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5월7일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사건

2015.05.07 20:53 입력 2015.05.07 21:40 수정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연일 세간의 화제다.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달 9일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돈을 건넨 정치인 명단을 공개하고 숨진 지 한 달이 지났다.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인사들의 면면을 봐도 근래 보기 드문 ‘정치스캔들’이다. 검찰 수사 칼끝은 2012년 대선자금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을 상대로 한 검찰의 한판승부가 어떻게 결론날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정치스캔들로는 단연 이철희·장영자씨 어음 사기사건이 꼽힌다. 1982년 5월7일자 경향신문 7면에는 ‘미화 80만불 국내외 은닉’이라는 제목 아래 이씨 부부 사건이다. 대검 중수부가 암달러상을 통해 40만달러를 구입해 소지하고 있던 이씨 부부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는 내용이다. 이날 보도는 서막에 불과했다. 단순한 달러 불법 소지 혐의가 당대 최고의 금융사기 사건이자 최대 권력형 비리로 확산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경향으로 보는 ‘그때’]1982년 5월7일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사건

당시는 서슬퍼런 5공 시절이다. 전두환 정권의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기치는 오간 데 없이 시국은 꼬일 대로 꼬였다. 불과 10일 전 경남 의령에서 주민 56명이 무참히 사살되는 ‘우 순경 사건’이 불거졌다. 생채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어음 사기사건이 터졌다. 수법은 단순했다.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던 장씨가 자금사정이 어려운 대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차입금의 2~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이를 할인하는 수법으로 막대한 현금을 챙겼다. 차명거래가 보편화된 금융시장의 맹점을 악용한 전형적인 돌려막기 수법이다.

파면 팔수록 가관이었다. 군사정권은 이씨 부부를 구속하는 선에서 사건을 덮으려 했지만 “더 큰손은 청와대 안주인”이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인 이씨와 이들 부부의 뒤에는 전 전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씨(장씨의 형부)가 버티고 있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당대의 실력자였다. 사기 피해액이 7000억원에 육박하면서 철강업계 2위인 일신제강과 도급순위 8위인 공영토건이 부도를 맞았다. 이 사건으로 이규광씨를 비롯한 30여명이 쇠고랑을 찼다. 또 법무부 장관이 두 번 교체되고 집권당 사무총장도 물러났다. 장씨가 말한 “경제는 유통” “나는 권력투쟁의 희생양”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이씨 부부를 수사한 주임검사가 이명재 현 청와대 민정특보다. 안철수 캠프 금태섭 변호사는 이 수사에 얽힌 일화를 예로 들며 “이 특보는 당대 최고의 검사”라고 했다. 이 특보가 검찰총장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 아들을 수사할 당시 믿고 맡겼던 수사검사가 김진태 총장이다. 당대 최고의 검사둘이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놓고 정반대 입장에서 마주 섰다. 이번 수사결과가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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