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노래

2013.05.01 21:14 입력 2013.05.01 22:45 수정

다시 5월이다. 5월, ‘노래’가 있다. 민주와 자유, 평등의 세상을 위해 ‘앞서서 나가’ 독재권력의 무도한 폭력에 스러져간 5월의 영령들, 버젓이 살아있음이 부끄럽고 치욕이던 시절 노래가 만들어졌다. 독재의 유린이 계속되던 1982년 2월 광주 망월동묘지에서 영혼결혼식이 열렸다. 신랑은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진압에 저항하다 전남도청에서 사망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신부는 신랑의 들불야학 동지로 1979년 겨울 노동현장에서 숨진 박기순. ‘부끄럽고 송구한’ 산자들은 두 사람의 영혼을 기리는 노래극을 만들었다. 광주의 한 단칸방에서 카세트 녹음기로 만들어진 노래 테이프는 수없이 복제돼 방방곡곡으로 전해졌다. 광주 대학살의 패배감과 자괴감, 하지만 새날에의 희망을 버릴 수 없던 산자들은 숨죽이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에서 힘을 얻고, 서로 어깨를 결었다. 노래는 노동현장에서, 거리에서, 대학가에서, 새날을 향한 싸움의 현장에서 ‘깨어나서 외치는 함성’으로 되살아났다. 야만의 시절,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지 않았다면 누구나 ‘노래’를 불러봤을 터이다.

노래는 해마다 5월이 오면 빛고을을 물들였다. ‘그해’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해간 영령을 기억하고, 숭고한 뜻을 이어가겠다는 맹세의 노래였다. 80년대 민주화 장정의 초석을 이룬 5·18민주항쟁의 역사와 정신이 오롯이 깃들어 있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정동에서]5월의 노래

앞서서 나간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씨앗이 되어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뤄지면서 5·18은 명예를 찾았다. 사태는 민주화운동이 되고, 폭도는 민주화유공자가 되고, 망월동 공동묘지는 국립 5·18묘지가 되고, 5·18은 국가기념일이 됐다. 노래도 복권되었다. 2004년 국립 5·18묘지에서 열린 24주년 기념식에서는 공식 추모곡으로 불렸다. 군악대 연주 속에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기념식에는 대통령(노무현)과 제1야당 대표(박근혜)도 자리했다.

노래는 그러나 2010년 30주년 기념식에서 퇴출됐다. 이명박 정부는 ‘대정부 투쟁을 고취시키는 것은 헌법질서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공공기관에서 민중가요 의례를 금지했다. 5·18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에서 노래를 배제키 위한 조치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경기민요 방아타령을 연주하려 한 천박한 인식의 바탕은 무도한 권력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을 죽인 역사를 숨기기 위해 노래까지 대체하려는 시도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가보훈처가 나서 5·18 공식 추모곡을 제정키 위해 예산을 편성하고 공모절차에 들어간다고 한다. 3·1절, 광복절 노래가 있듯이 5·18 공식 노래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댄다. 박제된 체육관 기념노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시민들에 의해 5·18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의미를 기리는 노래로 불린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있음에도 굳이 대체 추모곡을 만들겠다는 저의가 불온하다. 5·18 유족들도, 관련 단체와 광주 시민들도 반대하는 공식 추모곡 만들기를 왜 하려는가. 결국에 공식 행사에서 노래가 불리는 걸 막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응과 다를 게 없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의미를 훼손하고 부정하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면, 애먼 공식 추모곡 만들기를 중단해야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추모곡으로 지정하면 된다. 5·18민주화운동 때 산화해간 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고, 숱한 희생과 헌신이 아로새겨진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야말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의 공식 추모곡으로 충분히 값있다.

그리고 광주 시민과 5·18 관련 단체 등이 이번 5·18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대통합의 차원에서도 절실하고, “호남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약속의 한 실천으로도 요청되고 있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보수정당의 지도자로서는 누구보다 많이 5·18 기념식에 참석했고, 5·18묘지를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민주화를 위해 산화하신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로 발표한 ‘5·18 성명’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이 특정 지역이나 집단, 특정 계층을 넘어 한반도 전체 민주발전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것들이 집권을 위한 포장과 선전이 아니었다면, 이제 대통령으로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그 가치와 정신을 기리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숨쉴 수 있게 된 세상에 살고 있다. 그 세상을 위해 독재에 분연히 맞서 앞서서 나간 민주열사들. 다시 5월, 함께하지 못했던 부끄러움과 고마움으로 노래를 부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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