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2014.10.19 20:45 입력 2014.10.19 21:11 수정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 습관

환하게 경련이 일어나는 왼쪽 끝에서
손님은 무릎을 털고 일어나고
햇살은 당분간의 질문을 감추며 두리번, 뺨에 와 엉킨다
나는 큰 눈물을 기다리고 있고
손님은 더 큰 눈물을 참고 있다

거리는 더 이상 손님일 수 없는 구름
누구 때문에 단풍은 수차례 붉고
슬그머니 숟가락을 쥐는지
국밥에 용해되지 않는 후추가 목구멍을 턱턱 친다

보일러가 돌지 않는 방에
전화라도 나는 한 통 넣고 싶었다

주인은 다시 친절해지고
나는 안주머니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 박성준(1986~ ) 부분

[경향시선 - 돈 詩]습관

△ 시인은 “손님 뺨을 때리는/ 주인”을 보았나보다. 돈 없이 시켜 먹은 국밥의 대가였을까? 뺨 맞는 걸 지켜보는 ‘나’의 몫이란 단지 “슬그머니 숟가락을 쥐는지” “국밥에 용해되지 않는 후추”를 삼키는 일뿐. 큰 눈물을 삼키고 있을 손님의 마음이라든가, 단풍 깊은 계절인데도 보일러가 돌지 않았을 손님의 방이라든가, 잠시 텅 빈 지갑을 만지작거렸을 손님의 손 등을 가늠해보면서 말이다.

주인에게 봉사하는 노예의 생존방식이 ‘노동’이라고 일갈했던 이는 헤겔이었다. 오늘날에는 ‘노동’ 대신 ‘돈’이 되었다. 손님 지갑에 돈이 있는 한 주인은 을이지만, 돈이 없었을 때 주인은 갑이다. 자기 몫의 밥값을 지닌 사람들에게 이 사회는 을이겠지만, 자기 몫의 밥값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는 갑이다. 돈이 없거나 적은 자들은 주인이 될 수 없고 갑이 될 수 없다. 어디서든 “안주머니를 만지작거리는” ‘습관’이 탄생하는 지점이다.

돈으로 살길을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돈 있는 사람만 살 수 있게 된다. 1%의 사람들이 전체 소득의 12%를 차지하고 10%의 사람들이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회에서는 여차하면 따귀가 내 ‘뺨에 와 엉키’기 십상이다. 단풍을 보면 따귀 맞은 붉은 뺨이 떠오르기 십상이다. 그동안 ‘돈 詩’에 보내주신 응원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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