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어부바’는 누구를 향해 있나

2014.08.24 20:43 입력 2014.08.24 20:47 수정
정지은 | 문화평론가

산책 나온 가족과 마주쳤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던 엄마가 주저앉아 등을 보이고,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딸아이가 달려가 엄마의 등에 답삭 업힌다. ‘어부바’ 하기엔 아이가 너무 커버린 것일까, 엄마가 쉬이 일어나지 못하고 쩔쩔맨다. 아빠가 아내를 거들어 일으켜 세우자, 딸은 엄마의 목을 두 팔로 꼭 감싼 채 신나서 허공에서라도 겅중거릴 태세다. 세 가족의 웃음이 울려퍼지는 거리를 걷는데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별별시선]새누리당 ‘어부바’는 누구를 향해 있나

사실 요새는 포대기로 어린아이를 업은 사람은 물론이고 포대기조차도 보기 어렵다. 튼튼하고 편리한 용품이 많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릴 적에만 해도 아이를 업어서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포대기는 꽤 친숙한 물건이었다. 나 역시 업혀 자란 것은 물론이고, 크고 난 후에는 포대기를 가지고 놀았다. 인형을 포대기로 꽁꽁 싸서 앞으로 안았다가 뒤로 업었다가 하면서 돌아다니고, 힘들면 풀어 눕혀서 자장자장 재우는 놀이를 꽤 좋아했었다. “어부바” 하면 아장아장 걸어와 등에 업히던 막내동생과 업힐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도 틈만 나면 업어달라고 조르던 둘째 동생 덕에 꽤 오랫동안 ‘어부바’를 하면서 더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업고 업히는 건 인간끼리의 가장 밀착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내 등을 내밀어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이 행위야말로 ‘너를 믿는다’는 최고의 사인이 아닐까? 고양이도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기기 전에는 절대 배를 보이거나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업고 업히는 관계는 친밀하거나 상대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나이가 들고 나면 더욱 그렇다. 성인들끼리 업고 업히는 경우는 많지도 않고, 그럴 수 있는 관계는 술 먹고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드물다.

그런데 얼마 전 다 큰 어른들끼리 업고 업히는 진귀한 광경이 방송을 탔다. 주인공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이정현 의원. 7·30 재·보선이 끝나고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 자리에서였다. 김 대표는 “약속을 했으니 해야지”라며 선거에서 이긴 이 의원에게 업히라고 했고, 이 의원은 사양하지 않고 덥석 업혔다. 김 대표의 등에 업혀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드는 이 의원의 모습은 꽤 포토제닉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선거 기간에 김 대표는 유세를 다니며 3명의 후보를 업어주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3명 모두 당선되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김 대표가 “당선되면 업어주겠다”는 약속을 지켜 의원들과의 친밀도를 높였으며, “국민도 업어드리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어부바’ 스킨십이라고 해석했다. 새누리당 홈페이지에는 둘이 ‘어부바’ 하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 메인으로 걸려 있는 것은 물론, ‘민생에 올인, 이제 국민을 업어드리는 당이 되겠습니다’라는 문구까지 적혀 있다. 홈페이지를 보는 순간 “으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떠올릴 때마다 슬그머니 웃음을 짓게 만들었던 내 유년 시절의 ‘어부바’까지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재·보선에서 승리한 집권 여당과 청와대는 세월호를 잊어버리고 싶은 모양이다. 홈페이지에서조차 세월호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새누리당은 당신들끼리 업어주고 나서 “국민을 업어드린 것”이란 소리를 늘어놓는 대신, ‘국민을 업어드리겠다’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사실 업어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새누리당이 업을 사람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0일 넘게 단식 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다. 자발적으로 단식에 동참하고 있는 2만명 넘는 국민들과 청와대 앞 거리에서 사흘째 밤을 지새우는 세월호 참사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고로 언니 유민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상실감에 빠져있을 유나양이 아빠의 등에 마음껏 기댈 수 있고, 아빠는 그런 유나양을 힘껏 업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을 때 비로소 새누리당은 ‘국민을 업어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당신들에게 업힐 마음이 없으니 당신들만의 ‘어부바’ 놀이는 그만하시라. ‘어부바’는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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