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의 악순환, 영양에서 끊자

2013.03.12 21:06
하승수 | 변호사

경북 영양군으로 가는 길은 멀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 반이 걸린다. 그나마 하루에 5번밖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양군을 ‘오지’라고 부른다. 서울의 1.4배 면적에 1만8000여명의 인구가 사는 곳이다. 그리고 영양읍내에서 다시 차를 타고 20분을 더 가면 수비면이 나온다. 그곳에 장파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산골짜기를 따라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그런데 이 조용한 골짜기의 평화가 깨졌다. 장파천을 막아 높이 76미터, 길이 480미터의 거대한 댐을 짓겠다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영양댐’ 사업이다.

아마 누군가가 반대하지 않았다면 영양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을지도 모른다. 작은 지역에서는 ‘제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영양군수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거리가 필요한 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들은 아마 ‘이 시골에서 감히 누가 우리 일에 반대하랴’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지역과 중앙의 토건세력이 손을 잡았는데, 시골에 댐 하나 짓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경향논단]토건의 악순환, 영양에서 끊자

그런데 주민들이 반대운동에 나섰다. 수몰지역의 주민들, 인근 마을의 주민들, 귀농을 한 사람들이 댐의 문제점에 대해 조사하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댐이 들어선 다른 지역에 가보고, ‘댐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허구라는 것을 확인했다. 댐이 만들어지면 농사에도 막대한 피해가 생기고 마을과 생태환경이 파괴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호주머니를 털어 버스를 대절해 서울까지 다니면서 부당함을 호소했다. 사실 보상을 바란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농사를 계속 짓는 것이고, 지금 살고 있는 마을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주민들이 확인한 영양댐의 문제는 수없이 많다. 한마디로 영양댐은 ‘막장’ 토건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필요성과 타당성 자체가 없는 사업이다. 오죽했으면 환경부가 댐건설계획에서 영양댐은 제외하라고 얘기했을까? 사업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는 영양댐을 만들어 180킬로미터나 떨어진 경북 경산시로 산업용수를 공급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경산시에 필요한 물은 가까운 낙동강이나 대구에서 공급받으면 된다. 국토해양부는 영양군에 물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인구가 줄고 있는 영양군에 물이 부족하다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 설사 물이 필요하더라도 댐을 짓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환경부의 얘기와 주민들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영양댐은 ‘댐을 위한 댐’에 불과하다.

이 사업이 추진된 과정도 수상하다. 영양댐은 영양군수가 건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영양군수는 지역건설업체 대표 출신이다. 그리고 영양군수는 자신이 대표로 있던 건설업체에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준 것이 감사원에 적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토건사업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3139억원이면 영양주민 1인당 1700만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다. 이런 돈을 불필요한 토건사업에 쏟아붓는 것은 4대강 사업 못지 않은 혈세 낭비이다.

그런데 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는 24억원을 주고 용역업체를 고용해 측량과 보상을 위한 조사를 밀어붙이고 있다. 용역업체는 시골의 힘없는 주민 10명을 업무방해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청구소송까지 제기했다. 노동 사안에서 악용되던 고소·고발과 손배소송이 시골농민들에게도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법 없이도 잘살아온 농민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게 정부가 할 일인가?

이제 봄이다. 봄이 되면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야 한다. 제발 영양군 수비면의 농민들이 농사지을 수 있게 하자. 쓸데없는 공사는 그만하자. 박근혜 정부도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철저하게 검증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4대강 사업과 본질이 동일한 영양댐부터 백지화해야 한다. 토건의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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