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없는 꿈을 위하여

2014.09.28 21:06
정지은 | 문화평론가

장률 감독의 영화 <풍경>은 특이한 다큐다. 이 영화는 도축장에서 소규모 공장까지 10명 남짓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을 보여준 후 그들에게 ‘한국에서 꾼 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을 묻는다. 축산시장에서 일하는 탓에 꿈에서도 돼지 내장을 발라내고 있어 괴롭다는 중국인처럼 힘든 현실을 재생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그리운 고향에서 보고 싶은 가족을 만나 행복해하는 꿈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기면 꿈에서도 그 상황이 고스란히 재연되는 나로서는 부러운 대목이었다.

[별별시선]이제는 없는 꿈을 위하여

난데없이 월요일 아침부터 꿈 얘기를 하는 건 신장개업 가게의 축하 화분에 매달린 “돈 세다 잠들게 하소서” 리본을 본 후유증(?) 때문이다. 흔한 문구인 “대박 나세요”와 달리 간절함이 느껴졌고, 요새 아이들의 꿈이 ‘정규직’이라던 설문조사 결과가 겹쳐지면서 나도 모르게 쓸쓸해졌기 때문이다. 2000원짜리 추러스 한 개 사면서 카드를 긁은 터라 미안하기도 했고, 대체 추러스를 몇 개나 팔아야 ‘돈 세다 잠들 수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꿈에 대해 물어보면, 그 꿈이 ‘어젯밤에 꾼 꿈’이든 ‘장래에 되고 싶은 꿈’이든 필시 돈과 관련되어 있는 대답이 1위를 차지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돈이 돈을 버는 부의 집중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한국에서 ‘꿈’은 사치스러운 이야기다. 각자 능력껏 살아남아야 하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자기보다 잘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한국에 산다는 것은 경쟁한다는 말과 같고, 한국인들이 가장 자주 쓰는 표현은 파이팅(fighting)”이라는 다니엘 튜더의 지적을 상기할 필요도 없다. 이제 경쟁은 ‘누가 더 불행한지’를 놓고도 벌어지고 있으니까. 일명 ‘불행 배틀(battle)’이다. “내가 너보다 더 불행”하니까 이번에는 내가 목소리를 높일 차례라는 거다.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는 말처럼 모두가 화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나 할까. ‘기회만 생긴다면 마음껏 화를 내주겠다’고 벼르는 느낌 말이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가 전반의 시스템 자체가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번 주까지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만 봐도 그렇다.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아시안 운동회’라는 비아냥이 들린다. 수탈의 목적으로 생긴 철도와 우체국을 개회식에서 버젓이 자랑한 무지도 부끄러운데 성화가 꺼지고, 경기 중에 정전이 되고, 상한 도시락이 배달되는 등의 미숙한 운영으로 사건·사고가 속출한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숫자상 매진’이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숫자상으로는 분명 티켓이 모두 팔려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데, 정작 경기장을 가보면 좌석이 텅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아시안게임에서 볼 만한 건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시안게임 드립봉사단’ 계정뿐이라는 소리가 나올까.

공공 시스템이 사라지다 보니 사회에 대한 믿음은커녕 정부의 공식 발표조차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담뱃값은 인상되지만 그래도 증세는 아니다”라니 그 말을 믿을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단, 믿지 않을 수는 있어도 비판은 금물이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 검찰이 포털사이트 등 온라인에 올라오는 글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메신저나 e메일 계정을 해외 회사의 것으로 갈아타는 사이버 망명 정도다.

그뿐인가, 자식을 잃은 부모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는 것도 모자라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불태우는 보수(?)단체가 활약 중이고, 그 회원들을 후원한 인사를 기획위원으로 데려온 집권당도 있다. 도처에서 비상식적인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비판조차 눈치를 봐야 하고, 비판해봤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무기력만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꿈에 대해 이야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이고~, 의미 없다.” <개그콘서트>에서나 해답을 찾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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