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리터’의 시대

2014.12.01 21:07 입력 2014.12.01 21:18 수정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이 4권 ‘교토의 명소’편이 출간되면서 완간되었습니다. 4권의 띠지에는 “NFC 기능을 켜고 스마트폰을 올려보세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NFC란 교통카드, 휴대폰 결제 등에 널리 쓰이는 근거리 무선통신을 말합니다. 독자가 책에 스마트폰을 올리면 무료로 제공되는 ‘사진으로 보는 일본 답사기’와 ‘북토크’를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한기호의 다독다독]‘퍼블리터’의 시대

앞으로 창비는 NFC 기능을 통해 오디오북, 슬라이드 강연, 서평, 북토크나 북콘서트 영상, 독자투고 영상이나 사진과 저자의 코멘트 등을 추가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이 서평이나 단평을 올리며 토론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한 권의 종이책은 곧 미디어입니다. 몇 백 원이면 붙일 수 있는 태그가 이렇게 책의 가치를 증진시킵니다. 책이 출간되었다고 바로 그걸로 끝일까요? 책은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연결되는 매개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저자와 독자가 함께 읽고 토론하면서 계속 내용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비는 8월 초에 출판사 26곳과 연대해 영아부터 초등 저학년 대상의 364권의 책에 오디오북을 NFC로 제공하는 ‘더책’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황정은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와 황석영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 개정판에 오디오북을, 탁석산의 <달려라 논리>(전3권)에 저자의 동영상 강의를 NFC로 제공했습니다.

온라인서점이 등장한 이후 우리 출판시장은 오로지 가격 할인으로 독자를 유혹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1월21일부터 새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면서 그런 방식은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러니 이제 콘텐츠 제공자(출판사)도 변해야 합니다.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이 스마트폰으로 집중되면서 사용자(독자)는 수준 높은 콘텐츠를 요구함과 동시에 모든 채널에서 브랜드의 일관성 유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콘텐츠 제공자는 다양화되는 사용자의 욕망에 부응하는 동시에 즉각 능동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상품을 일방적으로 만들어 뿌리는 브로드캐스트 시대가 지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소통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우리는 제5의 미디어라 불렀습니다. 그 이후에도 무수한 미디어가 새로 등장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축제나 이벤트가 없었던 적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미디어가 되어 정보를 발신할 수 있는 세상이 되면서 누구나 유익하고, 공익적이며,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전 세계의 독자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자신이 ‘지난여름에 한 일’을 감출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세계는 1등만 살아남고 1%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1%는 곧 0.1%로 줄어들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세상에서 지배당하는 느낌을 받는 99.9%는 자주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과거에는 ‘죽창’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겠지만 지금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폭발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다가 상대의 잘못을 트집 잡아 공격하는 데 열을 올리는 ‘삐딱한 사람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한기호의 다독다독]‘퍼블리터’의 시대

지금 디지로그 세상에서는 기사가 자동 생성되어 큐레이션 미디어에서 편집되어 SNS 등에서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번의 실수로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공격을 받아 곧바로 루비콘강을 건너는 기업이나 명망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제 콘텐츠 제공자(편집자)는 퍼블리터(publitor), 즉 에디터(editor)이면서 퍼블리셔(publisher)여야 합니다. 실력 있는 에디터는 콘텐츠 생산의 프로입니다. 달리 말하면 에디터는 상품(또는 기업)의 매력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독자가 흥미를 느낄 만한 콘텐츠를 개발하여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퍼블리셔는 정보를 많은 사람이 읽게 만드는 유통의 프로여야 합니다.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었더라도 읽히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상품은 기획 단계에서 읽히는 것부터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상품이 출발하는 시점의 발상이 그 상품의 운명을 결정하는 세상이 되었기에 올해 초에 ‘퍼블리터의 시대’가 열린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제 상품을 떨이로 판매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최상의 상품을 만든 다음 상품 정보에 부가가치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결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기획자는 ‘콘텐츠 메이커’에게 액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을 수 있을 정도로 과감해질 수 있는 용기, 기시감이 드는 콘텐츠 피하기, 밸런스 감각, 불필요한 것을 잘라내는 용기와 편집력 등을 갖출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미 미국의 기업들은 편집력을 갖춘 사람을 CCO(Chief Contents Officer, 웹사이트 콘텐츠 수집 및 제작 부문 최고 경영자)로 영입해 광고를 포함한 기업 정보, 상품의 노출 방식, 기업 대표의 미디어 노출 등 모든 정보를 총괄하는 업무를 맡기고 있습니다.

김정운은 <에디톨로지>(21세기북스)에서 “모든 창조적 행위는 유희이자 놀이다. 이같이 즐거운 창조의 구체적 방법론이 바로 에디톨로지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나도 없다. 창조는 편집”이라고 말했습니다. 통섭, 융합, 크로스오버, 큐레이터, 콜라보레이션, 브리콜레르 등도 편집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경쟁’을 벌일 줄 아는 ‘퍼블리터’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