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최고 존엄’ 지키기인가

2014.09.11 21:01 입력 2014.09.11 21:08 수정

돌이켜보면 무척 이상하다.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은 오후 5시10분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는다. 그 ‘7시간’의 공백 끝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는 세월호 구조 실패가 확연해지고 300여명의 사망·실종이 확인된 시점이다.

[양권모칼럼]‘박근혜 최고 존엄’ 지키기인가

박 대통령=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지금은.

안전행정부 2차관=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아, 갇혀 있어요.

박 대통령은 300여명의 실종 승객이 침몰하는 배에 ‘갇혀 있는’ 핵심마저 몰랐던 것일까. 참사 당일 청와대 ‘경내’에서 국가안보실과 비서실로부터 21차례에 걸쳐 30분 간격으로 서면과 유선 보고를 받았다는 대통령이다. 기본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었다면,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청와대의 상황 진단이 허술해 엉터리 보고가 이뤄졌거나, 한 차례 대면보고도 받지 않은 박 대통령의 그 ‘사라진 7시간’ 문제 때문일 터이다. 세월호가 침몰해 국민 300여명이 수장될 절체절명의 순간에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대처가 어떠했는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질문에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의 답은 분명 의도적으로 언저리를 맴돈다. “대통령은 경내에 계셨고, 서면과 유선 보고를 30분 단위로 받았다.” 질문의 본질인 박 대통령이 받았다는 서면·유선 보고의 내용은 무엇이고, 그에 따라 어떠한 판단을 내리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박 대통령의 7시간이 ‘미스터리’로 부각되고, 엉뚱한 풍문으로 덫칠돼 외신에까지 오르내리게 한 책임은 그래서 청와대에 있다. 문제의 ‘산케이신문 보도’를 두고 일본 외상에게 항의하는 외교적 무리를 마다하지 않을 만큼 예민한 청와대다. 박 대통령이 그 7시간 동안에 무엇을 했는지 밝히면 의혹과 논란은 깨끗이 사라진다. 유신시절 ‘국가원수모독죄’인 양 산케이신문 기사를 검찰 수사에 올려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지 않아도 될, ‘뻔한 출구’를 한사코 외면하고 있다. 그러니 별별 억측과 악의적 삼류소설이 꼬리를 무는 것이다.

“국가안보”라는 건 애초 말 안되는 것이고, 대체 이러한 지경에서도 7시간의 행적과 업무를 명쾌하게 밝히지 못하는 사정이 뭔가.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진행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박 대통령의 7시간’을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어 놓은 것은 결국 청와대다. 여당인 새누리당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김무성 대표가 추석 연휴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서 이랬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사고 당일 박 대통령이 분 단위로 이렇게 저렇게 움직였다고 밝혔으면 됐을 텐데 그러지 않으니 문제가 커진 것이다. 최근 십수년간 나라에 이런 큰 쇼크가 있었나. 대통령 비서실장이 열 번이라도 국회에 나와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했다.”

종국에 세월호특별법의 진상규명 작업은 사고 당일 정부의 대응 부실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밖의 것들은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규명될 수 있고, 이미 거반 드러났다. 여하튼 정부 대응 부실 조사의 종착역은 실질적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그리고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의 7시간을 겨냥한 특별법”이 아니라, 진실의 본말을 맞추기 위해선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사고 당일 대처‘도’ 밝혀져야 한다.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업무를 “국가안보”라며 한사코 감추고 있는 청와대로선 그 조사의 칼날은 생각하기도 싫은 재앙일 게다. 청와대와 여당이 공세적 대응으로 전환해 막무가내 ‘세월호 탈출’을 꾀하는 것은 하나의 목적 때문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차단이다. 새누리당이 세월호 유족들과의 면담에서 “만일 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에 주면 청와대를 가만 두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 것이 진짜 속내이다. 대통령 조사, ‘사라진 7시간’이 파헤쳐지는 것을 막는 것이 절대다. 그걸 위해서라면 정국이 결딴나든, 목매는 ‘민생법안’이 표류하든, 세월호 유족들이 야만적 폭력에 노정되든 그들에게는 상관없는 것이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깨고 전쟁불사까지 외치며 가장 격렬히 응하는 것이 ‘최고 존엄 모독’이다. 지난해 개성공단을 중단할 때도, 이산가족 상봉을 무산시킬 때도 남측 언론의 ‘김정은 보도’가 이유였다. 오로지 ‘박근혜 최고 존엄’만 지킬 수 있다면 나라가 어찌되건 무엇이든 한다, 어딘가 닮지 않았는가.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