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른들의 측은지심

2014.09.21 20:43 입력 2014.09.21 21:13 수정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결혼-돌잔치-장례식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을 하루에 모두 참여하고, 아침에 일어나 칼럼을 쓴다. 결혼은 천주교 예식으로, 돌잔치를 기독교 예배로 보고, 장례식은 불교의식으로 치러졌다. 바쁜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나서, 차이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는 걸 떠올렸다. 결혼하고, 첫돌을 맞이하고, 세상을 떠나는 모든 삶의 궤적 안에서 크게 다를 것 없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와중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측은지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별별시선]그 어른들의 측은지심

측은지심이란, 맹자가 주장한 인간의 네 가지 본성 중 하나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이라 풀이된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의 주낙현 신부는 지난 8월3일 성찬례에서 측은지심이 ‘종교적 영성의 수련이나 윤리적, 도덕적 훈련이나 사회의 불평등을 분석한 자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슬픔’에서 온다고 강론했다(주낙현 신부 블로그에서 인용). 그러니까 이런 거다. 많은 어른들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측은지심’을 느끼는 건, 그 어른들의 슬픔 때문이다. 그 어른들은 해방 이후 혼란과 한국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체험했다. 한 마을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 걸 목격했다. 오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아버지 없이 홀로 동생들을 건사한 분도 있고, 천애 고아로 혼자 살아남은 분도 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하기도 했다. 아는 분의 가게에서 일하며 겨우 밥을 먹기도 했고, 초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공단으로 떠나기도 했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노동을 했으며, 코피를 쏟으면서 야간작업을 했다. 때론 졸다 미싱바늘에 손가락이 찔리기도 했고, 프레스에 손목이 나가기도 했다. 월급 받아 집으로 보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월남전에 나가고, 뭔지도 모르고 고엽제를 뒤집어썼다. 가난,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절박한 공포는 그 어른들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은 깊은 상처가 되었다.

어느날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은 비극의 주인공이 정치 무대에 나섰다. 그 어른들은 그녀에게서 자신의 상처를 봤다. 내가 죽도록 힘들게 고통받았던 그 시절, 그녀는 흉탄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다. 자신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슬픔의 크기만큼 그녀에게 측은지심을 느꼈다. 같은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 어른들은 자신의 마음 깊이 베인 과거의 상처를 그녀가 대변해 준다 생각했다. 신인 정치인 박근혜는 보기 드물게 그 어른들의 아이돌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그 어른들의 열광적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 요새 것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시절의 기억, 보상 받지 못한 청춘에 대한 괴로움을 모조리 박근혜 대통령에게 투영한 어른들은 뿌듯해 했다. 측은지심의 메커니즘이 기가막히게 돌아간 결과다.

그런데 진짜 측은지심이란, 한 사람에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소개한 주낙현 신부의 강론을 인용한다. “자신의 깊은 슬픔을 자기 안에 쌓지 않고 밖을 향해 열 때, 우리의 눈물이 볼록렌즈가 되어서 세상의 다른 아픔과 상처와 슬픔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진짜 측은지심은 세상의 ‘다른 아픔과 상처와 슬픔’을 바라보고, 보듬어야 한다.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향하는 슬픔은 진짜 측은지심이 아니다. 진짜 측은지심이란, 내 슬픔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바라보고 공감하며 결국에는 내 슬픔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다. 그 어른들의 측은지심은 내 슬픔에만 집중한다. 그럴수록 아픔과 상처와 슬픔은 극복될 수 없다.

그 어른들이 겪었던 고통과 상처를 존중한다. 그 어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도 없다. 하지만 그 어른들이 아픔과 상처와 슬픔으로 자기 자신만을 바라본다면, 또 다른 아픔과 상처를 만들 것이다. 내 슬픔으로 타인의 상처와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기보다는, 상처와 아픔과 슬픔을 보기 싫어하는 건 측은지심이 아니다. 측은지심을 잃어버린 그 어른들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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