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결단’에 매달린 ‘박영선 운명’

2014.08.14 21:10

전혀 ‘민주당스럽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체질상 평소라면 ‘박영선 사퇴’ 연판장을 돌리고 남았을 텐데 조용하다. 새정치연합 의원총회가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밀어붙인 세월호특별법을 거부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면서도 “박영선 중심으로 단결”을 결의했다. 박영선이 “내 할 일은 끝났다”고 고백하지 않더라도, 이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결단’을 애걸하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 세월호특별법은 유가족도, 야당도 아니고 새누리당의 처분에 달렸다. 새누리당은 특별검사 추천권과 국정조사 증인 부문에서 ‘박영선 구하기’ 선물을 고른다. 세월호 정국에서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가마솥에 든 고기 처지쯤 되었을 때 그 선물이 ‘김무성 결단’으로 포장돼 개봉될 터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합의를 깬 적장을 비난하기는커녕 “박영선 리더십이 회복돼야 한다”고 성원한다. 여하튼 진상조사위의 조사권 문제는 풀리지 않을 ‘세월호특별법’의 총대를 멜 야당의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협상 결과에 상관없이 박영선이 ‘짝퉁 특별법’에 도장 찍는 순간 세월호 국면에서 탈출하려는 새누리당을 구조하는 해경이 되었다. ‘박영선 비대위 체제’는 ‘김무성 결단’이 나와야 살 수 있게 됐다. 적대적 공생이다.

[양권모칼럼]‘김무성 결단’에 매달린 ‘박영선 운명’

7·30 재·보선 참패의 위기를 모면하려 출범시킨 ‘박영선 비대위 체제’가 초장에 흔들리면 ‘2등 기득권’이 밑동째 위협받는다. 바닥난 신뢰조차 떠나게 만든 세월호특별법 담합에도 불구, 계파의 본성마저 감추고 “단결”을 외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제1야당의 울타리만 지키고 있으면 정권은 못 잡아도 금배지는 계속 달 수 있다. 20대 총선은 박근혜 정부 말기에 치러져 야당에 유리하다. 재·보선 참패의 결정적 요인으로 꼽히는 공천 파동도 실은 차기 당권 쟁탈과 총선 공천권 때문이다.

선거 패인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전이 엉뚱하다. 박영선의 비대위원장 취임 일성은 ‘투쟁 정당’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한데 새정치연합은 투쟁다운 투쟁을 한 적이 없다. 정부·여당의 실정을 견제하는 데서, 가난한 사람과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입법에서 대안도 투쟁도 보여주지 못했다. 정부의 총체적 무능이 빚은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극명히 드러났다. 김한길·안철수 대표는 세월호를 피해 다녔다. 은수미 의원 등 4명의 의원이 국회에서 농성을 벌인 것이 유일한 세월호 투쟁이다. 세월호 참사에 분노하는 국민, 슬픔에 빠진 유가족과 손잡지도 못하면서 구호로만 ‘세월호 심판론’을 외쳐댔으니 거꾸로 심판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집권당이 아니에요. 우리는 과반 의석을 갖고 있지 않아요.” 세월호특별법 협상에서 굴복한 박영선의 수비용어다. 새정치연합은 사상 최대인 130석을 가진 야당이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집권세력의 어떤 정책이건 비토할 권한도 있다. 야당에 의석수가 실력 없음과 투쟁력 빈약의 변호가 될 수 없다.

김대중 평민당이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공룡 여당을 상대로 지방자치제를 관철시킬 때 의석은 71석에 불과하다. 박근혜 한나라당이 57일간 장외투쟁을 벌여 과반여당의 사학법 개정을 좌초시킬 때 의석은 121석이다. 박근혜 한나라당은 사학법 재개정에 모든 민생법안을 연계시키고 2005년 연말 국회를 보이콧했다. 엄동설한에 기껏 수백명이 모이는 장외집회를 계속하면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끝내 사학법 재개정을 얻어냈다. 국회선진화법도 없던 시절이다. 의석으로만 정치를 한다면 야당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야당의 정치는 국민의 지지를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사학법과는 비교되지 않는 국민적 일체감이 형성된 세월호특별법이다. 박영선은 “견고한 새누리당 벽”을 한번 제대로 들이받지도 않은 채 백기를 들었다. ‘박근혜 한나라당의 사학법’과 ‘박영선 새정치연합의 세월호특별법’, 어디가 강한 야당인지는 자명하다. 최근 두 달 트위터 등 빅데이터 66만여건을 분석한 결과 국민들이 새정치연합과 관련해 떠올리는 단어는 ‘무기력한’ ‘희망없다’ ‘분노’였다고 한다.

프로야구에서 ‘보살’로 불리는 팬들이 있다. 5년 동안 400번 이상 패하고 올 시즌도 꼴찌 붙박이인 한화이글스팬이다. 수없이 패하고 처참하게 지는 한화이글스를 끝까지 믿어주며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이 늘고 있다. “매경기 우리 선수들이 정말 이기려고 열심히 하거든요.” 새정치연합은 선거에서 패배했더라도 다시 이기려는 의지, 열심히 싸우려는 열정이라도 보여야 완전히 떠난 지지자들을 돌릴 수 있다.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낙선소감에서 밝힌 대로, 야권 지지자들은 이기는 야당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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