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의 생

2015.04.19 20:43 입력 2015.04.19 20:45 수정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 만약의 생

창밖으로 검은 재가 흩날렸다
달에 대하여

경적 소리가 달을 때리고 있었다
그림자에 대하여

어느 정오에는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었다
왜 다음 생에 입을 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냐고
그림자에 대하여
나는 그것을 개켜 넣을 수납장이 없는 사람이라고

어김없는 자정에는 발가벗고 뛰어다녔다

불을 끄고 누웠다
그리움에도 스위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밤

신은 지옥에서 가장 잘 보인다

지옥의 거울이 가장 맑다

- 신용목(1974~)

[경향시선 - 미래에서 온 詩]만약의 생

△ 일찍이 박태원이 구보씨를 내세워 ‘도시 산책자’의 모습을 형상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구보라는 행위태밖에 남아 있지 않는 익명성과 근대 체제 이후 인간을 쉬이 상투화시켜버리는 일상의 무거운 짐들은 인간을 인공의 일부로 사물화시킨다. 그러므로 도시를 살아가는 고독한 인간은 고작 주어진 것들에 대해 관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향유적 존재, 소극적 주체로 전락되는 것이다.

아무 날 어느 어두운 밤, 도시의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한다. 속도에 대해서 생각한다. 만약 지금 이곳을 정지시킬 수 있다면 대체 어느 시점에서 세계의 불을 꺼야 할까. 여전히 도시의 달은 가로등이나 네온사인의 빛보다 흐리고 또 어딘가 먼 곳에서 속도에 복무하는 경적소리가 울린다. 잠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멈춰볼 의지도 없이, 쉼 없이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들. 공기는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재가 날리고 있고, 이곳은 불길이 끊이질 않는 지옥이다. 우리들의 그림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빛들 때문에 수차례 자신을 놓치면서 분열되고, 이번 생이 아닌 다음 생에서나 입고 다닐 바지처럼 그렇게 부채감으로 가득 찬 걸음걸이로 또 어디론가 흘러간다. 그러니 그리움이라는 느림의 정서 또한 ‘만약’을 설정하지 않으면 쉽게 고안해내기 힘든 형국이다.

신용목은 무엇인지 모를 모호한 억압들에 대해 만약을 설정한다. 그렇게 만약의 삶을 통해 현실의 억압에 대해서도, 억압에 대한 무반응성에 대해서도 모두 반성해보는 것이다. 이곳을 그저 지옥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지옥이라는 설정을 통해 신의 존재나 거울의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