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애인의 마음을 나는 모르고

2015.04.05 21:05 입력 2015.04.05 21:31 수정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 멀리 애인의 마음을 나는 모르고

봄을 생각하는 마음은
봄을 지나
지는 꽃을 지나
멀리 애인을 지나
그의 뒷모습을 지나

빈 땅에 연못을 파고
그곳에 물을 채우는 마음이 아니라
그곳에 피는 연꽃의 마음이 아니라
바람을 모르는 물결의 마음이 아니라

멀리 애인의 마음을 나는 모르고

꽃잎을 힐끗 훔쳐보았을 뿐인데
꽃의 내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끓어오르는 나무들의 여름

- 이근화(1976~)

[경향시선 - 미래에서 온 詩]멀리 애인의 마음을 나는 모르고

△ 결정지을 수 없는 모르는 마음 때문에 봄이 왔을까. 아니 모르기 위해서 우리는 봄이라는 계절을 필요로 했을까.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당도한 너무나 짧은 환절기는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이행의 마음을 가르친다. 질서가 되지 않고 의문이 되곤 하는 불안하지만 견고한 그런 마음들을 가르친다.

빈 땅을 파고 거기에 물을 채우고 연못에 제 살을 찌르면서 피어나는 연꽃을 띄워, 바람에 물결이 전율을 일으키는 것이 사랑이라면 우리는 그런 마음에 노력이 닿는 자리마다 홀릴 것이다. 하나 그것도 아니라고. 멀리 애인의 마음을 좀처럼 모르겠다고 말하는 시인의 고백을 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봄에 서둘러 꽃을 틔우고 나서 미리 여름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마음처럼 섣부른 날씨의 환각을 봄이라 불러도 좋을까. 그렇게 모르는 내일들만 읽어내는 갸우뚱한 고백들 때문에 우리는 잘 알고 있는 낯선 자리에 반해서 또 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차례, 차례 나무들이 끓어오르고 꽃들이 열반에 들어 아무런 내용도 마음도 갖지 않았는데, 순하고 찬란한 햇빛들이 가득한 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로 앞에 두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멀리’ 두고 싶은 마음처럼, 우리는 읽어낼 수 없는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기다린다. 그저 무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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