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나이트에서는요

2014.08.03 20:49 입력 2014.08.18 11:48 수정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 우리 동네 나이트에서는요

우리 동네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나이트클럽이 하나 있는데요. 뭐 서울처럼 물 좋은 나이트는 아니구요. 그냥 동네 아저씨들과 아줌씨들이 신나게 몸을 흔들다가 눈 맞으면 껴안고 돌다가, 뭐 그러다가 스리슬쩍 자리를 뜨기도 하는 곳인데요…

며칠 전 후배 한 놈이 나이를 건사 못하고 이곳에 들렀다가 한 아줌씨한테 제대로 걸렸는데요. 그 아줌씨는 모처럼 총각 만났다며 구두 뒷굽이 나갈 정도로 신나게 놀았는데요. 문 닫을 때가 되자 잘 놀았다며 후배놈에게 지폐를 몇 장 찔러주고는 부러진 뒷굽을 들고 휘이휘이 사라지더라나요…

며칠 뒤 후배놈이 중앙시장 앞을 지나가는데 웬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그 아줌씨가 어물전에서 고기를 팔고 있더래요. 양손에 싱싱한 산 문어를 움켜쥐고는 시장통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더라나요…

후배놈은 그렇지 않아도 그 아줌씨가 찔러준 지폐에서 비린내가 났었다며 쪽팔려 죽겠다고 말하는데… 이놈의 죽은 문어 대가리 같은 놈을 어물전에 내다 팔 수도 없고…

- 이홍섭(1965~)

[경향시선 - 돈 詩]우리 동네 나이트에서는요

△ “한번뿐인 밤입니다. 오늘밤 외로운가요? ○○나이트로 달려오세요. 하버드대 부킹대학을 수석 졸업한 저 장국영이 깔끔한 마무리로 보답하겠습니다.” 자동차 와이퍼에 붙어 있던 전단지의 한 구절이다. 이홍섭 시인은 강릉에 산다. 카리스마나이트, 경포대나이트, 호박나이트… 강릉에서 손꼽히는 나이트클럽들이다. 부킹책임형 나이트도 있고, 소주를 파는 불황탈출형 나이트도 있다. ‘물 관리가 잘된’ 럭셔리나이트도 있고, ‘동네 아저씨들과 아줌씨들’이 몸 좀 풀러가는 동네나이트도 있다. 여름 한철에는 바닷가에 조립되는 임시가설형 나이트도 있다.

모르긴 해도 “싱싱한 산 문어를 움켜쥐고는 시장통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아줌씨의 힘은 간밤 “구두 뒷굽이 나갈 정도로 신나게 놀았”던 후끈함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 힘이 지폐를 찔러주는 것일 게다. 한데, 아줌씨가 대낮에 움켜쥔 ‘싱싱한 산 문어’와 후배놈이 자책하는 ‘죽은 문어 대가리 같은 놈’은 어쩐지 외설스러운 게 서로를 닮았다. 낙지머리도 보양에 좋다던데, 그보다 더 크고 귀한 ‘문어 대가리’는 오죽이나 몸에 좋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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