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늑대’와 대학의 미래

2015.07.24 21:35 입력 2015.07.24 21:49 수정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사유와 성찰]‘두 마리 늑대’와 대학의 미래

제자가 여쭈었다. “제 안에 늑대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한 마리는 착한데 다른 한 마리는 포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스승이 말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택하거라.” 제자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한 마리를 택할 수 있습니까?” 스승이 혀를 차며 돌아섰다. 며칠 뒤, 스승이 제자를 불러 물었다. “방법을 알아냈느냐?” 제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답을 못하자 스승이 말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어떤 늑대냐?”

북미 인디언 사회에서 노인이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우화를 약간 변형시킨 것이다. 인간의 복합적인 내면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일반화한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저 인디언의 지혜는 우리 내면에 대한 새삼스러운 관점을 제공한다. 우리 안에는 두 마리 이상의 늑대가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늑대 무리를 공평하게 대하지 않는다.

편애한다. 한 마리에게만 먹이를 주는 것이다. 피둥피둥 살이 오른 한 마리 늑대가 바로 우리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늑대를 키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나운 늑대는 밖에서 침입했거나,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먹이를 준다고 여긴다. 개인의 내면에만 늑대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물론 조직, 단체, 기관에도 늑대가 있다. 대학 안팎에도 늑대가 있다.

최근 대학의 한 보직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농담을 들었다. 우리나라 대학에는 총장이 둘이 있는데, 둘 다 대학 밖에 있다는 것이었다. 다름 아닌 국가와 기업이 실질적 총장이라는 것이었다. 국가와 기업이 대학에 요구하는 사항이 매번 옳거나, 또 매번 그른 것은 아니다. 옳을 때도 있고 그를 때도 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대학이 대학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데 있다. 대학이, 대학이란 무엇인가라고 자문하지 않는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최근 한 권의 보고서 <미래대학리포트 2015>를 발간했다. 재학생들에게 개인의 가치관에서부터 한국 사회와 인류문명, 고등교육의 현재와 50년 뒤 미래에 관해 물었다. 전체 재학생의 절반이 넘는 1만4000여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일부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학생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오늘도 ‘행복’, 내일도 ‘행복’이었다. 부의 양극화에 대한 우려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미래 전망도 대부분 어두웠다. 폭력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인류 평화도 요원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는 강대국의 입김이 여전할 것이라고 답했다. 평생직장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어떤 교수를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는 교수’라고 답했고, 미래 대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는 자아성찰과 진리 탐구를 꼽았다. 설문조사와 심층토론 결과를 분석하는 자리는 숙연했다. 교양 교육을 담당하는 한 교수가 “이것은 학생들의 절규”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수는 “학생들의 요구에 대학이 답해야 할 차례”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요청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됐다. 전공과 교양 교육의 조화, 융복합 분야 활성화, 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는 정신적 스승상 정립, 종합적인 사회진출 프로그램 개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 보고서에 들어갈 원고를 작성하는 동안 ‘두 마리 늑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동안 대학은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어왔는가. 그리고 앞으로 과연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가.

대학의 위기를 지적하는 담론의 핵심에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학의 기업화, 대학의 서열화를 부추긴 ‘한 마리 늑대’가 바로 저 차가운 경제 논리다. 교육과 연구의 본질 목적이 시장의 요구에 의해 왜곡되는 가운데, 대학의 또 다른 정체성인 공공성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학이 ‘영혼 없는 지식’ ‘똑똑한 양떼’를 양산하는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 기후변화, 에너지 고갈, 인구 폭발, 부의 양극화, 인간의 왜소화로 대표되는 지구적 난제 앞에서 대학은 적절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문명을 위한 새로운 보편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대학리포트>는 한 사립대학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위한 기초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일회성 과제도 아니다. 그랬다면 굳이 이 지면에 소개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보고서 기획위원회는 ‘대학의 미래가 인류의 미래’라는 공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대학이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는 보고서의 결론이 국경을 초월한 대학 혁신 운동의 ‘불씨’가 되었으면 한다. 국내외 학계와 시민사회가 공공성을 중심으로 구축하는 새로운 ‘세계 대학 평가지표’가 그 불씨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