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플랫 PICK

한주간 중요하게 볼 이슈는

노동시간 단축이 왜 여성들에게 중요할까?

정부가 발표한 '69시간 노동시간'을 두고 장시간 노동에 따른 건강권 위협 우려가 여전합니다. 이번 레터에선 장시간 노동문제를 '젠더 관점'에서 더 깊숙히 들여다 봅니다.

먼저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이 교수는 "저출생, 소득불평등, 4차 산업혁명 등 굵직한 시대적 과제들이 중첩된 한국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이를 해결할 아주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합니다. 장시간 노동이 주변부 노동자들에게 더 큰 피해가 갈 것이라는 점을 우려합니다. 저임금 지위에 놓인 '주변부 노동자(비정규직·간접고용·플랫폼 노동자 등)'의 휴식시간 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주변부 노동자의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이 교수는 인터뷰에서 "장시간 노동은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낮추고, 소득불평등, 성불평등을 강화한다"고 지적합니다. 전일제 노동자들이 장시간 일하게 되면, 다른 한쪽에선 단시간 노동, 불안정 일자리가 증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단시간 노동이나 불안정한 노동에 종사하는 대부분이 여성이나 청년들입니다. 이 교수는 "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단시간·불안정 노동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분석합니다. "저출생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최근 칠레 의회는 주 4일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정부 혹은 개별기업의 주도로 주 4일제 실험이 한창입니다. 국내에선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일부 기업이 주 4.5일제 혹은 주 4일제를 도입했는데요. 다만 모두 경영자의 결정에 의해 진행됐습니다. 이와 달리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노사합의'로 주 4일제가 시범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사례입니다. 병원 최초로 운영되는 것이기도 한데, 특히 업무과중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어떤 영향과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젠더 관점에서 장시간 노동문제를 지적한 많은 연구들이 있습니다. 국미애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주 52시간 근무 상한제, 노동시간 단축과 젠더'(2018년) 보고서에서 "노동시간은 성별 관계의 평등 혹은 불평등 문제를 다루는 핵심주제"라고 지적합니다. 한 국가의 노동시간이 얼마나 성평등한지를 가늠하는 데는 전일제 노동시간의 길이, 전일제 노동시간의 성별 격차, 장시간 노동하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 단시간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 주당 평균 노동시간의 성별 격차 등이 고려돼야 한다는 겁니다.

국 연구위원은 성역할 규범이 여전히 강한 우리사회의 젠더체계에서, 장시간 노동체제는 장시간 노동하는 자와 그 가족의 일상적인 재생산을 도맡아주는 '누군가'를 전제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누군가는 대개 '여성'이라고 설명합니다. 성평등을 앞당기기 위해선 "장시간 노동체제와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관심이 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합니다.

그보다 앞서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삶의 균형과 노동시간' 정책연구(2009년)에서 "장시간 노동은 노동시장 내에서 남녀 격차와 성차별을 낳는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노동시간이 일과 생활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 교수가 2019년 대학원신문에 기고한 '젠더 관점에서 본 '노동시간 문제''에서 해외 여성학자들의 관점을 인용한 부분도 공유합니다. 신 교수는 "루베리(J.Rubery)나 페이건(C.Fagan)과 같은 여성학자들은 영국이나 미국처럼 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하면서 돌봄을 여성들에게 맡겨 온 사례를 성차별적 모델로 본다"며 "핀란드나 스웨덴처럼 노동시간을 적극적으로 단축하고 돌봄책임을 공공화함으로써 성별 격차를 줄여온 경우를 가장 성평등한 모델로 평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일·가정 양립'을 중요하게 내세우는 현 정부가 '장시간 노동으로 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는 건 모순입니다. 여성학의 관점에서 비판해 온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2023년에도 인용하고 있다는 점 자체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박송이 기자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입주자분들도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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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젠더이슈

놓치지 말아야 할 뉴스

📌 미국 연방대법원이 하급 법원 판결을 뒤집고 당분간 시장에서 경구용 임신중지약인 미페프리스톤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법적 다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임신중지 반대 단체가 제기한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약이 시중에서 계속 팔릴 수 있도록 한 것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핵심 이슈로 부상한 임신중지권 폐기 판결에 이어 임신중지약을 둘러싼 이번 공방은 내년 미국 대선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대법원, 임신중지약 판매 허용 …법적 다툼은 계속

👉 한국에서 '임신중지권'에 대한 논의는 어디까지 진행됐을까요?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낙태죄를 헌법불합치 결정했습니다. '낙태죄'가 폐지된 지 곧 4년이 되는데, 사실상 모든 것이 ‘공백’ 상태입니다. 당장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여성들은 "안전성이 검증된 관련 약물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에서 여성들의 건강권은 보장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플랫에서 지난 3월 공유한 '임시중지라는 건강권' 기획 2편도 함께 첨부합니다.

✔①낙태죄 폐지됐지만…의료 서비스로 자리잡지 못한 '임시중지권'

✔②낙태죄 헌법불합치 '입법 공백' 속 방치된 '임시중지 건강권'

📌 미성년자인 A씨가 온라인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성적인 영상 촬영을 강요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도 이어졌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절반가량이 신원을 알 수 없는 가해자에게 범죄를 당했다는 여성가족부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10~20대였으며, '유포' 관련 피해가 가장 심각했습니다.

✔'익명‘ 뒤에 숨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대부분은 10~20대

문화가 있는 플랫

이번주에 볼 영화

🧤 임신중지를 위해 목숨을 건 시대를 바탕으로 한 영화 <콜 제인>을 추천합니다. <캐롤> 각본가인 필리스 나지 감독이 연출했고, 세계여성의 날인 지난 3월8일에 개봉했습니다.

영화는 1968년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임신중지가 불법이던 1960년대 결성돼 1만2000여명의 여성들에게 안전한 임신중절 수술을 제공한 단체 ‘제인스’의 실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나지 감독은 “누구도 우리가 만든 영화 속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권리가 더 이상 여성에게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불법임에도 임신중지 수술을 결심하고, 진행한 '이유'에 집중할 필요가 있는 영화입니다. 그 이유를 찾다보면, '여성의 몸을 결정할 권리가 왜 여성에게 없는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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