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평화의 등대여야 할 섬

2015.07.31 21:32 입력 2015.07.31 21:33 수정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사유와 성찰]연평도, 평화의 등대여야 할 섬

얼마 전 어느 연구팀의 사회조사 일정에 얹혀 연평도를 찾아갔다. 1박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다음날 짙은 해무로 배가 뜨지 못해 하루 더 보고 배울 기회가 있었다.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는 주민이 2000명도 안되는 작은 섬이다. 2010년의 포격사건 후 새로 지은 학교명은 ‘연평초중고등학교’이며, 학생이 학년별로 10여명에 불과하다. 서해 북쪽 바다에 점점이 뜬 섬 형제들 중 하나가 분명하니 분단의 가혹함이 실감난다.

연평도 뱃길은 안보상의 이유로 ㄴ자형이라 직선 항로보다 30분 이상 더 걸린다. 2시간 반의 뱃길에 편도요금만 5만5300원이다. 온라인 예약을 하면 반값이라는 말을 뒤늦게 듣고 검색해봤지만 여객선터미널에 전화 문의를 해야 겨우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다.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적자 노선 티가 물씬 나며, 외부인의 방문이나 관광에 불편함이 많다. 아직 힘든 얘기지만, 연평도를 거쳐 백령도를 왕복하는 직선 노선을 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훨씬 큰 백령도에 정부 지원이 집중된다는 주민의 불만도 많지만, 내가 만난 연평도 분들은 하나같이 생기 있고 밝았다. 연평도에서의 사흘 동안 두 가지를 거듭 확인했다. 첫째는 땀 흘려 일하는 민초들이 우리의 삶을 지켜왔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비전 있고 투명한 정치가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리라는 진실이다.

연평도 하면 누구나 꽃게와 조기를 떠올린다. 1970년대 이후 생태계 변화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1960년대 말까지 조기잡이철에는 이 작은 섬에 3000~4000척의 어선이 몰려들었다. 한창 때는 동네 개도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그러나 평범한 어민에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고된 노동과 위험한 삶의 연속이다. 한 예로,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조난어업자 위령비’는 1934년의 태풍에 204명의 사상자가 난 비극을 기리고 있다. 이곳 어민들이 분단의 고통을 감당하며 어제는 제사상에 조기를 올리게 해줬고 오늘은 꽃게를 맛볼 수 있게 한다.

연평도 선착장 가까이에 영화 <연평해전>에 나온 고속정 기지가 떠 있다. <연평해전>이 최고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저 수구적인 내용만도 아님은 수긍할 수 있다. 감독은 ‘안산’ ‘천안함’ 등 울림이 큰 단어를 곳곳에 심어놓았고, 특권이나 특혜와 무관한 우리 아들들이 바다를 지키다 귀한 목숨을 잃었음을 강조했다. 특히 교전 84일 만에 숨진 의무병 박동혁 병장의 몸에서 총 3㎏이 넘는 100여개의 파편이 나왔다는 (영화 밖의) 사실은 잊기 힘들다. 지상 전투에서 유탄과 파편은 나무나 흙에 박히지만 해상 교전에서는 강철 갑판에 튕겨 사정없이 장병들의 살을 파고드는 것이다.

눈부시게 맑은 날씨의 파란 바다 위에 빛나는 고속정 기지를 바라보며 거기서 2002년 월드컵 경기에 신을 내던 젊은 장병들 생각을 떨칠 길이 없었다. 하지만 포격사건 이후 세운 안보교육관이 인천에서 온 노동자인 민간인 사망자 2명을 외면한 일은 가슴 아프다. 섬 안의 기념물들은 연평해전 전사자 6인과 포격사건 때 전사한 해병대원 2인만을 기리고 있다. 빗나간 애국주의, 군사주의의 낌새에 경계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내게 ‘이승복 어린이’ 사건보다 더 큰 충격은 해군 56함 피격이었다. 온라인 검색을 해보니, 1967년 초 동해안의 명태 어획량이 부진해서 당국은 명태잡이 기간을 보름 연장했다. 1월19일 56함은 명태떼를 쫓아 어로저지선을 넘는 어선들을 통제하느라 애쓰다 북한 함정 출현에 평소보다 북상하게 되었다. 갑자기 북의 해안포가 공격해왔고 기관실을 명중당한 56함은 수백발의 포탄에 침몰하며 승무원 79명 중 39명이 전사하는 참극을 당했다. 56함은 진해에서 출항한 군함이어서 내가 다니던 학교와 이웃 학교에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이 생겼다. 가난한 어부를 보호하려다 없는 집 자식들인 수병들이 희생당했다 하시던 동네 어른들 말씀도 기억이 난다.

누구라도 서해5도에 가보면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방치하면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것을 체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역에 비전도 전략도 없이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남북 정상의 북방한계선(NLL) 관련 대화를 곡해한 일은 차치하더라도, 군사평론가 김종대의 말대로 아직 연평해전의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안보의 명분 아래 비밀주의 뒤에 숨지 말고 미래를 위해 서해 NLL과 관련된 사건들을 투명하게 점검해야 한다.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서해는 동아시아의 지중해이다. 해방 70주년을 맞는 8월에 우리 정부가 서해를 인류 평화와 번영의 바다로 만들 길을 열어 그 주인공이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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