이를 없애자고 제안했다. 대학 시절 미술을 전공하고 노숙인을 돕는 활동을 해온 에구치 의원은 지역 언론사 등에서 일하다가 27세이던 2003년 ‘무소속당’으로 시의원에 당선됐다. 현재 5선 의원이다.

그는 “1990년대 버블붕괴 이후 노숙인이 늘면서 칸막이를 설치한 벤치(배제 벤치)가 늘었고 그때부터 악의적이라고 느꼈지만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시에 칸막이 제거 요구를 관철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벤치 칸막이를 비롯해 노숙인 등을 배제하기 위해 설계한 공공 디자인을 ‘적대적 건축’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0년 11월 도쿄 시부야구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64세 노숙인 여성이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적대적 건축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당시 정류장의 벤치에도 칸막이가 있어서 이 여성은 잠을 자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여성을 살해한 46세 남성은 “노숙인에게 거리 청소를 해야 하니 떠나 달라고 했지만 응하지 않아 화가 나서 돌을 넣은 비닐봉투로 때리면 아프니까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적대적 건축이 노숙인을 거리의 불순물로 보고 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힘을 얻었다. 1982~1983년 요코하마시에서도 청소년들이 부랑자를 습격한 일련의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청소년들이 “거리 청소”라며 범행을 정당화했던 사실도 다시 조명됐다.

이가라시 다로 도호쿠대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누구를 위한 배제 아트? 불관용과 자기책임론>에서 1995년 옴 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을 계기로 보안 의식이 높아지면서 적대적 건축이 많아졌다고 진단했다. 돈을 내고 서비스나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가 아니라면 도시에 체류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가 생겼고, 공공공간마저도 선택된 사람만이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됐다는 것이다.

2021년 4월에는 도쿄도 주오구 교바시 빌딩가에 설치된 벤치에 대한 논란이 트위터에서 벌어졌다. 예술가들이 2020년 도쿄 비엔날레와 연동해 사람, 거리, 예술을 연결한다는 취지로 벤치를 설치했는데, 인근 빌딩 관리자가 “노숙인이나 청소년들이 점령할 우려가 있다”며 벤치에 칸막이 설치를 요구한 것이다. 예술가들은 반대했지만 결국 타협책으로 움직이는 칸막이를 설치해야 했다. 이처럼 일본에서 벤치 칸막이는 하나의 상식이 돼 있다.

하지만 에구치 의원은 낙관적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칸막이 제거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 클레임(항의)이 들어오지 않았다”며 “지금까지 노숙인은 방해꾼 취급을 받았지만 사회가 고령화하는 가운데 약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늘어난 것은 아닌가라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칸막이 있는 벤치가 진부하게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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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누구나 환대하는 벤치'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벤치 하나가 공간의 쓰임새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느낀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 서울 광화문광장 재조성 공사가 막 끝났을 때 광장을 구경하러 갔을 때였어요. 광장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다양한 형태의 벤치와 의자를 뒀는데,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는 방식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란히 앉아 이야기 나누는 사람, 아예 누워버린 사람,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사람, 모서리를 이용해 절묘하게 운동하는 사람….

이렇게 앉을만한 자리가 없었다면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이 되게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머무르는 시간이 줄었을 테고, 그럼 "잠깐 앉았다가 갈까?"라고 가볍게 시작했다가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눴던 대화도 없었을 거예요.

벤치는 그 장소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게 하고, 그래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게다가 공짜입니다. 적어도 3000~4000원씩 나가는 커피를 사지 않아도 함께 있는 사람과 친밀감을 키우거나 바로 이 계절, 이 순간이 아니면 다시 보기 어려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게 합니다. 실용적인 면도 빼놓을 수 없죠. 아기를 업고 쩔쩔매는 부모와 얼마 걷지 못하고 지치는 노인에게는 꼭 필요한 쉼터가 됩니다.

기사에서 에구치 의원이 말했듯 고령화 사회에서 벤치가 맡는 역할도 있는 것 같아요. 동네의 골목을 걷다 보면 식탁 의자를 길에 내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명씩 빤히 쳐다보는 노인을 꼭 만나게 되더라고요. 이런 분들은 아는 얼굴이 보이면 얼른 붙잡고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모를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곤 합니다. 이렇게 소통을 갈구하는 노인들에게도 역시 벤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주변에는 과연 이런 역할을 할 벤치가 충분한 걸까요? 벤치가 부족해서 카페가 우후죽순 생겼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니, 칸막이 벤치에 익숙한 일본보다 나을 게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공공간은 10%뿐

요즘 서울역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유행이 거셀 때 거리두기 차원에서 의자를 치웠기 때문이라고 해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이렇게 사라진 의자에서 '모두'를 위한 공공공간보다 '소비자'를 위한 상업공간 비중이 더 높은 개발방식의 문제를 짚어낸 칼럼입니다.

노인을 위한 15분

[대화하기]에서 도시의 벤치가 걷다가 지치기 쉬운 노인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고령화가 점점 빨라지는 시대에는 도시의 전반적 환경을 노인에 알맞게 바꿔야 할 필요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인을 위한 동네'를 고민한 연구 결과와 전문가의 조언을 담은 기사를 소개합니다.

동상, 왜 세우고 허무는 걸까?

육군사관학교가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교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학교 밖으로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국방부는 지난달 말부터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에서 시작했다”며 흉상 철거를 추진했죠.

한편, 지난 7월에는 경북 칠곡에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이승만 전 대통령과 해리 S. 트루먼 미국 전 대통령, 백선엽 장군의 동상이 세워졌어요. 정부는 동시에 이승만기념관 건립도 추진 중입니다.

다음 주 점선면은 홍 장군 동상을 이전해야 한다/아니다, 이 전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었다/아니었다에서 한 발짝 멀어져 왜 동상을 세우고 또 허무는지 질문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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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일 없는 일상에 대한 신뢰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요즘 그 신뢰가 많이 떨어졌거든요. 원래도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긴 했지만, 특히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제대로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큽니다." (익명의 독자님)

📝 "지난 9월6일 점선면Lite <아무 일도 없으면 어떡하지>편에 독자님들께서 보내주신 이야기예요. 점선면팀도 이 기사를 소개하면서 '아무 일도 없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앞으로 구독자님들께 더 많이 보내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닉네임 없이 요즘 불안한 심경을 남겨주신 독자님께도 그런 이야기가 위안이 될 수 있게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